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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성평등

[장애인 특수학교 문제] "이 아픔은 우리가 안고 가야죠"

잠용(潛蓉) 2018. 9. 8. 07:28

"아이들이 몰라서 그나마 다행...

상처는 우리가 안고 가야죠"
동아일보ㅣ2018.09.08. 03:00 댓글 105개


▲ "엄마가 지켜 줄께"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위클리 리포트] 서울 강서 특수학교

'무릎 꿇은 엄마들'... 그 후 1년

[동아일보] “몰라서 다행이다. 이 상처는 우리 부모들이 안고 가마”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해당 지역에 한방병원을 유치하는 등의 조건을 내세워 일단락됐다. 부모들은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조건부 설립’ 합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무릎 꿇기 눈물의 호소’ 이후 1년은 장애 아이들의 특수교육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관심과 이해다. 이들의 애환은 특수학교 한 곳이 설립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무릎 꿇은 엄마 등 장애 아이를 둔 엄마와 아빠 10여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껌딱지’ 돌보려면 부모가 무너지지 말아야 해”

아이는 첫돌 전부터 원 돌리기에 집착했다. 공, 접시, 자동차 바퀴…. 아이는 동그란 물건을 솜씨 좋게 돌린 뒤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그저 아이의 특성이라 여기고 또래에 비해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두 돌쯤이었나. 한 TV 저녁 뉴스에서 자폐아의 특성에 대한 보도를 봤다. ‘보통 유아들은 자동차를 일렬로 세운 뒤 바퀴를 굴려 달리게 한다. 자폐아는 자동차를 뒤집은 뒤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슴이 철렁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자폐 2급 진단을 받았다.


며칠간 날벼락을 맞은 쇼크 상태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두 달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장애 판정을 받은 엄마들은 대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다 현실을 받아들인 뒤에는 치료법을 찾는 데 목을 맨다. 비교적 빨리 마음을 수습한 줄 알았는데 6세 때 재검에서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고 2차 쇼크가 왔다. 사실 지적장애와 자폐증 등을 아우르는 발달장애 아동은 유아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치료를 통해 개선될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좋다는 건 다 시도한다.


언어, 놀이, 특수체육, 인지, 그룹인지, 그룹음악…. 아이가 8세인 지금 한 달 치료교육비는 250만 원이다. 통합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월 30만∼70만 원짜리 수업 7개를 듣는다. 지출이 큰 편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줄었다. 매월 400만∼500만 원 정도 쓴 적도 있다. 여유가 있어서 교육에 ‘올인’하는 건 아니다. 지능과 사회성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쓰는 언어로 말을 걸어주진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거다.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인터넷에서 ‘자폐’를 검색했다. 수천만 원짜리 산소탱크를 이용한 고압산소치료, 머리카락을 채취해 부족한 체내 성분을 검사한 뒤 필요한 성분을 집중 공급하는 생의학치료, 한 번에 수십만 원씩 하는 청각·지각 훈련…. 반신반의하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홀린 듯 지갑을 열기도 한다.


이런저런 치료를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선배 엄마’들을 만났다. “이건 마라톤이다. 처음부터 진을 빼면 나중엔 엄마도 아이도 지쳐. 이제 두 살배기인 아이를 평생 돌보려면 부모가 무너지지 않고 몸과 마음이 버티는 것이 중요해.” 선배들의 조언은 비슷했다. 치료에 집착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나치면 후회할 거라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검증된 놀이치료 위주로 알아봤다. 유아교육처럼 눈높이 교육을 하면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공격적 행동인 ‘도전적 행동’이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복지기관과 큰 병원, 알려진 센터의 프로그램은 대기 기간이 기본 1, 2년이었다. 통합어린이집도 집 근처엔 자리가 없어 1시간 반 거리를 3년간 통학했다.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선배 엄마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대목이 또 있다. 비장애인 형제자매에게도 관심을 나눠주란 것이다. 22세 발달장애 1급 딸(둘째)을 둔 A 씨는 큰딸이 중학생 때 하도 반항해 ‘같이 죽자’고 했더니 ‘난 안 죽어. 엄마만 죽어. 그리고 엄마가 죽어도 동생은 안 돌볼 거야’라고 했단다. B 씨는 막내아들이 3세 때부터 여덟 살이나 많은 발달장애 1급 큰누나에게 모든 걸 양보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C 씨는 세 남매를 같은 초등학교에 보냈는데 장애인 형제자매를 뒀다고 친구들이 놀려대며 따돌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D 씨는 “19세 다운증후군인 큰딸보다 17세 둘째가 더 속을 썩인다. 비장애인 자녀가 키우기 더 힘들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첫째는 장애아라서, 셋째는 늦둥이라서 관심을 쏟았지. 둘째는 뭐든 혼자하고 얌전하고 눈에 안 띄고. 늘 관심 밖이었어. 한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둘째에게 엄마 노릇을 했나’ 싶더라고. 그걸 깨달았을 때 둘째는 이미 내게 마음을 닫은 상태였어.” 뒤늦은 후회에 D 씨는 둘째와 함께 가족상담을 시작했다. “‘됐어’ ‘필요 없어’ ‘괜찮아’ 세 마디만 하던 아이가 요즘은 ‘싫어’ ‘뭐 해줘’ 하는데 너무 고마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정불화도 적지 않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아빠는 엄마에 비해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편이 참여하는 ‘장애 아동 아빠 자조모임’에서 아빠들의 스트레스 요인을 조사한 결과 1위 경제적 문제, 2위 아내의 무관심, 3위 불안한 아이의 미래, 4위 비장애 자녀가 방치되는 상황 순이었다. 13세 발달장애 2급 딸을 둔 E 씨는 남편이 처음에 ‘자신 없다’며 힘들어해 부부관계가 악화된 케이스다. 둘째를 낳은 뒤에야 남편은 첫째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첫째가 그걸 아는지 아직도 아빠에게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생 발달장애 1급 아들을 둔 40대 F 씨는 시댁 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그는 “매일같이 임신 기간에 뭘 잘못했나 자책하는 내게 시어머니가 ‘너 때문에 아이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서운한 마음에 남편과 다투는 일도 잦아진다.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모든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때다. 아이가 냉동실 물건을 다 꺼내 바닥이 김칫국물로 흥건할 때, 뾰족한 물건을 집어던져 다른 자녀의 눈가가 찢어졌을 때, 죽을힘을 다해 한 보 나아간 줄 알았는데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장애아를 둔 일가족 자살 소식을 접할 때면 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아프다.


