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 "통일 행진곡" 김광섭 작사/ 전국취주악연맹 작곡 < 1 >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동포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해
동포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해
1965년도 고등학생시절, 순천송광사(順天 松廣寺)로 봄 소풍갔었습니다. 각 학급별로 버스대절(貸切)했었는데, ‘매인당(每人 當) 200원(2010년대 화폐가치 20,000원 상당)씩 갹출(醵出)했었음’으로 기억됩니다. 따라서 가정형편 어려워(가난함) 소풍 포기한 친구들 더러 있었는데, 나 역시 그 부류(部類)였습니다. 그래서 ‘빈 교실에서 자습(自習)’하려는 마음으로 학교 나갔었는데 마침, 소풍참가자들 태우고 출발하려던 버스에서 학급반장이 나를 보고선 불렀습니다. 버스에 빈 좌석 있으니 ‘오르라(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삼삼오오(三三五五)짝지어 도시락들 펼쳤습니다만 나는 도시락준비 안했기 때문에 혼자 서성거리다 마침, 주머니에 10원 들어있기에 5원짜리 빵 2개 샀습니다. 그리고선 외진(한적한)곳에서 먹으려고 버스 옆 지나는데 차장(車掌 - 당시엔 bus안내양을 차장이라 호칭했음)아가씨 혼자서 우두커니 서있기에, ‘저 아가씨도 나처럼 도시락준비 안 했나보다.’ 생각되어 받으라고 내밀었습니다만 그러나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줍어서 그러나 보다…’생각하고선 그녀 의자(倚子)에 올려놓았더니 못 본체하고선 곧장, 식당(食堂 - 대중음식점)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야속하다…’생각하며 되 집으려 하자, 다른 반 친구 둘이서 지켜보다간 일부러 짓궂은 표정 지으며, “야아~ 이게, 웬 빵이지?”냉큼 집어가 버렸습니다. 그 친구들은, 내가 차장아가씨에게 빵 건네다 거절당하는 광경 보고선 조롱(嘲弄)하는 눈치였고 나는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차장아가씨는, ‘돈 없어서 밥 굶음’아니었던 겁니다. 그날 나는, ‘세상에,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 없겠구나.’생각했었습니다. 앞바퀴 뒷바퀴 자동차바퀴 앞에는 운전수(運轉手) 뒤에는 차장(車掌) 새벽부터 밤중까지 뼈 빠지게 벌어도 휘발유(揮發油)값 빼고 나면 밥값도 없다 불쌍한 우리들 배고프다(허기지다) 차장아 돈(승차요금) 받아라. 휘발유 사게 공짜로 타는 놈들 잡아서 족쳐라
당시(當時)불려 지던 국민가요(國民歌謠) ‘통일행진곡(統一 行進曲)’ 노래에 빗대어서(개사하여) 버스승무원(乘務員 - 운전사와 차장)들 비하(卑下)하여 만든 자조적(自嘲的)노래였습니다. 압박(壓迫)과 설움에서 해방(解放)된 민족(民族)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공산(共産) 오랑캐의 침략(侵略)을 받아 공산(共産) 오랑캐의 침략(侵略)을 받아 자유(自由)의 인민(人民)들 피를 흘린다 동포(同胞)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爲)해 손잡고 백두산(白頭山)에 태극기(太極旗) 날리자
살거나 죽거나 이 땅의 겨레 무찌르고 넘어진 용사(勇士)와 함께 이북(以北)은 부른다. 눈물의 강토(疆土) 이북(以北)은 부른다. 눈물의 강토(疆土) 민주통일(民主統一) 독립(獨立)을 싸워서 찾자 동포(同胞)여 일어나라 나라를 위(爲)해 손잡고 백두산(白頭山)에 태극기(太極旗) 날리자 [출처: 익산봉산산악회 /자유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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