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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스케치] AI가 그린 그림, 예술인가 기술인가?

잠용(潛蓉) 2020. 5. 23. 07:40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

(1) 코로나19와 ‘내 손안의 미술관’
경향신문ㅣ2020.03.27 16:33 수정 : 2020.03.27 19:33

 

디지털 시대, 전시란 무엇인가

코로나19 사태는 평탄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평소 생각하지 못한 그 질문들의 답을 찾다보면 새삼 이것저것 깨우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그저 물처럼 흘러가던 일상 속 삶의 소중함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라고 투덜대던 때가 그리울 정도다. ‘잠시 멈춤’ ‘물리적 거리 두기’ 등은 당연하게 여기던, 익숙한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전시공간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곤 ‘내 집(손) 안의 미술관’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 기획전까지 마련됐다. 컴퓨터·모바일 기기를 통해 작품과 작가, 전시를 만난다. 애써 전시장을 찾던 작가, 큐레이터, 미술애호가인 관람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유례 드문 상황은 미술계 주체들에게 그동안 해보지 않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화이트 큐브로 상징되는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엮어내는 전시의 가치는 무엇인가, 굳이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대면하는 관람행위의 의미는 뭘까, 미술계 특성상 부수적으로 여겨진 온라인 콘텐츠는 어떻게 전개될까…. 미술의 본질과 더불어 디지털시대의 미학까지도 되새기게 한다. 미술계에 찾아온 성찰의 시간이다.

 

▲ 미술사학자인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는 이달 초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들”을 모아 온라인 기획전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을 마련했다. 모니터 속 이미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전시에 참가한 윤애영 작가의 ‘빛의 파동 #1908’(일부). /조은정 제공

전시장 대신 온라인 콘텐츠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는 미술계의 일상적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매일같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전시장의 휴관이 한 달을 넘어서고 있다. 사립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들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있지만 관람객들 발걸음은 뜸하다. 전시가 취소·연기되고 일정이 비틀어지면서 미술 관계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 바뀐 미술계 풍경의 대표적 사례는 온라인 콘텐츠의 활성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서예사를 다룬 기획전 ‘미술관에 書(서): 한국 근현대 서예전’(덕수궁관)을 30일부터 온라인으로 우선 공개한다. 전시장 문을 열 때까지 온라인 전시 관람이다. 휴관이 길어지자 미술관 측은 앞서 홈페이지·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학예사들의 기존 전시 해설, 소장품 강좌,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 온라인 콘텐츠를 내놓았다. 윤범모 관장은 “온라인을 통해 관람객들이 전시를 감상하고 미술로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도록 온라인 서비스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주요 국공립미술관들도 온라인 콘텐츠 제공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전시회 못 열게 된 미술계
홈페이지·유튜브 채널 통해 작품 관람·해설 등 온라인콘텐츠 제공
VR로 보여주는 ‘언택트 뮤지엄’도‘보조수단’이던 온라인 콘텐츠가 잠시 대체할 지,

안착할 지는 의견 분분온라인 전시가 다양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오프라인 전시의 가치 되새기게 돼

 

