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사진 1] 젊은시절 싯다르타 왕자의 수려한 모습. Buddha's head (from Hadda, Afghanistan),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Hadda is a Greco-Buddhist archeological site located in the ancient area of Gandhara, near the Khyber Pass, ten kilometers south of the city of Jalalabad in today's eastern Afghanistan.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기원전 624?~544?)는 불교의 교주(敎主)이다. “석가”(釋迦)는 인도의 부족명인데 “능하고 어질다”는 뜻이고 “모니”(牟尼)는 수행자나 성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는 석가족(釋迦族)의 성자(聖者)라는 존칭이다. 기타 세존 · 석존 · 불 · 여래 등 존칭 10개와 아명(兒名)인 싯다르타 고타마가 있다. 서양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흔히 부른다. 석가모니의 생몰년을 두고는 근거가 없는 탓에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 세계 불교도대회에서는 기원전 624 ~ 544년으로 공식 채택하였다. 기타 기원전 563 ~ 483년설, 기원전 565 ~ 485년설, 기원전 463 ~ 383년설 등이 있다.
석가모니는 석가족(釋迦族)의 중심지에서 주변의 여러 부족 사이에서 고초를 겪던 약체(弱體) 부족인 카필라 족장인 슈도다나의 장남으로서 태어났다. 16세 때 골리 부족의 딸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하여 아들 라훌라를 얻었다. 그 무렵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와 윤회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겠다고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29세 때 출가하였다. 두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서 그들이 체득한 수행법을 흉내냈으나 그 수행법에 만족하지 못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가 6년간 수행했으나 수행은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하다고 판단하여 부다가야의 보리수에서 선정에 들어가 수행하여 35세 때 득도(得道)하고 교화(敎化)를 위해서 인도의 각지를 편력(遍歷)하다가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죽었다.
◇ 석가모니의 일생 기원전 6세기 경,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기슭의 카필라 성(kapila Vastu, 가비라성)을 중심으로 석가족(釋迦族)이 사는 작은 산촌(山村)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거기의 부족장인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 부인(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석가족은 현재 네팔 중부의 남측 변경과 인도 국경 근처에 있던 작은 부족으로, 카필라 (현재 네팔의 타라이 지방의 티라우라 코트에 해당)를 중심으로 하여 공화 정치와 귀족 정치(혹은 과두 정치)의 일종이 행해지고 있었다. 족장 가운데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탄 생] 부족장인 슈도다나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마야 부인이 임신하고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분만(分娩)하고자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던 중에 기원전 624년 경 음력 4월 8일 두 촌락 사이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
[사진2] 마야부인이 꿈속에 흰 코끼리가 자신의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했다. 도솔래의상(兜率來依相)
[유년 시절과 혼인] 싯다르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게 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 슈도다나는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라고 지었는데 이는 “소원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는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의 안락(安樂)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외출하여 밭을 가는 농부를 보고 인간이 수고해야 생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고, 새에게 잡혀 먹히는 벌레를 보고 크게 충격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고,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몹시 슬퍼하였다. 싯다르타의 이런 우울한 심정을 눈치 챈 아버지 족장(族長)은, 혹시 그가 당시 많은 젊은이들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위안(慰安)하려고 가까이 있는 골리 부족(部族)의 딸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 그뒤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싯다르타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하여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다. 또 아버지인 족장은 많은 미녀를 이용해 주야로 향연(饗宴)을 베풀었으나 이것이 싯다르타에게 오히려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動機)가 되었다.
[사진3] 싯다르타의 위대한 출가: The "Great Departure" of Siddhartha Gautama, surrounded by a halo, he is accompanied by numerous guards, maithuna loving couples, and devata who have come to pay homage; Gandhara art, Kushan period (1st-3rd century CE)
[출 가] 싯다르타는 번뇌(煩惱)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29세에 가족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출가하였다. 싯다르타의 출가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하였으나 그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여 끝내 가족과 관계를 단절하고 부족(部族)을 떠나게 한 계기는 무상한 이 세상의 고통(苦痛)을 해결하려는 그의 부단(不斷)한 정열이었다. 불경에 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사문(四門)의 무상고(無常苦)를 향한 그의 강렬한 자각을 뜻한다. 당시 인도에는 수도자는 출가하는 풍습이 있어서 아들 라후라를 얻어 후계자를 근심하지 않아도 된 싯다르타는 마침내 29세에 그의 시종(侍從) 차닉(車匿)을 데리고 출가했다.
