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결산] ① 한반도 덮친 폭염·태풍… 다사다난했던 12일 대장정
연합뉴스ㅣ정경재 2023. 8. 11. 16:00 수정 2023. 8. 11. 16:37
철저한 대회 준비 약속에도 곳곳 부실… 준비 부족 야영장은 매우 열악
온열질환 속출에 야전병원 떠올릴 정도… 정부 주도로 차츰 개선되는 모습
영국·미국 조기 퇴영… 나머지는 잔류했으나 태풍 북상에 끝내 전원 철수
대원 맞이한 지자체들 관광·체험 프로그램 제공… K팝으로 화려한 피날레
▲ 잼버리 야영장 구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편집자 주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부실한 준비와 안일한 운영도 문제였지만, 폭염과 태풍 탓에 제대로 된 대회를 치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거듭된 난관에도 민관은 힘을 모아 세계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알리려고 힘썼습니다. 앞으로 대회 파행 책임과 잘잘못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연합뉴스는 새만금 세계잼버리 일정과 준비 과정을 되돌아보고 향후 성공적 국제대회를 위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지 살펴보는 4편의 기획 기사를 일괄 송고합니다.]
(전북=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퍽 불운했다. 극한 폭우가 물러가고 찾아온 기록적인 폭염은 대회 열기를 데우는 것을 넘어 불만을 들끓게 했다. 열악한 시설과 방만한 운영은 참가자들의 불쾌지수 상승을 부추겼다. 보다 못한 중앙정부 개입과 기업의 지원으로 상황이 나아진 것도 잠시. 다가오는 태풍 소식에 참가자들은 짐을 꾸려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지자체들은 거친 들판에서 애먹은 청소년들을 두 팔 벌려 맞이했다. 사실상 대회 마지막날인 이날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K팝 콘서트도 열린다. 한여름 폭염보다 더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섰던 새만금 세계잼버리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복기한다.
▲ 세계잼버리 새만금 개최 확정에 환호 (전주=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1차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개최국 투표 결과 전북 새만금이 경쟁국인 폴란드 그단스크를 607대 365로 제치고 유치가 확정되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왼쪽), 송하진 전북도지사(가운데) 등을 비롯한 유치단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7.8.17 [전북도 제공=연합뉴스] ichong@yna.co.kr
부실 민낯 드러낸 준비…참가자 불만 속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7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전북 새만금이 폴란드 그단스크를 꺾고 2023 세계잼버리 개최지로 결정됐다. 당시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등은 두 팔 벌려 환호하며 철저한 대회 준비를 약속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 풍토병화) 이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에 전북도와 조직위원회는 개막일부터 한껏 고무됐다. 세계 158개국에서 4만3천여명의 청소년과 지도자가 지난 1일부터 가장 젊은 땅인 새만금을 속속 밟았다. 그러나 순탄한 대회를 예상했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부서졌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열악한 야영장 상태는 부푼 꿈을 안고 새만금을 찾은 세계 청소년의 기대 또한 산산이 조각냈다.
▲ '나갈 수가 없어' (부안=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일인 1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행사장에서 한 참가자가 그늘에 들어가 쉬고 있다. 이날 부안군에는 폭염경보가 발표 중이다. 2023.8.1 jaya@yna.co.kr
화장실과 샤워장은 턱없이 부족했고, 위생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한낮 폭염에 어지럼증을 호소한 청소년들로 잼버리 병원은 야전 병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분주했다. 야영장에 나무를 심겠다는 약속은 사라지고 덩굴 식물로 만든 터널과 천막만이 쉴 곳을 제공했다.
참가자가 받은 구운 달걀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생수와 전기마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속전속결로 2년 만에 매립한 야영지에는 밤마다 열대야와 벌레가 찾아와 대원들을 괴롭혔다. 농지였던 야영지는 배수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한낮 폭염에 거대한 한증막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개영식인 2일에는 폭염에 지친 참가자 100여명이 쓰러졌고, 급기야 행사가 중단되는 사태로 번졌다. 결국 3일 여성가족부 이기순 차관은 "만족할 만큼 준비를 못 한 것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 환자 진료하는 의료진 (부안=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살피고 있다. 2023.8.3 doo@yna.co.kr
"이제부터 정부 주도"… 안정 되찾는 야영장
윤석열 대통령은 대회 나흘째인 4일 심각한 온열질환 상황을 보고받고는 "잼버리에 냉방 버스와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부실한 대회 준비로 청소년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잼버리 조직위원장은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야당 국회의원으로 구성돼 있고, 집행은 전북도가 맡아 일원화된 대책이 나오기 어려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파행 위기에 몰린 잼버리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겠다"며 "마지막 한 사람의 참가자가 새만금을 떠날 때까지 안전과 진행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야영장에는 더위에 지친 참가자들이 쉴 수 있는 대형 버스와 차가운 생수를 공급하는 트럭이 속속 들어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위생 문제도 차츰 개선됐다. 거의 매시간 화장실과 샤워장 청소가 이뤄졌고, 부족했던 비누와 화장지도 채워졌다.
