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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불교향가] '盲兒 希明이 千手觀音 前에 祈禱하여 눈을 뜨다'

잠용(潛蓉) 2013. 3. 6. 09:29

‘도 천수관음가’ (禱 千手觀音歌)
(신라 희명(希明) 지음/ 양주동(梁柱東) 향가해독)


(경주불국사 천수천안 관음보살상)

 

(향가 원문)

 

(현대어 번역- 잠용)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을 모두어서
千手觀音(천수관음) 前(전)에
빌며 사뢰옵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중에
하나만 내어놓고 덜으셔서
둘 다 없는 저에게
하나로 그윽히 고처주시옵소서.
아아, 저에게 끼쳐 주신다면
베푸신 慈悲(자비)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배경음악: 찬불가 ‘성불’ - 정수년 해금 연주)

 


'도천수관음가'에 얽힌 맹아 희명(希明)의 사연

(三國遺史 ‘芬皇寺 千手大悲 盲兒得眼條’)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라는 여인의 다섯 살 어린 장님 아들이 천수관음보살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 다시 광명을 되찾았다는 향가의 하나다.<천수관음가(千手觀音歌)><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도천수대비가(禱 千手大悲歌)><맹아득안가(盲兒得眼歌)>라고도 한다. 10구체 향가로서 《삼국유사》 권3 <분황사 천수대비 맹아득안조 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條>에 실려있다.

◇ 이 설화의 유래

<삼국유사 三國遺事>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때 서라벌(지금 경주)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여인 희명(希明)의 아이가 난지 다섯 해만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아이에게 노래를 지어 분황사 좌전 북벽에 그려 놓는 천수대비상 앞에서 눈을 뜨게 해달라고 빌라고 하였다. 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고 마침내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두 무릎을 낮추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비는 말씀 두노라/ 즈믄 손에 즈믄 눈을/ 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에게 하나를 숨겨주소서 하고 매달리누나/ 아아 나라고 알으실진댄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또 이를 예찬하여 시를 지었으니 “막대로 말을 삼고 흰파로 피리 불며 골목에서 뛰놀다가 하루 아침에 앞이 캄캄, 반짝이는 두 눈동자 어느덧 잃었고나. 만일에 관음보살 인자한 눈을 들고 보지 않았다면 버들개지 휘날리는 몇몇 해 봄빛을 헛되이 보냈으리”
<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條> 景德王代 漢岐里女希明之兒 生五稔而忽盲 一日其母抱兒 詣芬皇寺左殿北壁畵千手大悲前 令兒作歌禱之 遂得明 其詞曰 膝兮古召 二尸掌音毛乎支內良 千手觀音叱前良中 祈以支白屋尸置內乎多 千隱手叱千隱目兮 一等下叱放一等兮除惡支 二于萬隱吾羅 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邪阿邪也 吾良遺知支賜尸等焉 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 讚曰 竹馬?笙戱陌塵 一朝雙碧失瞳人 不因大士廻慈眼 虛度楊花幾社春. (* 위의 한문 중 兮자는 모두 月변이 있어야 함, 웃을 힐)

<삼국유사>에는 ‘영아작가 令兒作歌)’라 기록했기 때문에 작자를 희명의 아들로 추정하기도 하나, 향찬(鄕讚)의 전통적인 창법에 따라 아들이 희명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뇌가의 변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으로, 눈먼 아이가 이 노래를 부르고 눈이 밝아졌다고 한다. 종교적 서정시의 경지를 보여준다.


△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 지금은 단아한 모습의 모전석탑(模塼石塔, 국보 30호)만 남아 1400여년 전 눈먼 아이의 애잔한 이야기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사진 김철수


◇ 설화의 내용
경주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이라는 여인이 자기 아들이 다섯살 때 갑자기 눈이 멀자 노래를 지어 아들에게 주고 이를 분황사(芬皇寺)에 그려져 있는 천수관음보살상(千手觀音菩薩像) 앞에서 부르게 했더니 아이의 눈이 밝아졌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나 그 어머니가 이 노래를 지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 분황사의 승려가 만들어 놓은 사뇌가 형식의 기도문을 아이가 왼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이 노래는 10구로 지어져 10구체 향가에 속한다. 그 노랫말은 이러하다. "두 무릎을 낮추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비는 말씀 두노라/ 즈믄 손에 즈믄 눈을/ 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에게 하나를 숨겨주소서 하고 매달리누나/ 아아 나라고 알으실진댄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사뇌가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시상(詩想)이나 표현이 진솔하고 간절하며, 깊은 신앙심의 울림을 엿볼 수가 있다. (Daum백과)

