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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滿浦津 길손' (1941) - 백년설 노래

잠용(潛蓉) 2016. 2. 12. 08:41




'滿浦津 길손' (1941)

작사 박영호/ 작곡 이재호/ 노래 백년설


< 1 >

滿浦津 꾸불꾸불 陸路 길 아득한데
철죽꽃 國境線에 황혼이 서리는구나
날이 새면 定處 없이 떠나갈 양치기 길손
뱃사공 한 세상을 뗏목 우에 걸었다.


< 2 >
五國城 부는 바람 피리에 실어올 때
꾸냥의 두레박엔 봄꿈이 처절철 넘네
봄이 가면 指向 없이 흘러갈 양치기 길손
다시야 만날 날을 칠성님께 빌었다.


< 3 >
狼林山 철죽꽃이 누렇게 늙어간다
당신의 오실 날자 강물에 적어 보냈소
명마구리 울어울어 茫茫한 봄 물결 위에
님 타신 청포돗대 기대리네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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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국성(五國城): 만주에 있던 금(金) 나라의 수도. 

* 꾸냥(姑娘): 소녀, 처녀를 나타내는 중국어.

* 명마구리: 명매기의 방언으로 칼새와 같은 뜻.





◇ 계유정난(癸酉靖難)과 이징옥(李澄玉)의 금제국(金帝國) 오국성(五國城)

함길도 도절제사 재직시 1453년 계유정난을 맞아 수양이 소인배 무리들과 합세하여 왕권 야욕의 거사를 실행하면서 김종서 장군과 많은 충신을 주살하고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 장군이 크게 장애가 되므로 아무런 이유 없이 직위를 파직하였다. 파직당한 이징옥 장군은 문종 왕께서 국변이 없는 한 경을 부르지 않겠다는 어명을 상기하며 수양의 음모로 알고 후임 박호문을 군재에 의해 처형하고 불사이군이란 충절을 명심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해 수양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 기회에 여진족은 오랜 세월 동안 영토 수복권을 주장하고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부족 자치국의 존재성을 내적으로 유지하고 열망하던 영토 수복을 때를 맞춰 태양처럼 추앙하는 영도자 이징옥 장군을 황제에 추대하여 대국가 건설에 앞장서자며 오부족 대표 건주여진 추장 누르하치의 조부 기오창까가 주창 특사 김수산 부장 일행과 합의 대금황제국(大金皇帝國)을 건국, 영토를 만주 전역으로 선포하고 도읍을 오국성(五國城)에,만주땅(혁도아랍),건주여진에 본거지를 정하고 대금제국황제(大金帝國皇帝)에 이징옥 장군을 추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징옥 장군은 나라 걱정을 하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특사 김수산 부장 일행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게 되면 앞뒤로 적을 맞게 되는 중대한 귀로에서 난세로 판단, 하기로 결심하고 많은 장정들의 대열 앞에 높이 서서 엄숙하게 우렁찬 목소리로 수양이 김종서 장군과 많은 충신들을 주살하고 백성을 버리니 우리는 두만강을 건너 큰 나라를 세워 사필귀정을 맹세하자 하며 대금제국(大金帝國)대금황제(大金皇帝)에 제위하였다.


민족의 한을 품고 만주 요동 땅을 기점으로 천하통일의 야망으로 대금제국(大金帝國)건국을 선포하였다. 대민족 건설에 대금제국의 깃발을 들고 대금제국 만세, 대금제국 만세 함성의 소리는 북방천지 만주 땅 요동을 진동시킨 장엄한 대금제국의 행렬이 오국성(五國城) 입성 전야에 수양의 밀지를 받은 정종, 이행검의 흉계로 야습을 당해 백일몽으로 대금제국의 운명은 역사의 비극으로 일생과 같이 밤이슬로 막을 내렸다.


朝鮮世表幷全圖 중 五國城 위치- 1806년 일본 제작


이징옥(李澄玉)은 본관(本貫)이 인천(仁川)이며 호는 원봉(圓峰)시호는 충강(忠剛: 正祖15)으로써 1399년에 태어나 1453년 서거 하셨다. 조부 이조판서 인천군 이만영( 李萬英)의 자 전생(全生)세종 때 양산군봉 양산부원군의 둘째 아들이다. 형 징석(澄石)과 아우 징규(澄珪) 3형제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무용이 특출하였다. 이징옥은 13세 때 서당에서 돌아오던 중 오십여 명의 도적 떼를 만나 삼형제 합세하여 모두 사로 잡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 후 도적떼가 없어 마을이 평온하였다 한다.


14세 때 어머니는 어린 아들들의 성장 과정에서 놀라운 일들이 많아 걱정하시면서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멧돼지를 보고 싶다 하시자 징석과 징옥은 급히 산으로 올라가 높은 산 깊은 계곡을 헤매면서 형 징석은 그 날 멧돼지를 잡아 살아있는 놈을 끌고 올 수 없어 결국 죽여서 메고 돌아왔다. 징옥은 3일간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행여나 호사나 당했는지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태산같이 걱정을 하던 차에 징옥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효심으로 큰 송아지만한 멧돼지를 사로잡아 칡넝쿨로 다리를 묶은 채 어깨에 메고 집 앞 마당에 내려 놓았다. 이를 본 어머니는 너는 장래 대장군이 될 것이라 하시자 어머니 저는 장차 대황제가 되겠습니다라는 그 시대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들의 대단한 포부를 들었다.


[출처] 충강공 이징옥(李澄玉)과 오국성(五國城). |작성자 지식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