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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주화

[홍범도 논란] 돌아온 뉴라이트 세력, 홍범도를 지우려는 진짜 이유

잠용(潛蓉) 2023. 9. 10. 11:49

돌아온 뉴라이트 세력, 홍범도를 지우려는 진짜 이유
국민의소리ㅣ 2023-08-29 15:37:32 수정 2023-08-29 21:13:01

▲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시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겠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보수세력과 여권 내부에서조차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국방부는 한발 후퇴해 공산주의 경력을 문제 삼으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을 옮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육사뿐 아니라 국방부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하고 있고,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도 고려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국가보훈부도 홍 장군이 지난 1962년에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을 받은 데 이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1등급인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과정에 편법은 없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국방부

윤석열 정부와 군은 왜 홍 장군의 동상을 육사에서 옮기려 하는 것일까? 군은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28일 브리핑을 통해 “육군사관학교는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6.25전쟁 발발 당시 육사 선배님들은 전선에 투입되어 북한 공산군에 맞서 싸웠고, 6.25전쟁 기간에 다시 개교하여 지금까지 북한과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왔다”면서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국방부가 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더욱이,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불법 남침하여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대통령 특사단의 황기철 단장(국가보훈처장)과 특사단인 우원식 의원, 조진웅 배우가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15. /ⓒ뉴시스, 국가보훈처

하지만, 홍 장군과 항일 무장세력은 만주와 연해주 등 중국과 러시아(소련) 지역을 거점으로 일본과 맞서 싸웠다. 많은 항일 무장세력들이 중국과 소련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시 중국은 일본의 침공을 받아 오랜 기간 전쟁을 벌였고,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으로 참전해 일본·독일 등과 맞서 싸운 국가다. 이런 역사를 무시한 채 냉전 시기의 인식을 바탕으로 홍 장군의 이력을 문제삼는 건 불합리하다.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이어지는 비판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은 해방 2년 전에 작고하셨으니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이나 6.25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윤석열 정권의 이념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같은 날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에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며 “그것은 반(反)역사다. 그렇게 하면 매카시즘으로 오해받는다. 그만들 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28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홍범도 장군은 조국을 위해 타국만리를 떠돌며 십전구도(十顚九倒) 했던 독립운동 영웅”이라며 “6.25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도 아니고, 전쟁에 가담한 중공군도 아닌데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영웅을 두 번 죽이는 실례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등 여권 내부에도 비판이 줄을 이었다.

사실 군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직간접적으로 의지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저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광복절 경축사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

‘자유’를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포함한 자유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배격하자는 반공 구호로서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다. 이런 윤 대통령의 의도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잘 나타나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힘써온 독립운동은 1945년 바로 오늘, 광복의 결실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라며 “그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되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한발 더 나아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 민주화로 이어졌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윤 대통령의 주장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곧 공산주의 세력을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를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08.15. /ⓒ뉴시스

이런 규정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로 이어진다. 자유민주주의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은 과거 우리를 지배하고, 침략했던 국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동지가 될 수 있다.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면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국절’ 주장과 함께 등장한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일제로부터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북과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자유민주주의 국가

문제는 이런 주장이 단순히 과거 일본은 침략자였지만 지금은 동반자가 되었다는 주장을 넘어, 일제강점기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를 쌓아 건국을 준비한 시기로 미화한다. 이는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해온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이런 주장이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지나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2008년이다.

2008년 광복절 경축식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그해 광복절 행사 명칭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바꾸려 시도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이런 시도는 무산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또다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됐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건국절 발언을 하기 불과 3일 전에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이 건국절 주장에 대해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라며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며,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했지만 무시당했다.

건국절 주장이 최초로 등장한 2008년은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가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가 대한민국 건국과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 사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충칭, 1945.11.3.) /ⓒ뉴시스


그들은 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한 채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일제로부터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북과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홍범도 장군, 여운형 선생, 김원봉 선생 등 일제에 맞서 싸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폄훼하고, 일본군에 복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백선엽, 김창룡 등 친일 군인들을 ‘민족 반역자’에서 ‘건국 세력’으로 신분을 세탁한다.