◇ 신라 불교의 이해
신라 경덕왕 때 희명이 쓴 10구체의 향가로, 분황사 천수천안관음보살에게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빌며 읊은 불교적인 노래이자 기도의 노래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은 주로 중생들의 괴로운 삶을 돌보는 일을 많이 한다고 알려졌다. 한량없는 중생이 고해와 같은 이 세상에서 온갖 고통를 당하고 있을 때에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念)하고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곧 그의 소리를 듣고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생을 건져 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음사상(觀音思想)에 들어있는 "응현(應現)"과 "위난구제(危難救濟) 사상"은 아들을 얻고자 염원하거나, 장님이 눈을 얻는다는 기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우주의 무수한 관음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나타나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고 위난에서 구제해 주며, 변화무쌍한 관음력을 구현하여 사바 세계의어머니와 같은 보살로서 신앙되어 온 것이 바로 관음사상이다.

이 작품은 기원가인 동시에 눈먼 자식의 눈을 고쳐보겠다는 간절한 모성애를 담고 있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통하여 우리는 어린 아들의 어조를 듣게 되는데, 사실은 어머니가 지은 노래로 어머니의 감정이 완전히 아이의 소망으로 대신 표현되어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될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천 개의 눈을 가진 보살이여.그 중에서 하나만 내 아들에게 주옵소서. 당신께서야 눈 하나 주시는 것은 아주 쉽지만,제 아이에게는 목숨처럼 중하옵니다.” 어머니의 슬프고 간절한 정성이 가슴이 저리도록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 노래는 어떤 명령법이나 강제 요소에 의존하는 주술가(呪術歌)와는 달리 종교적인 신심으로써 신격(神格)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초월적인 신격에 의하여 자신이 구제되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 서정시의 경지에 이르렀다 말할 수 있다. 어떻든 이 작품은 향가를 영이(靈異)하고 신이(神異)한 것으로여기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신성시하던 당시 신라인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신앙 모습을 엿볼 수 있고, 관음보살의 자비로운 모습과 관음상의 영험함이 신라사회 민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잘 알 수 있고 사뇌가의 신비로운 힘까지도 아울러 알 수 있는 노래라고 하겠다.

<도천수관음가>를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무릎을 곧게 하고 두 손바닥을 모아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비옵나이다. 천 손의 천 눈을 하나(손)는 놓고 하나(눈)는 덮으사 둘다 없는(잃은) 저입니다. 하나를 그윽히 고치기 바라나이다. 아아,그렇게 하신다면 그 자비(慈悲)야말로 너무도 클 것이옵니다.”
이두식 향찰(鄕札)로 표기된 내용이기 때문에 연구자에 따라서 그 해독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천수천안(千手千眼 : 천개의 손과 그 손바닥마다 박혀 있는 천개의 눈)을 가진 천수관음 앞에 합장하고 꿇어앉아, “두 눈이 없는 저에게 눈을 주신다면 그 자비로움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애원하는 간절한 기원의 노래라는 데에는 모두가 일치한다. <삼국유사> 원전의 “영아작가(令兒作歌)”라는 대목에 대한 풀이에 따라 이 노래의 작자를 희명의 아들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향찬(鄕讚)으로 본다면 향찬의 전통적인 창법에 따라 어머니 희명(希明)이 부른 것을 그 아들이 따라 불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천수관음보살은 어떤 보살?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 Sahasrabhuja-avalokitesvara)은 관세음보살의 12명호(名號: 12가지 다른 이름) 중의 하나이다. 관세음보살은 그 명호(이름)가 대표적인 것만 12가지고 그 밖에도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觀世音), 천비천안관세음(千臂天眼觀世音), 천광관음(天光觀音),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등 경전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리고 있지만 흔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 불린다.

관세음보살은 인도에서 십일면관음과 불공견색관음 이후에 탄생했다고 생각된다. 변화관음이 흔히 갖는 다면다비(多面多臂)의 모습을 발전시킨 것으로 천이라는 수는 무한의 수를 나타낸다고 보아 관음의 자비력을 무한대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천수천안경 千手千眼經>에 의하면, 이 보살은 과거세에서 미래세에 있는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비심다라니 大悲心多羅尼>를 듣고 환희하며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몸에 천수천안이 생겨나게 해 달라”고 여래(如來)께 소원하여 천수천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원에 의하여 천수관음은 천 개의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살펴보고 천개의 자비로운 손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무한한 자비력으로 인해서 특히 ‘대비관음(大悲觀音)’이라고 불렀다.