▲ 코로나19 사태로 1개월 넘게 휴관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서예사를 다룬 기획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덕수궁관)을 30일부터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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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괜찮다. 국립현대미술관 윤승연 홍보관은 “휴관에 따라 ‘집에서 만나는 미술관’ 서비스를 강화 중인데 최근 1개월 사이 유튜브 구독자수는 2200여명 증가해 1만1000명을 넘어섰고, ‘세상에 눈뜨다’ 전시는 조회수 5만3000회를 돌파했다”며 “하반기에도 주요 전시를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VR(가상현실) 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립미술관인 사비나미술관은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전시를 관람하는 ‘언택트 뮤지엄(Untact Museum)’을 내세우며 29편의 전시회를 VR로 감상토록 하고 있다. 강재현 학예실장은 “당연하게 전시장을 찾던 미술애호가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고, 미술 관계자들의 벤치마킹 문의도 있는 등 반응이 좋다”며 “향후 활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바라캇 컨템포러리·리만머핀 서울 등 갤러리들도 전시회와 병행해 VR, 3D 기법을 활용한 온라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계에서 보조수단으로 여겨지던 온라인 콘텐츠들이 어느 때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온라인 콘텐츠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나타난 대체용일지, 아니면 향후 미술계에 안착해 큰 영향을 미칠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미술 특성상 그 한계는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콘텐츠 활용이 적어도 대중의 미술 접근성을 높인다는 견해는 일치한다. 윤승연 홍보관은 “온라인을 통해 작품을 만나지만 결국 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 때 ‘가서 한번 봐볼까’ 하며 전시장으로 오게끔 하거나, 미술 전반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재현 학예실장은 “온라인 콘텐츠는 작품이나 작가들의 작품세계, 작가의 일상 등 많은 정보가 있어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단초가 된다”고 평가했다.


사실 젊은 작가들과 미술애호가들 상당수는 이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김지연 독립큐레이터는 “작품전 기회나 전시공간을 얻기 힘든 많은 젊은 작가들, 젊은 기획자들에겐 온라인 채널이 일상화됐다”며 “주류적·기득권이라 할 미술관·갤러리 전시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온라인 공간이 매우 활성화된 상태”라고 밝혔다.

 

 ▲ 사비나미술관은 미술애호가들을 위해 기존 전시회를 VR(가상현실) 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미술시장 측면에선 온라인 콘텐츠가 새로운 고객 확보,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 각종 마케팅의 수단으로 주목된다. 코로나19로 국제아트페어를 취소한 아트바젤 홍콩은 온라인 플랫폼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을 열었다. 국내외 갤러리 230여개가 2000여점을 출품했고, 거래도 예상보다 많이 이뤄진 것으로 추산된다. “갤러리들이 세계의 잠재 고객과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고, 미술시장의 필수 요건인 개인 간 상호작용을 충족하게끔 온라인 뷰잉룸을 설계했다”는 마크 스피글러(아트바젤 글로벌 디렉터)의 말처럼 온라인 플랫폼이 미술품 거래 창구가 된 셈이다. 아트바젤은 내년부터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내 대형 갤러리의 대표도 “시공을 넘어서는 편의성, 첨단기술을 통한 다채로운 작품 정보 파악이 가능한 온라인 콘텐츠는 신흥 컬렉터들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온라인 갤러리·미술품 공동구매 등 갖가지 온라인 미술 플랫폼 관련 기업들은 하나같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온라인 콘텐츠 주목을 “호기” “분기점”으로 평가했다.


온라인 전시, 전시의 의미를 묻다

“웹 화면으로 보는 전시인데 왜 애틋하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이 외투를 벗고 거리로 나오고 미술관 문이 다시 열리면 마음이 벅찰 것 같아요. 전시를 본다는 것, 그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가 이달 초 마련한 온라인 기획전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sixshop.com/bluecs)을 둘러본 관람객(‘곤곤’)이 온라인 방명록에 남긴 후기다. 평소처럼 거리를 거닐고 미술관을 찾는 소소한 일상적 삶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느껴진다. 온라인 전시를 통해 기존 전시, 관람의 의미도 성찰하고 있다.

 

▲ 온라인 기획전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에 참가한 김홍석 작가의 작품 ‘미술관에서의 대화’ /조은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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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전시 반응들이 꽤 많은데 대부분 미술관 휴관 속에 이렇게라도 전시를 보게 해줘 고맙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각각 서울과 뉴욕·런던·파리에 거주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김홍식·박유아·신미경·윤애영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이 전시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들이 만든 전시”라고 표현한다. 그는 기획취지 등을 통해 “확산하는 감염증 소식, 죽음 앞에서 예술이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며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여러 방식 중 전시는 어떤 의미일까? 미술관과 갤러리들의 휴관은 역으로 전시의 풍요로움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손안에서 보는’ 온라인 전시는 코로나19 상황이 낳은 특별한 전시, 온라인·오프라인 전시의 단순한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미술계에 전시의 의미와 가치, 그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전시는 저마다 소중한 구슬인 작품들을 새로운 의미와 가치, 담론으로 꿰어내 관람객의 인식·태도, 일상을 환기시키는 보배로 만드는 작업이다.