한홍구 교수
“건국절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행적이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전에는 친일파로 통했지만 이제 반공투사가 되는 겁니다
왜?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으니까요”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009년 출간한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에서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왜곡 시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뉴라이트들이 정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다시 쓰려고 하는 겁니다. 그들 입장에서 건국절을 만들려고 그럽니다. 그동안 광복절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왜 건국절이 나올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역지사지해보면 됩니다. 여러분이 친일파 입장에서 보세요.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을까요? 1945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무슨 날입니까. 제삿날입니다. 사실 집단으로 제삿날이 될 뻔한 날이죠. 반면에 1948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어떤 날입니까? 서광이 비친 날입니다. 살 수 있다, 드디어 살았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으시겠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순국선열이 떠오르고, 순국선열이 떠오르면 그 반대편에 친일파가 떠오르는 구도 아닙니까? 건국절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행적이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전에는 친일파로 통했지만 이제 반공투사가 되는 겁니다. 왜?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으니까요. 이 사회주의자를 잡는 기술자, 전문가가 최고의 반공투사, 최고의 애국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역사를 새로 쓰는 겁니다. 건국절을 자꾸 들이미는 이유가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이런 역사관을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을 선언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건립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뉴라이트 세력에겐 일종의 ‘신전’(神殿)이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렸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런 시도는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역사왜곡 시도는 더욱 집요해졌다.

집요해진 역사왜곡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그 중심에 있다. 2019년 7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학자들은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뉴라이트 학자들은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주장을 전면 부정한다.

2019년 ‘반일종족주의’ 출간
“일제시기, 쌀 수탈이 아니라 수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일제시기 농민의 궁핍을 엉뚱하게도 일제가 쌀을 수탈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형성된 일반인들의 통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인데도 말이죠. 생산과 수출이 크게 늘고 가격도 불리해지지 않았다면 소득이 올라가는 것은 경제의 상식인데, 이를 뒤집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주장하며 일제에 의한 쌀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고 주장했다.

▲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이승만TV 갈무리


일본군 ‘위안부’ 배상,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독도 영유권 문제 등 한일간의 첨예한 현안들을 ‘반일종족주의’에 기반한 주장으로 치부하며 일제강점기에 대한 비판이 우리나라를 망국으로 이끌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어느 나라가 전 국민을 몇 사람의 무녀가 벌이는 진혼굿으로 동원하는 정신문화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어느 나라가 그런 수준의 외교로 일관한다면 격동하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 갈지 모릅니다. 109년 전 나라를 한 번 망쳐본 민족입니다. 그 민족이 아직도 그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절반의 국민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국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그 근원을 이루는 반일 종족주의의 횡포에 대해 이 나라의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인
일본과는 손잡을 수 있지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대상인
국내의 진보세력과도 손잡을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반일종족주의’ 집필을 주도한 이영훈 교수는 2016년 9월 출범한 ‘이승만 학당’의 교장이다. 이승만 학당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자유의 소중함과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가르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시민 대상 강좌를 열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극우세력과 뉴라이트 세력을 중심으로 ‘광화문 광장’을 ‘이승만 광장’으로 만들자는 식으로 이승만 미화 작업이 그동안 이어졌고, 윤석열 정부 들어 그 시도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주관으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보훈처장은 “진영을 떠나 이제는 후손들이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을 재조명할 때”라고 밝혔다. 하루 뒤인 27일엔 이승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을 국가보훈처가 내년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진 국가라는 역사적 규정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다. 이런 역사적 규정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인 일본과는 손잡을 수 있지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대상인 국내의 진보세력과는 손잡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이승만 찬양'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6쪽


윤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국민통합위 출범 1주년을 맞아 “우리가 더 자유롭고, 자유로운 가운데 더 풍요롭고 더 높은 문화와 문명 수준을 누리는 것이, 그리고 함께 이 지구에서 사는 모든 인류와 평화롭고 번영되는 그런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방향인 것이지,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우리가 국민통합을 추진해 나가는 모든 분들이 함께 여기에 공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 왜곡 시도는
미국과 일본의 바람인
한미일 삼각 동맹에 힘을 실어준다

아울러 이런 역사 왜곡 시도는 미국과 일본의 바람인 한미일 삼각 동맹에 힘을 실어준다. 한미일 삼각 동맹을 통해 미국은 안보, 외교, 경제 등에서 중국을 견제할 힘을 얻길 원했고, 일본은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국을 대륙 방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전쟁이 가능한 이른바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런 한미일 동맹으로 가는 길에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는 큰 걸림돌로 여겨졌고, 미국은 한국을 향해 일본과의 화해를 압박해왔다.

이런 압박은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졸속 처리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졸속 해결시도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묵인한 것도 바로 이런 압박 때문이다. 보수세력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대에도 홍범도 장군 동상을 이전하려는 등의 무리한 시도가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와 압박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역사왜곡 시도는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집요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