[사진4] 삭발: Prince Siddhartha shaves his hair and becomes an ascetic, Borobudur, 8th century
[수 행] 시종과 헤어진 뒤 싯다르타는 7년간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인 바라문 수행자에게 배우면서 해탈하는 구도(求道)를 위해 단식하고 수행하였다.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바닥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계속하였으나 해탈하지 못하고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삭발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구걸(求乞)하면서 남쪽 마가다를 향해 갔다. 마가다의 중심인 라자그리하(Rajagrha)는 당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서 싯다르타는 브라만교의 수행자에게 요가(yoga)를 배웠으나 정신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계속하여 마지막으로는 네란자나 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하고 불면(不眠)하는 수행을 하였다. 한때 족장인 아버지에게서 사람이 와서 귀가를 권하였으나 싯다르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싯다르타의 귀향을 단념하고 현자 5명을 뽑아서 그의 수행을 도와주독 보냈다. 이 기간이 6년이었다는데 이런 육체상 수행도 무효(無效)임을 알고 포기했다. 이때 지금까지 수행을 같이하던 수도자 다섯 사람이 떠나갔다. 싯다르타는 심한 몸살에 시달렸으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심신을 맑게 하였으며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우유와 죽을 마시고 체력을 회복하여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우루베라의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법좌를 정하고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았다. 만일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조용히 내관(內觀)의 수행을 계속하였다. 이 수행은 일체의 공리(公利)스런 관념을 버리고 자기 심중에 있는 욕망을 끊어 없애며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이다.
[깨달음] 불경을 보면, 싯다르타는 35세 때인 12월 8일 이른 새벽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본원(本源)을 단멸(斷滅)하는 깨달음에 확신을 얻었다. 이것은 어떤 번뇌(煩惱)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정적(絶對靜寂), 즉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體現)이고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사람인 불타(佛陀)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진5] 임종: The sharing of the relics of the Buddha, Zenyōmitsu-Temple Museum, Tokyo.
[포 교]
이때 싯다르타는 쾌락과 수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中途)의 처지에서 설교하였다. 이와 같이 불타(佛陀)가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는데 법륜(法輪)을 전(轉)한다 말은 법을 설파하고 그 실현에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의거해 불타(佛陀)의 제자인 다섯 명 비구(比丘)가 형성되어 불(佛)· 법(法)· 승(僧)의 불교 교단 성립조건이 갖춰지게 되었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싯다르타가 죽을 때까지 45년 간에 걸친 부단한 설법의 시작이었다. 불타는 라자그리하와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설법(說法)해 나아갔다. 불타의 가르침은 심원(深遠)했고 상대에 따라서 각각 알맞는 문답 형식이나 비유(譬喩), 인연 설화[因緣 說話]를 활용하면서 쉬운 말로 매우 친절하게 설법했으므로 점점 제자가 늘어나서 경제적으로 싯다르타를 지원하는 독실한 귀의자(歸依者)도 많이 생겼다.
그 후 부타는 라자그리하의 비파사라 왕을 교화하고 그에게서 가란타(迦蘭陀)의 동산을 헌납(獻納)받아 그곳에 수행도장을 건축했는데 이곳이 죽림정사(竹林精舍)로서 승가람마(僧伽藍摩)의 효시(嚆矢)가 되었다. 그는 이곳을 근거지로 많은 사람을 모으고 뒤에 사위성(舍衛城)에 기원정사(祇園精舍)라는 대가람(大伽藍)을 세워 사부대중(四部大衆)의 모음으로써 불교의 교단을 완성(完成)하였다.
나이가 80세가 될 때까지 싯다르타는 설법을 그치지 않았는데 파바 시(市)에서 받은 공양(供養) 음식이 잘못되어 심한 이질을 앓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병이 위독(危篤)함을 깨달은 불타(佛陀)는 최후에 목욕(沐浴)을 마치고 사라(沙羅) 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5월 첫 번째 보름날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설한 뒤 “쉬지 말고 수행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이 날은 기원전 544년 5월 15일로(우리나리에서는 음력 2월 15일) 남방불교에서는 베사카(月의 만월)의 밤이었다. 고령인데다 금식을 자주했던 싯다르타는 위장이 매우 약해진 탓에 회복(回復)하지 못하고 임종을 맞은 것이다. 그의 유골(遺骨)과 사리(舍利)는 왕후와 귀족들이 나누어 각자의 나라에 가지고 가 탑파(塔婆)를 세우고 봉양(奉養)하였다.
[생몰년과 불기에 대하여]
◇ 석가모니의 사상 [3고와 8고]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사진8] A statue of the Buddha from Sarnath, 4th century)
[연기 사상] 연기설(緣起說)이란 '이것이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의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此有故彼有(차유고피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자비 사상] 자비란, 연기를 깨달을 때 나타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다시 말해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진정한 자비란, 인간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즉 미물(微物)에까지 미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 우주 만물과 타인들과의 불가피한 인과관계를 깨닫게 되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게 되고, 남의 슬픔도 함께 슬퍼하게 된다.”