조 교수는 “인터넷으로 수많은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은 개개의 작품일 뿐”이라며 “우리가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나는 방식은 ‘해석’, 곧 ‘전시’를 통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기획전을 통해 콘텐츠 소유자의 주도권이 훨씬 크고, 일방적 측면이 강한 점 등 온라인의 역기능도 알게 됐다”며 “전시와 관람의 의미 등을 새삼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지연 독립큐레이터는 “오프라인 전시보다 온라인 전시가 낫다는 평가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온라인 전시·콘텐츠에 대한 최근의 관심이 작가나 큐레이터, 관람객 저마다에게 비판적 성찰의 계기,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는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콘텐츠는 전시 방법론 등 여러 측면에 앞으로 더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며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오게 만들고 직접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깨우치게 하는 기획력,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미술애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오감을 동원하는 전시 관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직장인 윤모씨(30)는 “전시장을 가는 준비부터 전시공간에서 체감하는 분위기, 작품 대면에서 느끼는 아우라, 전시장을 나선 후 동행자들과 감상평 공유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관람 문화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중견 미술평론가들도 “발전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온라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 향후 더 두드러질 것”이라며 “이제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미학을 둘러싼 논의들도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평론가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눈길을 끈 온라인 전시·콘텐츠들이 역설적이게 오프라인 전시의 중요성·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 점은 결국 미술계의 성찰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

(2)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서
경향신문ㅣ2020.04.24 16:40 수정 : 2020.04.24 16:43

 

8500여 작품이 고고히 숨쉬고 있는 미술관 속 ‘금단의 공간’
속된 말로 ‘잘해봐야 본전’인 일이 어느 조직에든 있다. 아무리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일이 잘못돼야 비로소 담당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미술관에도 있다. 한국 미술계를 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소장품·자료 관리’, 즉 수장고 관련 업무다. ‘미술관의 보물’인 소장품과 아카이브의 보존·관리는 잘할 때는 흔적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엄청 눈총을 받는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물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휘젓는 ‘백조의 발’ 같은 일이다.

 

▲ 한국 근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보존·관리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과천관) 내부와 소장품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보존·관리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수장고. 굳이 비교하자면 미술관 전시장은 백조이고, 수장고는 백조의 발이다. 우아한 조명을 받으며 진한 예술적 감동을 안기는 작품들의 전시도 사실은 수장고에서 보존·관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국현 수장고는 근대 이전 문화재가 중심인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와 달리 현대미술품이 핵심이다. 근대부터 동시대 유명 작가 작품까지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8500여점이 자리한 미술관의 심장부다. 그 수장고 소장품을 마주하면 숙연해진다. 인간의 예술활동이 무엇일까란 묵직한 물음부터 미술과 미술관의 발전 과정, 기능과 역할 등을 떠올리게 된다.


소장품, 어떻게 보존·관리될까

흔히 수장고는 ‘보물창고’ ‘금단의 공간’ ‘비밀의 방’ ‘예술품의 집’ 등으로 불린다. 귀하고 소중한 작품들을 보존·관리하다보니 특별한 보안과 보존환경,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느 미술관(박물관) 수장고든 사람들의 눈길·발길을 막는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아 ‘제한구역’ ‘출입엄금’ 팻말도 붙인다. 국현 수장고도 마찬가지다. 수장고는 4개 분관 중 과천관, 청주관에 있다. 서울관·덕수궁관에는 전시될 작품이 임시로 머무는 정거장 같은 수장공간만 있다. 국현이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하고, 1973년 덕수궁 석조전 동관(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옮길 때도 수장공간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장고는 1986년 과천에 지금의 미술관이 세워지면서 구축됐다. 이후 2004년, 2010년 증축과 개선을 통해 현재 과천관에는 9개 수장고, 1개의 임시수장고가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품 보존·관리되는 수장고
과천관 지하, 관람객 접근이 제한된 그곳은
단 3명의 직원만 3중 보안장치 풀어야 문 열 수 있어
장르·재질 등 ‘맞춤형’ 관리…전문가는 정년 앞둔 딱 1명 뿐
청주관은 일부 ‘개방형’…관람객이 소장품 둘러보게 해
미술가들의 작가 노트·편지 등 아카이브 수집도


