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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

[無相戒] "北邙山 가는 길" (2002) - 보현스님 창

잠용(潛蓉) 2022. 12. 7. 14:29

 

[無相戒] 北邙山 가는 길  (2002)
唱/ 普賢스님
(앨범/ 2002-07-01 OasisRecord (ORC-1784)

< 1 >
곱디 고운 베옷 입고 
꽃신 신고 가는 님아
이승의 짐 훌훌 벗고 
고이 가소 情든 님아~

娑婆苦海 苦痛일랑 
漢江 물에 띄우고
지난 날 맺힌 恨 
바람결에 흩날리고~

地藏菩薩 迎接 받아 
西方淨土 往生하여
阿彌陀佛 親히 뵙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 2 >
泰山峻嶺 茫茫大海 
歲月 속에 變하는데
百年 안팎 짧은 人生 
生老病死 免할손가?

부처님이 이르시되 
四大六身 虛妄하여
因緣 따라 태어났다 
因緣 따라 간다 했소~

地藏菩薩 迎接 받아 
西方淨土 往生하여
阿彌陀佛 親히 뵙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부디 成佛 하고지고~)

 

 


무상계(無相戒): 일반적으로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하여, 신수의 북종은 점점 깨쳐 나가는 점오(漸悟), 혜능의 남종은 단박에 깨치는 돈오(頓悟)라고 한다. 혜능은 반야바라밀의 실천과 더불어 무상계(無相戒)를 설하고 있는데, 이 무상계는 무념 · 무상 · 무주에 의거해서 형식적인 장엄이나 의례를 배척하고, 자신의 청정한 성품에 귀의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신 속에 있는 청정한 법신(法身)에 따라 생각하는 작용이 화신(化身)이고, 생각마다 선하면 보신(報身)이다. 이 도리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는게 귀의이다. 모두 자신의 몸으로 무상계를 받도록 하라. 모두 나를 따라 말하라. 자신의 3신불(三身佛)을 보게 하리라. "내 육신의 청정한 법신불(法身佛)에 귀의하고, 내 육신의 천백억 화신불(化身佛)에 귀의하고, 내 육신의 원만한 보신불(報身佛)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라" (이상 세 번 반복함) 육신은 집과 같다. 3신(身)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자신의 성품 속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 있으나 어리석어 보지 못하고 밖에서 3신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육신 속에 있는 3신불을 보지 못한다.
<출처/ 敦煌本 六祖壇經>

북망산 (北邙山):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옛날 중국의 북망산에 제왕(帝王)이나 명사(名士)들의 무덤이 많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 중국 허난 성(河南省) 뤄양(洛陽)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역대 제왕(帝王)과 명사(名士)들의 무덤이 많았으나, 지금은 논밭과 목장이 있다. ‘북망’은 중국어 ‘Beimang[北邙]’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생(一生)을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까요?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까요?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가는 또 다른 세상(世上)이 있긴 있는 걸까요?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다간 많은 성현(聖賢)들은 이 물음에 대하여 고민했지만 시원하게 답(答)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問題)이며 아마 답(答)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事實)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도 죽었고 천하(天下)의 영웅호걸(英雄豪傑)과 절세가인들도 이 땅의 삶을 일장춘몽(日長春夢)으로 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길로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엄마의 복중에서 10개월을 지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기뻐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니 원통해서 운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은 숙명적으로 예견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뤄양시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입니다. 뤄양은 B.C. 11세기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이곳에 왕성을 쌓은 이래 후한(後漢)을 비롯한 서진(西晉). 북위(北魏). 후당(後唐) 등 여러 나라의 도읍지로서 역사적으로 번창하였던 곳입니다. 그만큼 뤄양에는 많은 귀인과 명사들이 살았으며, 이들이 죽은 뒤. 대개 북망산에 묻히고 있어 이곳에는 한나라 이후의 역대 제왕과 귀인. 명사들의 무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연유로 어느 때부터 인가 북망산이라고 하면 무덤이 많은 곳.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고, 지금도 [북망산천(北邙山川)] 하면 무덤이 많은 곳. 즉.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 [북망산 가는 길] 하면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세계(現實世界)의 북망산(北邙山)으로써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북망산(北邙山)과 비슷하지만, 여기서의 북망산(北邙山)은 영계(靈界)에 북망산(北邙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靈魂)이 인간의 육신(肉身)으로 태어날 때도 북망산(北邙山)을 거쳐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영계(靈界)의 모든 비밀과 그곳에서의 생활(生活)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야하는 일 때문이랍니다. 영혼(靈魂)이 이 세상에 새 생명(生命)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북망산(北邙山)을 거쳐 그곳에 있는 노파의 주막(酎幕)에서 술을 먹은 후 영계(靈界)의 모든 비밀을 기억에서 제거한 뒤에 인간세상(人間世上)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만일 영계(靈界)에서 올 때 요행히 노파의 술을 마시지 않고 인간(人間)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이 사람은 영계(靈界)의 비밀을 기억 속에 담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천기(天氣)를 다스리는 능력(能力)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기(天氣)를 알기 때문에 신통력(神通力)이 있어 예언하는 능력(能力)과 병(病)을 고치는 능력(能力)등 초능력(超能力)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이 살다가 죽는 상황의 첫째 유형은 먼저 심장의 기능이 정지되어 피가 멈추고 육신(肉身)의 기능이 정지되는 죽음이 있고, 두 번째는 육신은 살아있는데, 뇌(腦)의 기능이 상실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식물인간(植物人間)이라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날 의학(醫學)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人間)의 수명(壽命)이 연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죽음의 흉함은 더 많아졌고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꺼번에 엄청난 사람이 죽는 가공할 무기가 개발되어 있고 특히 원자탄의 위력은 2차 대전 때 일본(日本)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그 위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또한, 거리에 다니는 각종 차량도 사람에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이지만, 이것 또한 죽음의 흉기로써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이든 간에 고통(苦痛)이 수반됩니다. 그 고통(苦痛)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현(先賢)들은 편안하게 임종(臨終)을 맞는 것도 복(福)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준은 천수(天壽)를 다하고 죽는 것이죠. 객사(客死)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家族)들이 모인 앞에서 마지막 유언(遺言)을 남기고 죽는 것 등입니다. 지금. 설명하려는 북망산(北邙山)이라고 하는 산(山)은 이곳에서 말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산(山)을 뜻함이 아니라, 영계(靈界)에 있는 산(山)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혼백이 육신(肉身)에서 빠져나가게 되는데, 저승사자와 함께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인 북망산(北邙山)을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산(山)이 어찌나 가파르고 험준하던지 한번 오르면 다시 내려갈 수 없도록 되어있답니다. 우리는 험준한 산을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산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도 북동쪽, 네팔과 중국(티베트) 국경에 솟아있는 세계 최고의 산이며. 높이가 8,848m] 이런 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이와 험준하기로는 우리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를 때는 저승사자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만, 만일에 혼자서 그 산을 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인간의 산술적 계산으로 따진다 하여도 수 천년이 걸려도 오르지 못할 그런 산이라는 겁니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천 수만 길의 낭떠러지가 여러 군데 있으며, 거기서 추락하면 형체커녕 가루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는 주막집이 하나있으며, 그 주막에서는 한 노파가 술을 팔고 있는데, 그 노파가 술을 팔게된지는 매우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주막에서 파는 술의 이름은 감로주라고 하는데, 어찌나 술맛이 좋은지 한번 맛을 보면 평소에 술을 못 마시던 사람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퍼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술의 향기는 이 세상에서 평생 맡아보지 못한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그런 향으로써 사람의 후각을 완전히 뿅? 하게 한답니다. 그리고, 그 노파의 술 파는 솜씨는 기가 막히게 수완이 좋아서, 그 어느 누구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 곳을 통과할 수 없으며, 또한 노파는 탁월한 신통력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변장술로 변장을 하여 꼭 술을 마시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술을 마시는 순간. 이승에 있었던 모든 기억이 말끔히 사라지는 감로주(망각의 술) 그런 술이죠. 그래서 이 술이 마실 때는 좋지만 일단 마시고 나면 누구나 후회를 한답니다.

