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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주택연금] "집 안 물려줘도 괜찮아요, 용돈으로 쓰세요"

잠용(潛蓉) 2020. 1. 5. 09:28

"집 안 물려줘도 괜찮아요, 용돈으로 쓰세요"...

자식이 더 권하는 주택연금
중앙일보ㅣ장원석 입력 2020.01.05. 06:00 수정 2020.01.05. 06:58 댓글 450개     
 
가입자 4년 연속 1만명대 증가, "자식에게 부담주지 말자" 의식 변화
'일찍 가입하는 유리' 현실론도, 집값 크게 오르면 중도 해지 가능

5년 전 은퇴한 조태석(가명·65) 씨는 지난해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명절에 모인 자녀들의 권유를 받고서다. 퇴직 무렵부터 가입을 고민했지만 하나뿐인 집을 담보로 잡히는 게 불안해 망설이던 차였다. 조 씨는 “집 한 채는 물려주고픈 마음이 컸는데 걱정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사시라는 말이 참 고마웠다”며 “실제로 생활비를 조금 넉넉하게 쓸 수 있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 주택연금 가입자가 7만명(12월 15일 기준 7만343명)을 넘어섰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본인이 소유한 주택(합산 9억원 이하)을 맡기고, 평생 연금을 받는 상품이다. 국가가 보증하는 대표적인 역모기지다. 2007년 도입했는데 초기엔 반응이 시큰둥했다. 1만명을 돌파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최근엔 다르다. 2016년 이후엔 매년 약 1만명씩 가입자가 늘고 있다.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다. 일단 반드시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졌다. 주택연금의 최대 장점은 살던 집에 계속 머물면서 연금을 받는다는 점이다. 초기엔 '집을 빼앗기는 것'이란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주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당장 집의 소유권이 넘어가는 게 아니란 점이 알려졌다. 또 나중의 상속보단 현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부모가 많아졌다. 자녀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함태규 주택금융공사 서울동부지사 상담실장은 “‘집 한 채라도 물려줘야지’라는 생각보단 ‘용돈이나 생활비를 받아 쓰면 그게 더 부담’이란 생각이 강해졌다”며 “최근엔 자녀가 먼저 상담을 받고, 부모와 함께 방문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가입자 1년에 1만명씩 증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왕 할 거면 빨리 가입하는 게 낫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현재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2세, 평균 월 101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가입자의 65%가 죽을 때까지 받는 종신지급형을 택했다. 이따금 일정 금액을 목돈으로 빼서 쓸 수 있는 혼합 방식까지 합하면 종신지급형이 10명 중 9명이다. 일찍 가입해 오래 받을수록 가입자에겐 이득이란 뜻이다. 앞으로도 주택연금의 인기는 꾸준할 전망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 연령에 접어들었지만, 상당수는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 주택연금은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다. 살면서 연금을 받는다는 장점 외에도 주택연금은 매력이 있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고,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해도 감액 없이 연금을 준다.


▲ 숫자로 본 주택연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연금 지급액은 기대수명, 금리, 주택가격상승률 등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주택가격상승률이 가입 시점의 예상보다 낮아져도 기존 가입자의 연금액은 바뀌지 않는다. 가입자가 오래 살수록, 주택가격이 덜 오를수록 가입자에게 유리한 상품인 셈이다. 반대로 단기간에 집값이 크게 뛰었다면 중간에 해지하면 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없고, 그동안 받은 연금과 함께 초기 보증료 등을 상환하면 된다. 상속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부부 모두 사망한 뒤에 주택을 처분한 금액이 지급한 연금 총액보다 크면 차액은 상속자의 몫이다. 반대로 연금 지급액이 더 많을 땐 담보인 주택만 넘기면 된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가입을 권장한다. 주택연금과 같은 역모기지가 고령층의 노후 빈곤을 해결할 핵심 대안 중 하나여서다. 올해 1분기부터는 가입 기준 나이를 만 60세에서 만 55세(부부 중 1인) 이상으로 낮춘다. 주택금융공사는 보통 매년 3월 초에 주택연금 월지급액을 조정하는데, 해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왕 가입할 거면 2월까지 신청해두는 게 유리하다. 아울러 주택연금 대상 주택의 기준 가격을 시가 9억원에서 공시가격 9억원으로 바꾸고 주거용 오피스텔도 가입할 수 있게 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더 많은 분이 주택연금으로 노후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