과천관의 수장고는 관람객들이 찾는 전시장 지하에 있다. 물론 수장고 주변은 일찌감치 관람객 접근이 제한된다. 작품들이 하역되는 임시수장고를 지나면 보기에도 육중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첫번째 수장고 문이다. 국현 직원이라도 3명만이 그 문을 열 수 있다. 그것도 2인 1조가 돼야 한다. 문을 열기 위해선 카드와 지문, 개인 비밀번호의 3중 보안장치 해제가 필요하다. 비밀번호는 3명이 각자 다르고, 서로도 모른다. 3중 보안장치를 해제하자 20㎝가 넘는 듯한 두께의 철문이 스르륵 열린다. 수장고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모든 움직임은 촬영된다. 첨단 전자장치가 숨겨진 철문 문턱을 넘어서자 이번엔 번호가 매겨진 각 수장고의 철문이 줄지어 서 있다. 신발을 갈아신는 등 일정 절차를 마치고 회화 소장품이 있는 수장고 문 앞에 섰다. 다시 3중 보안장치를 푼다.


문을 열자 마침내 깔끔한 공간에 특수제작된 수장대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작품들은 내걸리거나 눕혀지거나 두루마리 등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쉽게 작품에 다가가기 힘들 만큼 고고한 모습이라고 할까. 미술사적 의미 등 저마다 특별한 가치의 원작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작품마다에는 체계적 관리를 위한 관리번호와 작품명·작가명·제작 연도·크기·작품 사진이 기록된 소장품 관리카드가 붙어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 수장고’

 

수장고는 작품 보존을 위해 항온·항습 등 특별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보안만큼이나 신중하고 까다롭다. 회화나 조각·미디어 등 장르별, 또 같은 장르라도 종이냐 금속이냐 나무냐 등 재질에 따라 제각각 ‘맞춤형 보존’을 한다. 물론 보존환경은 365일 단 한순간의 빈틈도 없이 중앙관리시스템으로 실시간 관리한다. 온도는 20±2도, 습도는 55±5% 등이다. 내부 공기의 질까지 검사·분석이 이뤄진다. 이렇게 보존·관리하는 작품은 미술관 내 전시, 국내외 외부 전시를 위해 수장고를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세밀한 보존 상태 점검도 필수다. 외부 대여에는 전시될 공간을 찾아 보안·보존·관리체계 등도 파악한다. 외국 전시도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쿠리어’(courier)가 돼 작품과 동행하기도 한다.


‘백조의 발’에 ‘땀이 날’ 만큼 생각보다 일이 많다. 그렇다면 ‘레지스트라’로 불리는 소장품 관리 전문가는 국현에 몇 명이나 있을까. “수준 높은 소장품 관리를 위해선 레지스트라가 필수적이잖아요? 제대로 된 레지스트라가 되자면 적어도 3년은 담금질을 해야 합니다. 전문 인력의 시급한 양성, 또 현장 투입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인력이 없어요. 미술계에선 이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아는데… 밖에선 인식조차 못하는 것 같아요.” 권성오 레지스트라(57)의 말이다. 놀랍게도 국현에서 그가 유일한 레지스트라다. 정년을 2년여 앞둔 그의 말은 수없는 요청에도 응답 없는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의 인식 부족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들린다.