즉. 이 술을 마시지 않는 자는 인간세상에서 나뿐 짓을 했건 좋은 일을 했건 간에 상관없이 천당(극락)으로 직행을 하지만, 이 술을 마시면 일단 지옥으로 보내지거나, 차후에 정상이 참작되면 중립지대인 구천에서 떠돌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 노파가 술장사를 시작한 동기는 염라대왕의 특별한 지시에 의해서 라고 합니다. 술장사를 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저승으로 들어갔으며, 죄의 과다(過多)와 선행(善行)의 기준으로 천당과 지옥으로 보내져야 하는데, 술을 안 먹은 상태에서는 죄를 지은 기록이 나타나지 않아 모두 천당으로 보낼 수밖에 없어 궁리 끝에 노파에게 술을 팔게 하는 특별임무를 수행하게 한 것이죠. 그래서, 노파는 염라대왕으로부터 죽어서 오는 사람(亡者)의 신원을 미리 자세하게 파악하여 그 사람이 생전에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그가 좋아했던 것으로 유혹을 한다는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생전에 여색을 밝혔다면,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유혹한 후에 술을 먹이는 그런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노파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만 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존경받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도 술을 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이나 목사님들도 이곳을 그냥 빠져나갈 수 없답니다. 스님이나 목사님이 술을 마시게되면 천당(극락)으로는 갈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그 유혹을 뿌리치고 그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답니다. 또한, 재물을 탐한 자는 온갖 금은보화로 유혹하는 그런 식이지요. 때로는 요녀(妖女)로 때로는 악마(惡魔)로 변신하면서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꼭 술을 마시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망각의 술을 마시면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면 큰 강이 앞에 나타나는데, 그 강을 건너야만 완전히 영(靈)계에 정착하게 됩니다. 강 건너 저쪽에는 찬란한 광채와 온갖 보석들로 꾸며진 고대광실(高臺廣室)의 좋은 집들과 이 세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리며, 한 사람에게 여러 명의 천사가 늘 따라다니며 보호해주며, 낮과 밤의 구별이 없으며, 항상 밝고 찬란한 빛이 비추어 그림자가 없고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랍니다. 자기가 가고자 원하는 곳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즉, 예를 들어 우리가 100km를 차량을 이용하여 1시간에 간다면 거기는 100km의 수만 배가 되는 거리일지라도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강을 건너는 것은 배(船)를 이용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 배는 황금(黃金)으로 되어있고, 그 강물은 거울처럼 맑다고 하는데, 한 사람에게 한 개의 배가 제공된답니다. 그 배는 딱 한사람만 탈 수 있다고 하는데, 만일 두 사람이 탔다면 금방 가라앉게 된답니다. 무게가 일정한 기준이 되어야 물에 가라앉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는데, 만일 무게가 많이 나가면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지요. 그런데, 그 강물 속은 수심이 워낙 깊어서 한번 빠지면 물위로 올라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출처/ 白山哲學館>

 

무상계 (北忘山 가는길)

 

불교음악 보현스님 - 무상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