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오차범위 1m 정밀 타격...'북핵 벙커' 초토화 독침
중앙일보ㅣ박용한 입력 2021. 10. 03. 06:00 댓글 8개
□ 북핵 지하 시설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유도탄 개발 현장을 다녀왔다. 군 당국이 언론에 ‘장공지’ 유도탄을 직접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북한은 신형 미사일을 연이어 발표했다. 유도탄은 북한 위협을 조기에 제거할 독침이다. 군 당국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국산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이날 유도탄을 살펴보는 문 대통령과 일부 시험 영상만 제공돼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23일 LIG넥스원 유도무기체계조립동을 찾아가 유도탄을 세세하게 살펴봤다. 유도탄 개발을 주관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는 현장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궁금증도 해결해 줬다. 이날 현장에서 추가로 공개한 시험 영상을 보면 ‘이미 유도탄 국내 개발이 끝난 것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꽤 많은 진척을 보였다. 공군 전투기 동체에서 분리(발사)된 유도탄은 안정적으로 비행한 뒤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했다.
국산 유도탄 겉모습은 독일 타우러스(TAURUS) 와 비슷하다. 군 당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공군 F-15K 전투기에 장착해 운용하는 타우러스 350K를 2016년부터 도입해 실전 배치했다. 타우러스는 최대 사거리는 500㎞ 수준이며 아음속(약 시속 1000㎞)으로 비행한 뒤 1~2m 내 오차범위 내 정밀하게 타격이 가능하다. 최대 6m 두께 강화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어 적 지하 벙커 3개 층을 뚫고 들어가 폭발한다.
▲ 전투기에서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이 분리되는 순간. /방위사업청
▲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이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명중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 군 당국은 지난달 23일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을 개발하고 있는 LIG넥스원 유도무기체계조립동에서 유도탄을 공개했다. /영상캡처=왕준열
▲ 2017년 7월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화성-14'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기념공연 무대 배경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갱도로 보이는 지하 시설 내부에서 군수 분야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의 사진이 등장했다. /조선중앙TV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신형 공대지 활강유도 폭탄(天雷) 톈레이 500. /CCTV 캡처
3차례 시험 발사 성공… 국산화 청신호
벙커 파괴 유도탄은 적 지휘시설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시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영화 ‘강철비’에서 공군 전투기에서 쏜 타우러스가 북한군 벙커를 파괴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전투기와 폭격기에 장착하는 신형 공대지 활공 유도탄 ‘톈레이(天雷) 500’을 개발했다. 타우러스와 같은 갱도 관통 능력은 없고 최대 사거리도 90㎞ 수준으로 짧다. 일본은 F-15 전투기에 탑재하는 재즘(JASSM)을 미국에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최대 사거리는 1000㎞ 수준으로 타우러스보다 더 멀리 날아가지만 관통 능력은 비교적 낮다.
핵심 표적 타격 ‘정밀·고위력·스텔스’ 유도탄
군 당국은 타우러스를 도입했던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1차 사업’에 이어 2차 사업에선 정밀 유도 무기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다. 2018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천룡’이라는 별칭을 붙여 개발을 주관하고 LIG넥스원이 시제 개발업체로 참여했다. 국내에서 개발하는 KF-21 ‘보라매’ 전투기에 탑재하는 국산 유도탄 개발을 2028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방산 업계는 국내 개발 전투기에 무장하는 유도탄까지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수출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한다.
군 관계자는 “개발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해외에서 도입하던 유도탄보다 낮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며 “독자적인 제조 기술을 확보해 해외 수출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천룡은 타우러스처럼 복합적인 정밀 유도가 가능하다. 영상ㆍ지형 대조 및 종말 유도 기능을 갖춰 오차범위 1~2m 이내 족집게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낮은 고도로 저공 비행하기 때문에 적 레이더가 찾아내기 어렵다.
직접 살펴본 천룡은 타우러스와 재즘을 합쳐놓은 형상이다. 유도탄 앞부분은 날렵한 것이 재즘과 비슷하고 날개와 전체적인 형상은 타우러스와 비슷하다. 천룡은 타우러스보다 항재밍 능력을 강화해 더 높은 신뢰성을 기대할 수 있다. 타우러스와 달리 투박한 동체는 스텔스 형상으로 다듬었다. 게다가 특수도료까지 발라 적 레이더에 발견될 확률을 크게 줄였다.전투기는 표적 정보가 입력된 유도탄을 장착하고 이륙한 뒤 공중에서 발사하는 역할이다. 타우러스는 표적 정보를 2개만 저장할 수 있고 전투기 조종사는 이 중 하나를 골라 공격한다.
▲ 지난달 23일 LIG넥스원 유도무기체계조립동에서 관계자들이 개발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영상캡처=왕준열
▲ 2017년 9월 공군 F-15K에서 발사된 장거리 공대지 유도미사일 '타우러스(TAURUS)'가 자체항법으로 고속 순항비행해 목표물로 향하고 있다. /공군
▲ 전투기와 폭격기에 장착가능한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AGM-158 재즘(JASSM). /미 공군
▲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이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명중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 지난 4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韓 ‘천룡’ 겉모습, 獨 타우러스· 美 재즘 비슷해
천룡은 수 배 더 많은 표적을 저장할 수 있다. 조종사가 공중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이 많이 늘어나 작전 융통성이 커진다. 북핵 시설을 실시간 꼼꼼하게 살펴보다 유도탄 발사 마지막 순간에 최적의 타격 장소를 고를 수 있다. 천룡은 타우러스와 비슷한 무게지만 더 멀리 날아가 타격할 수 있다. 제트 엔진으로 비행하며 타우러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아음속으로 더 빠르게 비행할 수 있다. 타우러스는 비행 직전에 연료를 주입하지만, 천룡은 연료를 주입한 상태로 5~10년간 보관할 수 있다. 전투기 출격 준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즉각적인 작전 투입도 가능하다. 급박한 상황에선 시간 단축이 작전 성공을 결정하기도 한다.
지난 15일에 앞서 이달 3일과 8월 20일에 이뤄진 3차례 시험 모두 성공했다. F-4E 팬텀 전투기에서 떨어뜨린 유도탄이 13㎞ 거리를 날아간 뒤 목표지점을 명중했다. 이번엔 엔진을 장착하지 않고 날개와 일부 유도기능으로 활공 비행만 했다. 개발을 완료하면 최대 500㎞ 거리를 비행한 뒤 목표 지점을 타격할 수 있다. ADD 관계자는 “항공기에 장착하는 체계통합과 분리 시험 성공이 갖는 의미가 크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초기 개발 과정에 전투기에 분리된 유도탄이 제대로 비행하지 못하고 전투기에 부딪혀 폭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유도탄 국내 개발 성공이 어렵다고 전망을 했다. 하지만 이번 시험 성공으로 이런 우려는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방산 전문가들은 국내 개발 역량과 경험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국산 유도탄 성능이 더 뛰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ADD는 현무와 SLBM 등 다수의 유도무기 개발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LIG넥스원은 ‘중거리 GPS 유도키트’ 함대함 순항 유도무기 ‘해성’ 등 다수의 공대지ㆍ 순항 유도무기 및 KF-21에 탑재하는 통합전자전체계(EW Suite) 등 유도무기연동 개발에도 참여했다. 유도탄 국내 독자 개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는 배경이다.
[박용한 기자ㆍ영상=왕준열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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