[사성제 사상] 사성제(四聖諦)란 곧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의 핵심 진리(4가지 성스런 진리)로서 여러 불교교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苦) 성제: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팔정도 사상] 1. 정견(正見): 불법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
[삼법인 사상] 1.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 / 변화만이 유일하다.
◇ 석가모니의 제자
불타의 제자들 중에는 개별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지혜가 제일이었던 사리불(舍利佛, Sariputra), 신통력(神通力)의 목건련(Maudgalyayana), 무집착(無執着)에 투철한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 천안력(天眼力)을 가졌다고 하는 아나률(阿那律, Aniruddha),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잘 깨우쳤다는 수보리(須菩提:Subbuti), 설법에 능한 부루나(富樓那,Purnamaitrayaniputra), 토론을 잘하는 가전연(Katyayana), 지율(持律)의 우바리(優婆離,Upali), 다문(多聞) 제일의 아난다(阿難, Ananda), 행지(行持)가 면밀한 라후라(羅候羅, Rahula) 등이 10대 제자로 손꼽혀 전해지고 있다.
◇ 석가모니의 다른 호칭(불타10호) 팔만대장경의 기록에 보면, 제자들은 석가모니를 "세존이시여", "고담(고타마의 한역)이시여", "여래께서" 등으로 부르고 있다. [참조] 각각의 명칭을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해설을 볼수 있습니다. (이상 위키백과)
“부처님 일대기” (애니메이션)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 아이들에게 부처님은 어떤분인지 쉽게 알려주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많은 어린이들이 부처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인연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작: 한마음선원 부산지원 어린이회 합장. 배경음악 : 한마음선원 선법가)
“부처님 이야기” (The Legend of Buddha, 1시간 27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과 매력적인 내레이션으로 만든 <부처님의 이야기>는 철 없는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고행길에 이르러 깨달을 얻은 싯다르타의 전체 생활을 통해 따라간다. 이야기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Gautam Buddha의 어린 시절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젊은 세대들에게 가족의 가치와 그 사랑의 주요장면을 포함한다. 이 영화를 만든 Pentamedia는 그래픽 회사로 70여 명의 핵심 애니메이터를 고용하고 있으며 300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45만 컷에 달하는 방대한 부처님에 관한 그림으로 그의 삶의 모든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Buddha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The Last Words of the Buddha)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 Subhadda에서 돌아온 후 부처님은 다시 아난존자에게 말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은 다른 승려들에게 말했다.
두 번 세 번 부처님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번째도 모든 승려들은 침묵했다. 부처님은 말했다. “너희들이 나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으니 아마 스승을 존경해서 그러는 모양이구나” 라고 했다. “오, 제자들이여,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그것을 말하게 하여라.” 그래도 역시 제자들은 침묵했다. 그 때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말했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방법입니다, 스승님! 저는 여기 모인 승가들은 한 사람도 부처님에 대한 질문, 가르침이나 승려의 예법이나 또는 구도의 길과 훈련 방법과 행동에 대해서 의문이나 질문이 없다고 믿습니다.”
“너에게, 아난다여” 부처님이 말했다. “이것은 신념이나 믿음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알고 있다. 여기에 모인 어떤 승려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혹이나 질문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 있는 500명의 승려들 중에는 아난다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성자(聖者)가 되어,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확실할 정도로 모두 수행이 진전되어 있느니라.” 그런 다음 부처님은 다시 한번 모든 승려들에게 설법하고, 최후의 말을 하였다 : “보아라, 비구들이여, 이것은 나의 마지막 충고이다. 이 세상의 모든 구성요소(만물)는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희는 자신의 구원(해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라.”(깨달음의 진수)
그런 다음 부처님은 jhana 단계, 즉 깊은 명상의 단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더 깊이 더 깊이...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깊은 명상에서 깨어나 열반에 들었다, 다시는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환생할 원인이 될 수 있는 어떤 것도 뒤에 남겨두지 않고... 이 세상과 다른 어떤 세상에서도. 부처님의 죽음, 아니 열반은 기원전 543년 5월 보름 만월일에 일어났다. 그날은 인도 달력으로 Vesak일로 알려졌다.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기를! (번역: 잠용) |
'종교·불교·죽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상식] '부처님 마지막 말씀' (내가 깨달은 것) (0) | 2013.05.15 |
---|---|
[스크랩] D16.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全文과 한글파일 (0) | 2013.05.14 |
[부처님오신날] 서울 도심의 화려한 연등행사 (0) | 2013.05.12 |
[불교상식] 아미타 부처님(阿彌陀佛 Amitabha) 전생 이야기 (1) | 2013.05.12 |
[스크랩]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0) | 2013.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