 

더 확장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

미술관은 미술품 수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다. 미술관의 수준이 소장품 수준에 따라 자리매김된다. 주요 미술관은 해마다 연초에 ‘소장품전’을 열어 자신들의 자부심을 선보인다. 한 점의 소장품이 전 세계 수십만명 관람객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국현은 1972년부터 수집을 시작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기증에 의존한 수집이었고, 주로 근대 작품들이다. 1986년 지금의 미술관이 새로 건립되면서 비로소 동시대 작품, 외국 작가 작품 수집이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소외된 장르의 작품 수집 등 범위와 내용이 확대됐다. 수집 정책의 기본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총괄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컬렉션 구축이다. 그래서 근현대미술사 정립 등에 중요한 작품을 한국화, 회화, 드로잉·판화, 조각, 뉴미디어, 공예, 사진, 서예, 디자인, 건축 등 10개 분류체계로 수집, 관리한다. 작품 수집은 미술관 내외부 전문가들의 제안을 받아 가치·가격 평가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정해진다.


수집은 대부분 구입이다. 그럼, 소장품 예산은 얼마나 될까. 사실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다면 “정말?” 하고 놀랄 정도다. 2017~2018년 61억원이던 것이 지난해는 56억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아예 53억원으로 더 줄어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추상화 선구자인 김환기 화백의 작품 ‘Universe 5-IV-71 #200’(일명 ‘우주’)이 한국 근현대미술품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며 재미동포가 소장하게 됐다. 낙찰가 132억원. 한국을 대표하는 국현의 2년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세계 미술계에서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영 쑥스러운 실정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수장고를 둘러싼 개념도 바뀌고 있다. 수장고 일부를 아예 전시하는 개방형 수장고 도입, 미술 아카이브의 수집·보존·관리에 대한 높은 관심이 대표적이다. 2018년 12월 청주에 문을 연 청주관은 ‘수장형 미술관’이다. 보존·관리를 전제로 하되 관람객이 수장고에 들어가 조각 등 소장품을 둘러보거나, 창문을 통해 수장고 내부를 들여다본다. 새로운 미적 체험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높이고 미술관의 개방·소통 이미지 등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스위스의 샤울라거 미술관이나 영국 V&A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랑스 박물관 등은 선구적이자 주요 사례로 꼽힌다.


아카이브는 요즘 미술관 기획전은 물론 작가 개인전에도 중요한 요소로 선보인다. 아카이브의 의미와 가치가 미술계 안팎에서 평가받으면서 인식이 높아져서다. 실제 국현에도 과천관·서울관에 각각 미술 아카이브의 수집과 보존·관리를 위한 미술연구센터, 디지털 자료를 다루는 디지털정보실이 있다. 미술연구센터의 경우 근현대미술가들의 드로잉·작가 노트·사진·편지 등 18만여점의 원본 자료를 수장고에서 보존·관리하며 열람서비스 등을 한다. 아카이브 수장고에는 특히 국현을 비롯해 건축가 정기용·미술사학자 최열·미술저널리스트 김복기·미디어 아티스트 박현기 등이 생산·수집한 자료가 24개 컬렉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적으로 더 높아지고 있죠. 전국의 공·사립미술관 관계자 등은 벤치마킹을 위해 많이들 찾습니다. 국현으로선 인력·예산 등의 한계가 있는 만큼 이제는 지자체들의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죠. 전국적으로 수집과 보존·관리·활용을 분담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적 네트워크 구성이 절실합니다.” 미술연구센터 류한승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미술관들은 시민들로부터 사회적 기능과 역할의 대폭적 확장도 요구받고 있다. 사실 미술관 발전사는 곧 시민 요구에 대한 대응사다. 전근대적 시기의 미술품 수집·전시는 특권계층의 부나 권력,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적 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비로소 가치와 의미 있는 문화예술품이 시민에게 공개됐다. 한때 미술관은 시민을 위한다면서도 공개를 꺼려 ‘명작의 무덤’ ‘미술품, 작가의 공동묘지’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를 거치며 미술관은 연구를 통한 전시 활성화 등으로 역할과 기능을 확대해왔다. 이제는 이를 넘어 더 적극적 활용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방위적인 활동이 요구된다. 시민들은 보다 풍성하고 의미 있는 문화향유권을 누리고자 한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미술관의 더 알차고 풍부한 소장품 확보와 보존·관리, 연구와 전시, 문화생활 욕구를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활성화 등이다. 개방형 수장고, 아카이브 관리, 갖가지 교육·체험 프로그램 도입 등이 그 사례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속에 온라인 전시 활성화 같은 미술관의 유연성은 호응을 받게 마련이다. 문화예술 여느 분야처럼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 많은 요구로 미술관은 발전한다. 코로나19로 닫힌 미술관의 문이 열리면 모두가 즐길 일이다. 전시와 각종 프로그램을 누리면서 ‘백조의 발’ 같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들도 떠올렸으면 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