▲ 냉방 버스 타는 참가자들 (부안=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막 나흘째인 4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야영장 '델타구역'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냉방 시설이 상시 가동되는 버스에 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잼버리 폭염 상황을 보고받고는 "냉방 버스를 야영장에 무제한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2023.8.4 jaya@yna.co.kr
폭염에 지쳐있던 참가자들은 각 나라 홍보부스가 있는 '델타구역'으로 나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우정을 나눴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고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나라별 상징이 새겨진 배지를 교환하는 청소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자체와 기업, 종교계는 야영장의 열악한 사정을 듣고는 지원 물자를 보내거나 봉사활동에 나섰다. 서울시와 경기도, 전남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생수와 얼음을 보내왔고, 대기업들은 에어컨이 달린 화장실과 차량, 지원 인력, 음식 등을 전달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도 지원 물품과 함께 야영장을 찾아 쓰레기를 줍거나 물웅덩이를 메우며 잼버리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 짐 옮기는 영국 대원들 (부안=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6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를 선언한 영국 대원과 지도자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23.8.6 warm@yna.co.kr
영국·미국의 '조기 퇴영'… 태풍 소식에 전원 철수
야영장이 차츰 안정을 되찾는 과정에서 영국 참가단은 5일 열악한 환경 등을 이유로 돌연 퇴영을 선언했다. 잼버리 발상지이자 이번 대회에 가장 많은 4천400여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를 파견한 영국의 결정은 조직위 입장에선 뼈아픈 비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천400여명을 보낸 미국 또한 야영장을 떠나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로 대원들을 옮기기로 했다. 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마저 조기 퇴영에 동참하면서 참가국의 '도미노 이탈'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우려가 나왔다.
나머지 참가국은 대표단 회의를 열어 야영장에 남겠다고 했다. 이들 국가는 '한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점'과 '야영장 상황이 차츰 개선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조기 퇴영 대열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참가국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여야는 전 정부와 현 정부에 대한 책임을 서로 물으며 잼버리 파행 사태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 떠나는 잼버리 대원 탑승 버스 (부안=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8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야영장을 떠나고 있다. 2023.8.8
kan@yna.co.kr
대다수 참가국 잔류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사태는 태풍이라는 변수에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제6호 태풍 '카눈' 경로가 한반도를 종단하는 것으로 예보되면서, 야영장도 영향권에 들게 됐다. 정부와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야영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참가자들은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야영장 철수 현장에서 만난 대원들은 "이제 괜찮아졌는데 태풍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게 슬프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대회 여드레째인 8일 오전 9시 대만 참가단을 시작으로 모든 대원이 차례차례 버스를 타고 전국 8개 시도로 흩어졌다. 버스 1천여대가 한데 이동하면서 참가자 수송은 이날 오후 10시가 지나서야 마무리됐다. 이동 과정에서 일부 참가국이 애초 입국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경찰과 지자체 협조 덕에 대원들은 큰 사고 없이 숙소에 짐을 풀었다.
▲ '이 순간을 영원히'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웰컴 투 서울 댄스 나이트' 행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8.9 superdoo82@yna.co.kr
전국 곳곳 누비며 관광 만끽… K팝 공연으로 피날레
스카우트 대원들을 반갑게 맞이한 전국 지자체는 '이렇게는 못 보낸다'면서 다양한 관광 대책을 선보였다. 가장 많은 1만3천500여명을 수용한 경기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등 전통문화체험을 제공했다. 서울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역사박물관·공예박물관 문을 야간에도 열고 대한민국 수도의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가장 먼저 퇴영한 영국 참가단은 2층짜리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을 돌며 야경을 만끽했다. 마포대교와 반포대교 주변의 화려한 조명과 남산 N서울타워의 야경을 감상하며 한국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대전·세종·충북 등도 지역 명소와 관광 자원을 대원들에게 소개했다. 대전시는 국립중앙과학관, 대전시민천문대 등 '과학 수도 대전 체험'을 선보였고, 세종시는 스포츠 클라이밍, 전통 음식 만들기, 입체(3D) 프린팅 체험 등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충북도는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와 법주사, 청풍호 케이블카 등 관광 자원을 총동원해 이동에 지친 대원들의 몸과 마음을 달랬다.
▲ 서울 온 잼버리 영국 대원들, 첫 일정은 시티투어버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6일 밤 광화문 서울 시티투어버스에 탑승해 출발 전 환호하고 있다. 2023.8.6 ondol@yna.co.kr
▲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잼버리 K-팝 공연·폐영식 진행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8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경기장)에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고 있다. 2023.8.8 yatoya@yna.co.kr
잼버리 개최지인 전북도 또한 지역에 남은 5천700여명의 대원을 대상으로 해수욕장과 밧줄 체험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했다. 태풍이 몰려오자 체육관에서 윷놀이, 비석 치기, 투호 등 전통 놀이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잼버리 기간에 만난 대원들은 '어떤 행사가 가장 기대되느냐'는 물음에 하나 같이 'K팝 콘서트'를 이야기했다. 당초 지난 6일 열릴 예정이던 콘서트는 참가자 안전 문제로 퇴영식이 있는 11일 밤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장소 또한 잼버리 야영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순으로 바뀌었다. 조직위는 K팝 공연에 140개국 이상의 참가단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와 경찰, 소방 당국 등은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세계잼버리는 이렇게 끝나가지만, 이후 대회 파행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둘러싼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jaya@yna.co.kr]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주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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