이 보살에 대한 경전은 7세기 중엽에 한역된 <천수천비관세음보살 다라니신주경 千手千臂觀世音菩薩多羅尼神呪經>인데 그 뒤로 여러 종류의 경전이 한역되어 천수관음 신앙은 중국에서 대단한 유행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천수관음은 관음보살의 변화상(變化像)의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발로키테슈바라 사하스라부잘로차나(Avalokite-vara-sahasrabhujalocana)이다.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이라고도 한다. 오중이십칠면(五重二十七面)의 얼굴과 천 개의 ‘자비로운 눈’[慈眼]을 가졌으며, 천 개의 도움의 손을 움직여서 일체 중생을 구한다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정신을 구상(具象)하고 있다.

관음보살이 큰 신통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구제한다는 기대가 천수관음상을 성립시켰다고 짐작된다. 천수 가운데에서 제 42비(臂;팔)에는 인계기장(印契器杖)이 들렸고, 제958비에서 손이 나와 보검(寶劍)과 보궁(寶弓) 그리고 염주 등을 들고 있다. 경전(經典)으로는 《천비천안다라니 千臂千眼陀羅尼)》 등 11종이 있어 천수관음에 대한 신앙이 매우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상(造像)에서는 보통 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는 42수상(手像)으로 생략되어 표현되고 있다. 또 28부중(部衆)이라는 대 권속을 거느리며, 이들이 예배자들을 수호해준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도천수관음가'와 신라시대 관음사상

<삼국유사> 편목의 예속에서도 밝혀지듯 신라시대의 향가는 불교 신앙과 관련되어 불리워진 노래였음이 확연할 뿐만 아니라 노랫말 중에는 불교 신앙의 고백이나 발원이 나타나고, 신앙생활과 신앙 체험이 그대로 고백되기도 했다. 특히 노래에 곁들여진 배경담에는 불교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임을 강조한 대목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로 부처님의 찬양과 신앙심을 표현한 불교적인 노래가 많다.

 

특히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신라가요 중에서 축원적 신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을 들면, <원왕생

가>와 <도 천수관음가>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삼국유사> 3권 <분황사 천수대비 맹아득안조>에 실려 전해지는 향가 <도 천수관음가>는『삼국유사』의 〈탑상〉편에 들어 있는 것으로서, 분황사 벽면에 그림으로 그려진 천수대비(千手大悲l)에게 빌고 그 자비심을 얻어 눈을 뜨게 된 불상의 영험담과 관련하여, 시적 화자가 시적대상에게 불렀던 노래를 말하는 것(향가)이다. 우리는, 여러 학자들의 자료와 조사 연구를 통하여 그 내용을 재고찰 하도록 한다.

 

<도 천수관음가>는 태어난 지 5년만에 눈이 멀어버린 아이가 천수대비에게 빌고 그 자비심을 얻어 눈을

뜨게 된 불상의 영험담으로서 관음신앙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또한 일연(一然)이 <분황사 천수

대비 맹아득안>조를 찬술하고 『삼국유사』<탑상>편에 이를 상재한 이유가 불교의 ‘관음사상’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임을 기억할 때, 작품을 깊이 들여다 보기에 앞서 우리는 관음사상에 대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음신앙은 대승 불교가 전파된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크게 발전하여 왔다. 대승 불교의 여러 신앙 형태 중에서도 극치를 이루는 것이 관음신앙이다. 특히 대승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상으로 전개된 것이 관음 사상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관세음보살 신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경전연구나 종학(宗學)의 심화와 같은 교단 내의 교학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력 신앙으로서 민간에 유포된 신앙의 정도를 의미한다.

 

또한 항상 불안과 갈등이 서민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고, 사회적 모순과 기근 등 사회의 밑바탕에 존재하였던 통일신라시대 무렵 가장 대중성을 띤 신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구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보살로 민간의 구복 신앙(求福信仰)과 잘 부합하는 성격을 지녔다. 주로 일반 중생의 삶을 보호하는 일을 하며, 만일 중생이 온갖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곧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도와 고통 속에서의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 관음사상의 요지이다.

 

☞ 분황사(芬皇寺) 사이트: http://www.bunhwang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