(3)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예술인가 기술인가?

경향신문ㅣ도재기 선임기자 입력 2020.05.22. 16:05 수정 2020.05.22. 23:26 댓글 158개

 

AI 화가, 빅 퀘스천을 던지다

두민(도성민) 작가와 (주)펄스나인의 ‘이메진AI’ 협업 작품인 ‘commune with…’(2019, 60×120㎝). 독도를 소재로 ‘인간 화가’와 ‘AI 화가’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수면 위는 두민 작가, 아래는 이메진AI의 작품이다. 아이아갤러리 제공
두민(도성민) 작가와 (주)펄스나인의 ‘이메진AI’ 협업 작품인 ‘commune with…’(2019, 60×120㎝). 독도를 소재로 ‘인간 화가’와 ‘AI 화가’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수면 위는 두민 작가, 아래는 이메진AI의 작품이다. 아이아갤러리 제공


인공지능(AI)의 힘을 일상생활 곳곳에서 체감하는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AI가 향후 우리 삶을 얼마나 어떻게 변혁시킬지 전망조차 쉽지 않다. 1950년대 초보적 AI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지나 이제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진화했다. AI는 과학·산업 측면뿐 아니라 미술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에서도 주목된다. 나름의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쓴다. 이른바 ‘AI 미술가’ ‘AI 화가’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고, ‘AI 시인’의 시는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AI 작곡가’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다. 국내외적으로 ‘AI 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갤러리와 경매를 통해 작품 거래가 이뤄지며 미술시장의 한 축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술 활동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인간다움이란 또 무엇인가
1만5000개 이미지 학습한 AI의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
질감까지 살려낸 ‘더 넥스트 렘브란트’ 등 ‘AI 아트’의 진화는
인간에 맞설 경쟁자의 탄생일까 아니면 새 장르의 출현일까
‘인간의 저작물’ 만을 대상으로 하는 저작권법에도 대변혁 예고

 

AI시대의 미술, 예술을 둘러싼 여러 주장과 견해들이 백가쟁명 속에 갑론을박을 벌인다. ‘AI 화가’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창조적 예술활동을 시도하면서 ‘인간 화가’를 돕는 첨단 도구일 뿐이라는 시각부터 제2의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과연 ‘AI 화가’의 작품은 우리가 말하는 예술작품인가 아닌가? 왜 예술작품이고 어떻게 예술작품이 아닌가, 예술활동은 인간만의 것인가, 그럼 예술이란 무엇이고 인간·인간다움이란 또 무엇인가…. 정립되지 못한 개념과 용어들 속에 물음이 꼬리를 문다. AI가 예술의 본질,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 ‘빅 퀘스천’을 던지는 것이다. 담론 차원만도 아니다.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주체와 범위 등 AI 관련 저작권도 검토하고 있다. 시대적 요구 및 해외 주요국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6월이면 1차 논의가 마무리된다. ‘인간의 저작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현 저작권법에 대변혁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AI 화가’의 예술적 시도

AI 작품이 국제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것은 2018년 10월이다. 크리스티 미국 뉴욕 경매에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영어로 Edmond Belamy)가 추정가의 40배를 넘은 43만여달러에 낙찰되면서다.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 작품들과 함께 크리스티 경매의 첫 ‘AI 작품’으로 출품돼 소장 미술품이 된 것이다. 당시 크리스티의 리처드 로이드는 “AI는 향후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견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향후 미술시장에 충격을 줄 여러 기술의 하나”라고 밝혔다.

