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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두메 산골" (1963) - 배호 노래 [데뷔곡]

잠용(潛蓉) 2021. 2. 10. 19:59

 


"두메 산골" (1963)

半夜月 작사/ 金光彬 작곡/ 노래 裵湖

(앨범/ 1963년 新世界레코드 발매)

 

< 1 >
山을 넘고 물을 건너
故鄕 찾아서
너 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도라지꽃 피는 그날
盟誓를 걸고 떠났지
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
두번 다시 他鄕에 아니 가련다

 

풀피리 불며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 2 >
山을 넘어 재를 넘어
옛 집을 찾아
물방아 찾아왔네
달 뜨는 故鄕

 

새소리 情다운 그날
울면서 홀로 떠났지
구름은 흘러흘러 떠나가도
두번 다시 他鄕에 아니 떠나리

 

수수밭 감자밭에
씨를 뿌리며
너와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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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의 데뷔곡 <두메산골>은 배호의 외삼촌인 작곡가 김광빈님이 노래를 주었다. "삼촌, 이 노래 촌스러워요" 머뭇했으나 "배호야 이 노래 멋지게 불러 봐" 삼촌의 권유에 배호는 혼신을 다해 녹음을 끝냈다. 이 곡은 배호가 여러 곡을 불렀으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희귀곡이다. 배호 특유의 호소력에 강한 힘을 넣었다.

 

(배호~ 두메산골 1963 데뷔원곡)

 

(배호-두메산골- LP Music- 1963년도 오스카레코드사 음원 영천자양 벗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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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⑺ 배호의 ‘두메산골’
농민신문ㅣ2016-08-22 00:00

 

(배호 1942~1971 서울)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

너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도라지 꽃 피는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

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

두 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

풀피리 불며 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 배호의 ‘두메산골’ 1절

 

사람마다 그에게 주어진 재능이 한 가지씩은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그 재능을 일찍부터 찾아내어 힘껏 밀어붙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성장기 자녀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키워주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은 우리 곁을 떠난 지 45주년이 되는 불세출(不世出)의 가수 배호(裵湖, 1942~ 1971)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돌아가는 삼각지’, 자욱이 안개 낀 날이면 어김없이 ‘안개 낀 장충단공원’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 배호.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던 그의 굵고 중후한 바리톤 남저음(男低音)과 절정부분에서의 애절한 고음은 어찌 그리도 정겹고 애잔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던지요.

 

가수 배호는 1942년 중국 산동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지요. 8ㆍ15 광복 후 귀국선을 타고 돌아왔지만 험한 세상의 파도 속에서 배호의 부모는 인천, 서울, 부산 등지를 떠돌면서 고생스럽게 살았습니다. 부모슬하에서 어린 배호의 삶도 마찬가지였지요. 배호의 생애는 온통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했던 듯합니다. 1963년 21세에 노래 ‘굿바이’로 데뷔하여 1971년 ‘마지막 잎새’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주된 활동 시기는 60년대 중후반입니다. 가요계에 몸담았던 시기는 도합 8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1960년대는 한국사회는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사회로 옮겨가는 급격한 변동의 분기점에 놓여 있었습니다. 농촌생활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도시에서 다른 일자리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며 고향을 떠나는 이농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그 무렵 이농인구(離農人口)는 무려 35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많이 불려진 배호의 대표곡 ‘두메산골’(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 1963)은 그런 점에서 사회사적 의미를 지닌 가요작품입니다. 농촌이 텅 비게 되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가사에 역으로 반영되어 있지요.

 

배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외삼촌 김광빈입니다. 외삼촌이 꾸려가던 악단에서 드럼을 연주하다가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이후 대중들의 커다란 인기에 부응하기 위해 신장염이라는 지병을 치료해가면서 무대 위에 섰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때로는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부축한 상태로 노래를 하기도 했지요. 노래를 부르던 중 각혈까지 했다고 하니 마치 선배가수 남인수(南仁樹, 1918~1962) 말년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배호는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가던 도중 구급차 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