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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불교설화] '어머니'란 그 말 한 마디

잠용(潛蓉) 2013. 5. 6. 15:15

'어머니'란 그말 한 마디 

 (양산 통도사에 얽힌 불교설화)

 

 

 


조선시대 정조대왕 시절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통도사(通度寺)에는 훌륭한 법사(法師)* 한 분이 계셨다. 그 법사스님은 아주 어렸을 적 핏덩이였을 때 어느 추운 겨울날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강보에 쌓여 버려졌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한 스님이 그 아기를 통도사로 데리고 와 기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기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버려지게 된 데는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어느 해이던가 섣달그믐 눈이 펑펑 내리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 젊은 여인이 통도사를 찾아와 주지스님께 친견하기를 청했는데 그녀는 강보에 싸인 갓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젊은 여인은 주지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지스님, 제가 이 절에서 시키시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공양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우리 두 모자(母子) 물리치지만 마옵시고 거두어 주십시요, 거두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 모자 함께 굶어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저 눈 속에서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하옵니다. 부디 내년 봄 해동(解凍) 때까지 만이라도 여기서 일하면서 아기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간청 드리옵니다, ”
                                  
그러자 주지스님은 그 여인을 기다리게 하고 이 문제를 대중공사(大衆公事: 사찰에서 여는 중요사안에 대한 결정 회의)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애기 엄마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드나들고 젊은 스님들과 함께 사찰에 살면서 행여나 헛소문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로 인해 어떤 불미스런 소문이라도 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라도 맞아 애라도 낳는다거나,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 연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청정도량인 이곳에는 머물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애기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통도사를 되돌아 나오면서 자기가 낳은 귀여운 애기를 눈이 내리는데도 일주문 옆에 놓아두고 울면서 떠나버린 것이었다. 가련한 그 애기는 통도사의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 데리고 들어가 자식처럼 키웠다.

 

 

 

통도사 입구 극락교의 겨울 풍경 (양산 시민신문)

 

그런데 그 아기가 점점 자라면서 어찌나 신통(神通)하고 영민(英敏)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면 늘 그 앞 자리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搖之不動)도 않은체 듣고는 즉석에서 외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18 세가 되자 이미 모든 법문에 통달하여 훌륭한 법사가 되었다.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에서 대중들이 구름처럼 통도사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법당에서 법사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듣고 있던 어떤 나이 많은 보살이 혼자 말로, “대체 저 법사스님의 어미님는 어떤 분이실까? 어떤 분이시길래 저리도 훌륭한 아들을 두셨을꼬?”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 소리를 듣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한 보살이,

“예~ 제가 저 법사님의 에미입니다.” 하고 법당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동안 보살님은 얼마나 이 말이 하고 싶었을까?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꾸밈없는 소박한 마음일테니...)


그 한 마디가 법당 안과 도량에 있던 모든 대중들에게 울려퍼진 것이었다. 법사스님도 법문을 하시면서 그 말을 들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스님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말한 부인에게 닥아가서  좀 기다리시라 하고는 모든 스님들을 불러 모아놓고 또다시 대중공사를 열었다.

“지금 법당에는 스스로 내 어머니라고 하는 보살님이 와 계신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가 그 분을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했다.
“아니 법사님! 그날 엄동설한에 눈까지 오시는데도 법사님을 그냥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버려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법사님이 훌륭하게 되시니까 내 아들입네~ 하고 자랑하는 것이 어찌 에미된 도리란 말입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불러서 혼쭐을 내 주시고 두번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에서 그렇게 결론이 나자, 법사스님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라는 그 부인을 법당으로 들어오게 하여 마주 앉았다.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 맞소?” 하고 다시 캐 물었다.
“예 ~ 제가 옛날 법사님을 일주문 앞에 두고 갔었지요.”

그러자 법사스님은,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두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 하지도 말고 또 그대가 법사의 어머닙네 하는 말도 하지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 아들입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지만 절대로 어디 가서 남들에게 법사가 내 아들이란 소리는 하지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채도 하지 마시구려.” 이렇게 모질도록 짝 잘라 말하고 그 부인을 돌려 보냈다.

 

그 무렵, 조정에서도 정조대왕의 귀에 이 소문이 들렀다. 경상도 양산현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것과 그 법사가 여는 법회에서 언제나 한 노부인이 나타나 자기가 법사의 생모(生母)라고 우겨서 법사가 호통을 치고 따끔하게 타일러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런 소문을 듣고 정조대왕도 내심 호기심이 나 견딜 수 없었다. 이에 가까이 있는 신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한 법사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어디엔가 살아있을 테니 그대가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하고 분부하였다.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그 신하는 얼마후 다시 정조대왕에게 상계(上啓)로 아뢰기를...