▲ 지난해 9월 5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은 엄마들. /동아일보DB



▲ 유영호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송파지회 지회장(앞줄 오른쪽)과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가 4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서 조건부로 특수학교 설립을 허가한 것에 항의하는 발표문을 읽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진통 끝에 들어서는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지난달 착공해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주저앉기보다 열심히 뛸게”

보통 발달장애 아이는 8세가 돼도 입학을 1, 2년 미룬다. 지능지수가 많이 낮지 않아도 늦게 입학시키기도 한다. 그사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2018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유치원·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발달장애 학생은 7만1253명으로 처음 7만 명을 넘겼다. 2014년 6만6363명, 2015년 6만7374명, 2016년 6만7731명, 지난해 6만9528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유아기엔 치료와 교육에 정신이 없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현실의 불합리에 눈뜨기 시작한다.


규정상으로만 보면 발달장애 학생은 일반학교나 특수학교 가운데 원하는 곳을 택해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선택할 권리’는 없다. 특수학교는 턱없이 부족하고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는 경쟁이 치열하다. 부모들은 교사의 역량에 민감하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부족해 알게 모르게 학교생활에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기 때문이다.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편견 학대를 느끼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대응하지 못할 뿐이다. 이 때문에 학교 가 있는 동안 교사가 부모의 눈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훌륭한 교사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해당 일반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거나 전입신고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1년 전 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 짓게 된 서진학교는 이제 막 삽을 떴을 뿐인데 벌써 전입신고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비장애 아동 부모와 우리의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 발달장애 부모 모임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비장애 아동이 ‘엄마 껌딱지’인 시기는 유아기 무렵이 전부다. 우리 아이들은 평생을 엄마 껌딱지로 산다. 표현이 서투른 발달장애 유아들은 물리적 정서적 학대에 쉽게 노출된다. G 씨는 일반 중학교에 다니던 다운증후군 딸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을 쳤다. 딸은 언젠가부터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급기야 어느 날 기절까지 했다. 의사는 “아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지만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학대를 당했더라고. 일반 반에서는 도우미 친구가, 도움반(발달장애 아동 학급)에서는 체구가 큰 다른 발달장애 친구가 꼬집고 때렸대. 다른 친구가 일러주지 않았으면 모를 뻔했지. 더 원통한 건 선생님도 알면서 이를 묵인했다는 거야.” G 씨는 당장 전학이 가능한 특수학교를 수소문했지만 거주지인 강서구 특수학교엔 자리가 없었다. 통학 가능한 거리의 일반학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H 씨는 18세 아들의 친구들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종종 묻는다. 누군가 아이를 괴롭힌다고 귀띔하면 교사와 상담하는데, 그럴 때 돌아오는 반응은 80%가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거다. 그는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들보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상처받을 때가 더 많다. 통합반이 생긴 2007년 이후 학교생활을 한 젊은 교사들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적은 것 같다”고 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익숙하다. 키 180cm로 겉으로는 성인이 다 된 아이가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치마를 들쳐 경찰서에 가거나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질러 ‘자식교육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장애가 유전되는 것 아니냐’며 비장애인 형제자매의 혼사가 깨지는 일도 있다. 지적장애 딸을 둔 부모는 아이가 ‘나쁜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한다. 마음고생이 심할 때는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과 배제를 이해하지 못해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G 씨는 무릎 꿇은 날 몰래 눈물을 훔치던 자신의 어깨를 해맑게 토닥이던 딸에게 이렇게 읊조렸다고 한다. ‘몰라서 다행이다. 상처는 우리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주저앉을 시간이 없다. 교육 공간을 확보하고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지원 제도를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