 

▲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AI 작품’으로 출품돼 43만여달러에 낙찰된 ‘에드몽 드 벨라미’(영어로 Edmond Belamy)’. /크리스티옥션 제공


이 초상화는 프랑스의 AI 예술팀인 ‘오비어스’(Obvious)의 기획으로 이미지 생성에 주로 활용되는 AI 알고리즘(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의 결과물로 알려졌다. 캔버스에 인쇄된 작품은 14~20세기에 걸친 1만5000여 작품 이미지를 기반으로 탄생됐다. GAN은 ‘진짜 같은 가짜’의 이미지나 음성 등을 만들어내 놀라움과 우려를 함께 낳는다. 지난해 3월에는 독일 작가 마리오 클링게만의 AI 작품 ‘행인의 기억 I’이 소더비 경매에서 4만파운드에 팔렸다. 구글이 만든 ‘AI 화가’로 불리는 ‘딥드림’(Deep Dream)의 작품은 2016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딥드림은 특정 이미지를 입력하면 반 고흐·르누아르 등 유명 화가의 화풍이 적용된 이미지로 거듭난다. 다국적 금융그룹 ING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도 미술계에 잘 알려져 있다. 렘브란트 작품의 색채나 구도·기법 등을 학습한 AI가 작품 표면의 질감까지도 드러낸다. 전문가들도 렘브란트 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여서 ‘렘브란트의 부활’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 ‘AICAN’ 작품으로 미국 마이애미 스코프 아트페어에서 소개된 ‘Green Genesis’(2018). /Image courtesy of AICAN


미국 럿거스대학·페이스북 등은 GAN을 진화시켰다는 CAN을 개발, ‘AICAN’이라 이름 붙였다. 럿거스대 마리언 마조네·아흐메드 엘가말 교수는 창의성이 강조된 AICAN은 기존과 달리 특정 화가·작품의 화풍을 넘어 ‘새롭고 창조적 예술작품을 창작한다’고 말한다. 딥드림, 넥스트 렘브란트 등과는 격이 다른 ‘AI 화가’라는 주장이다. 실제 관람객 대상 조사에서 ‘인간 화가’의 작품과 잘 구별되지 않았다. 이 밖에 작가·프로그램 개발자인 헤럴드 코헨의 로봇 화가 ‘아론’(Aaron) 등도 있다. 세계적으로 ‘AI 아트’ 연구는 단순한 이미지 변환·생성부터 진화된 최첨단 기술로까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카이스트(KAIST)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AI 연구진, (주)펄스나인·(주)인공지능연구원 같은 기업이 전시회 등을 통해 AI 관련 작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또 ‘AI 아트’에 관심 있는 작가들, 미술 애호가들이 AI와 협업하거나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주사위를 소재로 한 극사실적 작품으로 잘 알려진 두민(44·도성민) 작가와 펄스나인의 ‘AI 화가’라 할 ‘이메진AI’의 협업 작품 ‘Commune with…’가 지난해 9월 공개돼 주목을 끌었다. 독도를 소재로 한, ‘교감하다’라는 뜻의 작품은 ‘인간 화가’와 ‘AI 화가’의 첫 협업 작품으로 불린다. 캔버스 화면의 수면 위는 두민 작가의 유화이며, 수면 아래는 이메진AI의 작품이 인쇄됐다. 물론 이메진AI의 단독 작품들도 있다. 사진가 이수진, AI 엔지니어인 임채석 등은 AI를 작업 도구로 활용한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창작활동 도구인 ‘페인틀리AI’도 선보인 펄스나인이 서울에 문을 연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갤러리’에선 비정기 전시회와 경매·관련 세미나 등도 열린다. 아이아갤러리에 따르면 ‘AI 아트’는 10만~3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며,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AI, 우리를 성찰케 하다