“그 어머니는...” 하고 그간의 일을 자초지종 낱낱이 적어서 올리자 정조대왕께서 통도사의 법사에게 서장(書狀) 한 통을 보냈다. 그 내용인즉,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여도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 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은 듯 하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서 죽거나 배 고파 죽게 생겼으니
파리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이

 

아기를 거기에 두고 가더라도 분명 살려주면 주었지
어찌 산 목숨을 죽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자식을 살리려고 두고 간 것이지
결코 자식을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니리라
.”

 

이 서장을 받아든 법사스님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서 불현듯 오늘이 지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바로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소문 하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해가 거의 다 넘어갈 무렵에 어떤 마을에 이르렀는데 거기엔 외딴 집 한 채가 있어 그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묻기를,
“저어 혹시 여기 이러이러한 노 보살님이 이 부근에 사시는지 모르시겠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집의 주인장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언덕 밑에 있는 집 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어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 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게요.. 한동안 계속 몸이 아팠거든...”

 

법사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 작은 등 하나를 빌려 숨이 턱에 닿도록 그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 당도해 보니 집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어 법사스님이 내심 불안해 하면서 가만히 주인을 불러본다.

“저, 주인장 계시오? 주인장 계시오?”

 

연거퍼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자 법사스님은 토방에 올라가 방문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그런데 방안에 누군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등불을 가까이 대고 이불을 젖히니... 아, 거기엔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머리 맡에는 언제 먹었는지 죽 그릇이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고, 방 안에는 냉기가 돌아 입김이 그대로 공중으로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법사 스님이, “어머니 !” 하고 부르며 그 자리에 펄석 주저앉았다. 그러자 가물가물 죽어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뜨고는. “댁은... 누구시오? 뉘시길래... 날 보고 어머니라 부르시오? 그 등불로 그대 얼굴 좀... 비쳐보구려...” 하였다.


그러자 법사스님이 등불을 자기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되었소. 스님은 어서 통도사로 돌아가셔서 더 많은 법문으로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다 이루었소. ‘어머니’ 라는 그 한 마디를 못 듣고 죽는줄 알았는데...”

 

법사스님이 이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등에 업고 밤을 도와 통도사로 뛰기 시작했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은 온갖 있는 정성을 다 바쳐 약을 다리고 미음을 쑤어 어머니를 살려냈다. 그뒤 어머니는 통도사에 머물면서 장한 아들과 함께 살다가 3년이 지난뒤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법사스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정성껏 49 제를 올리고 법문을 하면서 이런 글을 지어 올렸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인가?

부모님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 안 계시면 가장 궁한 가난일세.

 

어머님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 안 계시니 해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 살았을 땐 마음 든든 하더니만
어머님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그렇게 하여 49제를 다 지내고 마지막 제를 올리며 다시 법문을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어머니 음성이 법당 안을 울렸다.

 

훌륭하신 법사님 자랑스런 내 아드님
‘어머니’란 그 한마디 다 못 듣고 갈까봐
조마조마 했더니만 그 소원 이제 풀고
오늘 내가 떠나가니 너무 상심 마시구려.

 

자랑스런 내 아드님 훌륭하신 법사스님
자식 옆에 두고 살며 어미 소리 못 들을 때
메어지는 내 가슴 수만 개의 송곳 같고
어머니 소리 듣고 귀가 번쩍 띄었네.

 

세상을 다시 얻었으니 이제 내 가는 길에
훌륭하신 법사스님 그 법문에 감사하오
부디부디 좋은 법문 많이많이 베풀어서
세상을 밝히소서 나는 이제 부처님께 갑니다. (출처: 인터넷) 

 


* 법사(法師란 어떤 직분인가?

사찰에서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문(法文)을 강설하는 스님을 법사라고 한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는 ‘Dharma- bhanaka’라고 한다.

 

<잡아함경>에는 법사의 직분에 대해서 부처님이 스스로 소상하게 밝혀 놓고 있다. 한 마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법문을 소상하고 알기쉽게 대중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중국의 삼장법사(三藏法師)가 유명하다..아래 <잡아함경>의 경문을 보자. (→ 오른쪽 사진은 금련산 마하사의 법회 모습)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날 한 비구가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어떤 사람을 법사라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으로 하여금 육신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애욕을 떠나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법사라 한다. 자기 느낌이나 생각, 그 생각에 대한 집착과 행위, 그리고 분별하는 일들을 벗어나도록 가르치면 법사라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고통과 갈등으로 얽어매고 있는 연쇄의 고리를 분석하여 설명하고, 그러한 연쇄의 고리에서 벗어나 해탈을 가르치는 사람을 법사라고 한다.
중생의 현실을 왜곡없이 파악하여, 무엇이 중생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중생들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그러한 삶을 얻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을 법사라 한다.”  (잡아함경 제1:26경, 제12: 288경)



(배경음악: 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