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한국… 낯 뜨거운 영어 안내문
조선일보 | 권순완 기자 | 입력 2016.05.07. 03:03
관광안내문 번역 오류 심각
관광객 1000만 시대에 아직도 유치한 번역 수두룩
'I.SEOUL.U'를 '너와 나의 서울'로 이해하라고?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서울 동대문 청평화 의류상가 지하 계단에는 '안녕히 가십시오 청평화 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그 밑에 영어 번역문은 'Bye is cheongpyeonghwa'였다. 상가 관리 담당자는 "수년 전에 대졸 직원이 번역해 놓은 것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Bye is 청평화'라니 이게 무슨 말?
서울 강남 교보빌딩 계단 통로엔 '갑자기 문이 열리니 조심하십시오'라는 문구가 'Suddenly, the door can be opened, Please becareful'로 번역돼 있다. 영어 원어민들은 이에 대해 문장부호와 띄어쓰기 오류 외에도 "조심하라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Be careful'이나 'Warning' 등의 문구가 맨 앞에 나와야 하고 본문도 'the door may open suddenly'라고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매해 1000만명 넘는 외국인이 찾는 한국 곳곳에 아직도 엉터리 영어 안내문이 즐비하다. 공공기관과 달리 민원이 들어와도 바꿀 의무가 없는 민간 안내문의 경우 특히 심하다. 영어권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틀리거나 부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을 볼 때마다 촌스러운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한 이모(28)씨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말도 안되게 적혀 있는 걸 보면 낯이 뜨겁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영어 번역 오류는 문장 번역이 아닌 단어 번역을 한 경우였다. 한국어 단어들을 하나하나 영어 단어로 바꾼 것인데, 그렇게 해서 완성된 영어 구문은 어색한 게 대부분이었다. 서울 거리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Please don't come in'으로 돼 있는 걸 봤다는 미국인 비키(50)씨는 "'come in'은 들어오라는 긍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는 구절이기 때문에 이 경우 'Don't step inside' 같은 표현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a'나 'the' 같은 영어의 관사(冠詞)를 잘못 써서 우스꽝스런 표현이 된 경우도 많았다. 서울에서 2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리사(58)씨는 남해의 섬을 여행하다가 본 'Beware of the falling'이라는 영어 경고문에 남편과 함께 한참 웃었다고 말했다. 정관사 'the'를 넣는 바람에 원래 의도한 '추락을 주의하세요'라는 대신 '(이미 일어난) 지반 붕괴를 조심하세요"라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당 표지판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이 밖에 'dyeing(염색하기)'을 'dying(죽기)'로 잘못 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체험해 보세요'라는 뜻이 된 안내문도 있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2월부터 각 부처나 지자체로부터 신청을 받아 공공 표지판·안내문의 영문 교정 작업을 하고 있다. 영어 원어민들이 실시간으로 문장을 교정해주는 시중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한다. 영어 교정 서비스를 민간 안내문에까지 확대할 계획은 없다. 최희섭 전주대 영미언어문화과 교수는 "영어 안내문은 우리의 국격을 가늠케 하는 얼굴 없는 외교관"이라며 "중소 규모 문화단체나 음식점엔 따로 번역 용역을 맡길 여력이 없으므로, 해당지역 대학 영어 학과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길을 터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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