AI의 진화 양상을 보며 사회적으로 낙관적인 테크노필리아와 비관적인 테크노포비아의 시각에 따라 뜨거운 논쟁도 벌어진다. 미술계 안팎에서도 AI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그 작품을 둘러싼 토론회 등 논의가 무성하다. AI 작품을 인간 화가의 예술작품과 같은 의미의 예술작품으로 볼 것인가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예술작품은 디지털화가 힘든 사고력이나 직관력·상상력·창의성 등의 산물로 여겨진다. AI 작품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란 질문에 답을 하자면 예술과 예술작품의 본질, 직관과 상상·창의성 같은 인간 고유의 특성 등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AI가 꽤나 뜨거운 논의가 필요한 근원적 질문들을 내놓은 셈이다.

 

▲ 독도의 여름(왼쪽)과 가을을 표현한 ‘이메진AI’의 ‘Dokdo’(2019, 120×50㎝). /아이아갤러리 제공

 

아직까지 AI 작품은 인간 예술작품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알고리즘 개발부터 데이터 제공, 설사 AI 스스로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이건 작품이다”라고 선별하는 등 작품화 과정 곳곳에서 인간의 개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고유의 창의성에 따른 새로운 창조물이라기보다 인간이 제공한 정보의 새로운 조합이라는 것이다. 창작의 주체 문제를 따져봐도 인간 고유의 주체적 특성을 AI가 대체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 등도 결국 성장하면서 습득한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한 결과물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머지않은 미래엔 더 진화된 AI가 인간의 개입을 없애고 창의적 예술작품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오히려 기존의 예술, 예술작품에 대한 개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의 작품들. /더 넥스트 렘브란트 홈페이지

 

여기에 AI의 새로운 창의성조차도 결국은 인공적인 창의성 아니냐는 반론이 이어진다. 미술사가들은 AI가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작가로서의 해석, 가치부여 등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미술교육자인 펠드먼의 서술~분석~해석~평가라는 유명한 미술작품 감상·비평의 4단계론으로 보면 AI 작품은 거론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 화가의 작품과 구별되지 않고,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관람객·소장가들이 예술작품으로 여기면 어떻게 될까? 일부에선 ‘인간 화가’의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회화는 쇠퇴한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회화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사진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발터 베냐민 등의 통찰력을 언급하며 창조적 예술작품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넘어 AI 작품이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네덜란드 정부는 AI 기반의 작품을 ‘전산 예술’로 평가하며 새로운 장르 개척에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주목받는 디지털아트처럼 AI 아트도 신선한 예술적 체험을 풍성하게 안기고, 더 많은 사람이 편하고 쉽게 AI를 활용해 활발한 미술활동을 펼칠 수도 있다. 보다 풍성한 문화예술 향유의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AI가 진정 주체적 ‘AI 화가’가 될지, 인간 화가의 창의성·기법·영감 등을 돕는 도구가 될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그것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고, AI가 이미 미술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작품이 예술작품이라면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진다. 저작권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AI 알고리즘, 알고리즘 개발자, 데이터 저작자나 제공자, 작업 운용자…. AI로 인해 나오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인류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AI가 던진 예술과 인간의 본질 등에 관한 근원적 질문들의 답을 끊임없이 찾아왔으며 아직도 찾고 있다.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 결국은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이자, 우리 스스로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이해일 수 있어서다. 폴 고갱은 100여년 전 죽음을 앞두고 예술혼을 쏟아부은 작품의 화면 귀퉁이에 한 문장을 써놓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Beautiful Chinese Music - Chinese Zither and Bamboo Flut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