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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국가] 일본 국가 '기미가요'

잠용(潛蓉) 2013. 3. 11. 23:19



일본 국가 ‘기미가요’(君が代)
[주간조선] 2005.07.05

(가사)
君が代は(기미가-요-와)
千代に八千代に(치요니- 야치요니)
さざれ石の(사자레 이시노)
岩ほど成りて(이와오도 나리데)
苔のむすまで’(고게노- 무-스-마 - -데)

(해석)
“님(천황)의 대(代, 치세)가
천대에서 팔천대까지
작은 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덮일 때까지”

 


[가사 내용] ‘군주의 통치는 천대에서 팔천대까지 계속 되었으면,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내용이 전부이다. 생각 이상으로 매우 짧고 내용이 간단하다. 조약돌이 어떻게 큰 바위로 자랄 수 있을까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어쨌든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군주의 통치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군인도 아니면서) 군복을 차려입고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를 참배할 때 주로 부를 뿐 일본의 일반 국민들은 노래 가사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애국가를 따라 부르도록 강요(?)받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패전 이후 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식의 군국주의적인 행태가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억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 간 축구경기라도 펼쳐지는 날이면 한국 대표선수들이 애국가를 열심히 따라 부르는 것과는 달리, 일본 대표선수들은 키미가요를 연주할 때 대부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풍경이 연출된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일본의 보수 우익화 경향과 맞물려 자민당과 일부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국가로서 법제화를 추진해 결국 1999년 8월 9일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일본의 국기-국가로 규정하는 법률안을 일본 국회에서 찬성 166, 반대 71표로 통과 시켰다. 이 법은 ‘국기는 히노마루로 한다’와 ‘국가는 기미가요로 한다’는 2개조만 두고 국기, 국가에 대한 존중의무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교육현장에서 사실상의 규제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제작유래] 기미가요(일본어: 君が代 (きみがよ): 그대(천황)의 치세)는 일본의 국가이다. 이 노래의 유래는 고금 단가집의 "我が君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巌となりて苔の生すまで"이다. 이 단가의 "我が君は"를 "君が代は"로 바꾸어 현재의 가사로 변했다. 메이지 시대에 하야시 히로모리(林 廣守)가 이 가사에 선율을 붙였다. 하지만 현재의 기미가요를 완성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음악가이자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작곡한 프란츠 에케르트이다.

 

기미가요에서 '기미'(일본어: 君)는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데, 일반적인 시가에서 '그대', '(사랑 또는 존경하는) 임'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고 기미가요에서는 그 대상이 천황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공식 국가가 없어졌으나 1999년에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법적으로 '기미가요'가 다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기미가요' 법제화에 반대한 일본인들도 일부 있었다. 지방교육위원회가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 '기미가요' 제창을 지지하면서 이에 대해 거부하는 어느 학교장이 곤욕을 치르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의 가사는 작자 미상이며 고전시가집의 하나인 <고금화가집 古今和歌集>에 수록되어 있는 일본 전통의 시가인 와카(和歌)이다. 곡은 메이지(明治)시대에 이르러 궁정 음악 연주자(레이진, 伶人)인 하야시 히로모리(林広守)가 작곡했고, 1893년에 국가로서 처음 공식 인정되었다.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법력으로 정해졌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 때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君が代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岩ほどなりて/苔のむすまで’)  [위키백과]

 
일본에서 본 ‘기미가요’
지구상에 제대로 모양새를 갖춘 나라중 국기와 국가가 없는 나라가 있을까. 엊그제까지 일본이 바로 그랬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있지만 육법전서 어디에도 이들이 국기와 국가라는 규정은 없었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관행적으로 국가 상징으로 통용되어왔을 뿐이다. 더욱이 전후엔 군국주의의 표상이란 이유로 오랫동안 공론화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국기와 국가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경일이라고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거는 ‘한국적인 풍경’도 찾아볼 수 없다. 기미가요도 일부 ‘제한된 용도’로 사용할 뿐이다.

‘천황의 치세는 천대 만대로 작은 돌이 바위가 되고 이끼가 낄 때까지…’란 가사가 말해주듯, 기미가요의 단골 이용객은 극우 단체들이다. 패전 기념일(8월 15일) 등에 야스쿠니 신사 주변을 돌아보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펼쳐지는 우익단체 집회가 대부분 기미가요 기립 제창으로 시작되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이를 제외한다면 초, 중, 고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국가 대결 스포츠 경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일본에서 좌파 진보세력이 급속히 힘이 빠진 90년대 중반 이후 사회 전체적으로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통제하에 어린 학생들이 부르는 기미가요나, 축구장에서 다른 나라 국기와 같이 게양되는 히노마루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 국민은 별로 없다.

일본의 신세대 축구영웅 나카타 선수는 국기와 국가에 대해 불손 하기로 유명하다. 국제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기미가요에 맞춰 게양되는 히노마루를 향해 경의를 표하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껌을 씹거나 가볍게 몸을 푸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자주 보이 때문이다. 그는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체질적으로 강요받는 것이 싫다”고 당당히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건방지다’ ‘국가대표 선수 자격 이 없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전후 세대,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은 대개 나카타에 동조한다고 볼 수 있다. 평균적인 일본인들은 히노마루에 대해선 그래도 거부감이 덜한 편이지만, 기미가요에 대해선 보수적인 인사들마저 가사가 지나치게 천황숭배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민심’과는 정반대로 일본 정부는 “히노마루, 기미가요가 갈수록 국민 속에 정착돼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전국 공립학교의 히노마루 게양률과 기미가요 제창률이다. 문부성에 따르면 지난해 히노마루 게양률은 98%, 기미가요 제창률은 81%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학습지도요령이란 이름하에 강요한 결과일 뿐이다. 교원 노조인 일교조는 이를 두고 ‘강요된 애국심의 숫자놀음’이라고 반박한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제화를 통한 강제가 국기, 국가 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간조선 이준 기자/전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