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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주화

[YS서거] '巨山'이 키운 이 나라 정치인들'

잠용(潛蓉) 2015. 11. 23. 13:58

노무현 이명박도 YS가 정계발탁… 巨山이 키운 정치인들
연합뉴스 | 2015/11/22 14:27

 

與 '빅2' 김무성·서청원, 대표적인 상도동계 출신
이회창 이인제 손학규 정계입문도 YS 작품
15대 개혁공천 이재오 김문수 안상수 홍준표 영입 승부수
정의화 의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맹형규 전 장관 등도 공천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한국 정치사에 남긴 거대한 족적 만큼이나 많은 '정치적 제자'들을 남긴 '영원한 리더'이기도 하다. 실제로 YS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98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상당수 유력 인사들은 YS의 '정치 문하생'이거나 YS에 의해 발탁된 인사들이다.

현재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YS의 가신 그룹인 상도동계 출신으로 대표적인 'YS 문하생'이다.

 

 

김 대표는 지난 1985년 YS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 1992년 김영삼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 민정비서관, 사정1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거쳐 1996년 15대 총선 때 여의도에 입성했다.

김 대표는 빈소에서 YS를 '정치적 대부'로 표현하며 차남 현철씨와 함께 상주와 마찬가지로 조문객을 맞았다.

 

 

또 여권에서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친박(친박근혜)계를 이끄는 서청원 최고위원도 '상도동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 최고위원은 YS가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지냈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등 전직 대통령이나 대권주자들도 YS와 인연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때 YS가 당 총재로 있던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1월 3당합당 때 YS와 정치적으로 결별했지만 YS의 손에 이끌려 정계에 첫발을 디딘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자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YS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출마를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바람을 일으키자 현대가(家)의 사람으로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이었던 이 전 대통령을 영입해 맞불을 놓았다.

 

 

세 차례 대권도전에 나섰지만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는 못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YS가 발굴한 대표적 정치인이다. YS는 1993년 당시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임명한 데 이어 '1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일컬어지는 국무총리로 중용했다. 또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는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의장으로 영입해 대권으로 향하는 돌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때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라는 YS의 말로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대권에 도전했던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1988년 13대 총선 때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고, YS정부에서 최연소 노동부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얼마전까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지냈고, 한때 야당의 대권주자로 꼽혔던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도 시작은 'YS 사람'이었다. 진보개혁 성향 교수로 강단에 있던 그는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YS의 발탁으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YS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다. 1996년 15대 총선은 YS의 탁월한 정치적 안목이 입증된 일대 사건으로, 현재 정치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YS 키즈들'이 이때 대거 정치권에 들어왔다. 당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은 지방선거에서 패해 지방 권력을 빼앗긴 상황이었고, 자칫하면 의회 권력도 야권에 넘겨줄 수 '비상상황'이었다. YS는 그러나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참신한 정치 신인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여의도의 정치지형도를 바꿔놓았다.

 

이회창 전 총리를 선거대책위 의장으로 영입한 것을 비롯해 개혁적 진보성향으로 당시 여당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민중당 소속의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과감히 영입, 승부수를 던졌다. 뿐만 아니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경남 창원시장과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홍준표 경남지사도 당시 YS가 발탁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나,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안전부장관을 지낸 맹형규 전 의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15대 총선에서 YS의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초선으로 입성하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새누리당 중진 정병국 의원도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이다. [jesus7864@yna.co.kr]


업적 치켜세우고 허물 항변하는 ‘YS Kids’
[경향신문] 2015-11-23 22:31:26ㅣ수정 2015-11-23 22:32:50

      
김문수 “3당 합당 옳았다”…

정병국 “금융실명제 컨트롤 잘 안돼 IMF 맞은 것”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현대사의 ‘거목(巨木)’인 동시에 한국 정치사의 한 뿌리였다. 그에게서 뻗어나온 후배 정치인들은 ‘상도동계’ ‘YS 키즈’ ‘YS 맨’ 등으로 불리며 정치권 주류에 진입해왔다. 이들은 추모 정국에서도 문민정부 성과와 ‘정치인 김영삼’에 대한 재평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1987년 ‘상도동계 막내’로 정계에 입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연일 김 전 대통령 업적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을 ‘민주화의 최대 공로자’로 지칭한 뒤 “김 전 대통령께서 이뤄낸 정치·사회 개혁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뿌리이고 기둥”이라고 말했다. 역시 상도동계 출신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대한민국의 큰 별이 지셨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끈 통일민주당에서 대변인과 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한 서 최고위원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의) 용기가 대단하셨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으로 문민정부 정무비서관을 지낸 이성헌 전 의원은 “참모뿐 아니라 기자와도 얘기하는 걸 즐기셨다”며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옛날에도 자금을 일절 챙기지 않고 조직을 위해서만 활용한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돌이켰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의 ‘허물’로 평가되는 ‘3당 합당’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에 대해서도 적극 항변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으로 영입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3당 합당에 대해 욕도 많이 하지만, 저는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이 힘을 합쳐 선진화·세계화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당시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통화에서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그간 관치금융으로 돼 있던 것을 공개화·투명화하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컨트롤이 잘 안돼서 IMF를 맞은 것”이라며 “‘과(過)’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유정인·박순봉 기자]

 

상도동·동교동 ‘황혼의 악수’
[경향신문] 2015-11-23 22:50:54 수정 2015-11-23 22:56:49
      
한국 현대정치 ‘양대 계파’ 동지서 적으로… 최근 화합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한국 현대정치의 ‘양대 본산’이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민주화운동 동지이면서도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두 계파는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전 대통령 서거 이튿날인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엔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과 김태랑 전 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과 함께 조문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이 오랜만에 손을 맞잡았다.

 

먼저 ‘주군’을 잃은 동교동계 인사들이 상도동계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권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은) 다감한 분이셨다.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에 나왔을 때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당선됐다”며 옛 추억을 더듬기도 했다. 6년 전인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반대 입장이었다.

 

 

[사진] 동교동계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3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상도동계 김덕룡 전 의원(오른쪽)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진공동취재단

 

 양김의 자택 주소지인 상도동과 동교동이 현대정치 양대 산맥이 된 지도 50년이 넘었다. 역사의 질곡을 거치며 두 계파는 화합과 갈등을 반복해왔다. 1984년 양김이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만들었을 때 손을 맞잡기도 했지만, 1987년 후보 단일화 무산 이후 양측은 동지라기보다는 ‘숙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엔 화합하는 모습이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전 극적 화해가 발단이 됐다. 두 계파는 요즘엔 국회 민추협 동지회 등 활동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상도동과 동교동의 물리적 거리감이 양김 시대 폐막 이후 ‘지역주의 극복과 화합’이라는 두 사람의 유지를 함께 받들며 거리를 좁히고 있는 셈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