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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금박 댕기" (1949 원곡) - 백난아 노래

잠용(潛蓉) 2019. 7. 22. 13:54



"金箔 댕기" (1949)

朱仁旭(高麗星) 작사/ 朴是春 작곡/ 노래 白蘭兒>
(1949년 4월 럭키레코드사 발매)

< 1 >
黃昏이 짙어지면
푸른 별들은
希望을 쫏아보는
병아리더라

우물터를 싸고 도는
붉은 입술은
송아지 우는 마을
복사꽃이냐?

< 2 >
花冠 쓴 娘子 머리
靑紅紗 緣分
별들이 심어 놓은
꽃송이구나

물동이에 꼬리치는
粉紅 옷고름
그날 밤 나부끼는
金箔 댕기냐?

< 3 >
牧童이 불어주던
피리소리는
靑春을 적어보는
日記冊이다

垂楊버들 휘늘어진
맑은 우물에
두레박 끈을 풀어
별을 건지자~




금박댕기 1949 백난아 (SP 3절 원곡)


백난아(白蘭兒) - 금박댕기 (원곡)


금박댕기 (원곡) - 백난아 (작사/주인욱.작곡/박시춘)


금박 댕기 - 이미자


금박 댕기 김우연


조미미 금박 댕기(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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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욱 (朱仁旭 1921~1956) 작사가ㆍ가요 프로듀서. 본명은 조경환(曺景煥), 예명이 고랴성(高麗星). 경북 김천 출신이다. <나그네 설움> 외에 많은 곡을 작사하였다. 진방남, 백난아, 백년설 등을 발굴했으며, 태평 레코드사의 문예 부장을 맡아 태평 레코드 예술상 전국 콩쿨 대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가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출생지인 김천에 고려성ㆍ나화랑 형제 노래비가 있다.
백난아 (白蘭兒 1925~1992)
백난아 (白蘭兒, 본명은 오금숙,吳金淑, 1925.1.16.~1992.1.21.)는 가수다. 백난아는 1922년 1월 16일에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고,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였다. 같은 해, 선배가수 백년설에게 ‘ 백난아’라는 예명을 받고, 오동동 극단을 취입하였다. 〈오동동 극단〉이 히트되자 그녀는 계속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땅버들 물버들〉, 〈도라지 낭랑〉, 〈아리랑 낭랑〉, 〈찔레꽃〉, 〈흥아의 봄〉 등을 취입하였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해방될 직전까지 태평레코드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해방 직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 전속으로 〈금박댕기〉, 〈낭랑 18세〉, 고려레코드에서 〈인도야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그녀는 전쟁 중 연예인들의 아지트였던 대구로 피난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 연예인들과 활동하며 한때는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에는 태평레코드와 서라벌레코드에서 활동하며,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 등을 취입하였다.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신곡 취입을 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주로 극장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작곡가 인 이재호는 그녀의 부군 이다.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면서, 그녀는 원로가수 대접을 받으며 방송출연을 활발히 하였는데 특히 〈가요무대〉에서 자주 출연하였다. 1991년에 대장암이 발병했고, 평소 지병이던 고혈압이 겹쳐 투병 중에1992년 1월 21일에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찔레꽃' 백난아의 고향은 '제주 명월'입니다
제주신보ㅣ김현종 기자 승인 2009.06.08


▲ 백난아기념사업회는 백난아 관련 자료 조사를 위해 지난해 4월 서울에 거주하는 오빠 오택규씨 댁을 방문했다. 왼쪽부터 임정호 작곡가, 백난아 올케 이영희씨, 오경욱 백난아기념사업회장.

>백씨 고향 '함경북도 청진' 등 오류정보 온라인서 통용...시정조치 시급
‘백난아 고향이 함경북도?’ 다음 달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백난아가요제 조명 대상인 '찔레꽃'의 가수 백난아의 신상명세가 인터넷 공간 등을 중심으로 일부 잘못 알려져 시정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실제 위키백과를 포함 상당수 인터넷 사이트에서 백씨의 고향이 ‘함경북도 청진’으로 표기돼 통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오경욱 백난아기념사업회장은 “백난아의 고향은 한림읍 명월리가 맞다”며 “호적과 제적 등본, 오빠와 친족, 음반 등 다각도로 확인했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오 회장은 명월에 사는 백씨의 6촌 오성종씨 등에게서 ‘백난아의 제주출생’을 확인했고 지난해 4월 사업회 구성 직후 서울의 오빠 오택규씨도 방문해 거듭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또 그녀가 1957, 1961, 1986년 3차례 현인과 함께 내도해 한림문화관에서 공연할 때 스스로 “명월이 고향”이라고 발언했다는 다수 주민의 증언도 나와, ‘제주태생’이 재차 증명됐다. 오류가 왜 생겼을까. 오 회장은 백난아를 양녀 삼은 ‘나그네의 설움’의 가수 백연설이 그녀가 태평양레코드사에서 활약할 때 청진을 고향으로 쓰게 한 일화가 신빙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또 백난아의 형제관계와 관련해선 3남3녀 중 셋째, 3남4녀 중 넷째 등 ‘오류정보’들이 나돌고 있다. 오 회장은 “제적등본에 따르면, 본명 오금숙(吳錦淑)인 백난아는 오남보씨의 3남4녀 중 다섯째다. 딸 중엔 넷째다. 그중 두 명의 터울이 8달 남짓인 것으로 미뤄 이복형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백난아는 3살 때 만주로 이주했고 9살 때 함북 청진에 정착했다.

그런데 백난아의 출생연도에 대해선 아직 명쾌한 답이 안 나온 상태다. 1923년, 1925년, 1927년 등 모두 3갈래 설이 떠도는 상황이다. 1925년은 호적부, 1927년은 그녀가 연예인협회 분과활동과 관련해 제출한 이력서에 각각 기록돼있다. 1923년의 경우 별 근거가 없다. 백난아기념사업회는 “일단 1927년과 1925년 중 하나로 본다”면서도 “당시 부모들이 제때 출생 신고하지 않던 분위기라 호적도 믿을 수 없다. 가족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백난아가요제 기간 심포지엄에서 출생년도에 대한 해답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제1회 백난아가요제는 7월 25, 26일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이 가요제는 백난아를 기리고 ‘제2의 백난아’를 발굴하는 취지를 두고 단순 가요제를 넘어 축제를 지향, 살풀이, 유품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첫날 옛 명월교에서 심포지엄도 진행된다. 가요제 예선은 7월 11일, 18일에 제주 한라대와 성남 시민회관에서 각각 치러질 예정이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