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공학도들이 정리한 <난중일기>
"판독 오류 140곳 잡아"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 입력 2016.09.05. 03:06
[사진] 故 박혜일 서울대 교수 제자들 1998년 출간한 '이순신의 일기' 새 자료·연구 반영해 완결판
"은사 박혜일 교수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전화하셔서 '난중일기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20년 넘는 공동작업의 완결판을 내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최희동(61)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김명섭(51)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과 함께 '난중일기(亂中日記)'의 여러 판본과 국역본을 검토하고 주요 내용을 번역하며 지명·인명을 탐구한 '이순신의 일기(난중일기)'(시와진실)를 펴냈다. 1998년 서울대출판부에서 박혜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최 교수, 배영덕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 김명섭 박사의 공저로 나왔던 '이순신의 일기' 개정증보판이다. 초판 간행 이후 새로 발견된 자료와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박 교수는 2005년, 배 박사는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네 사람의 숨결이 담긴 저서에는 모두의 이름이 저자로 올라 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한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사제(師弟)가 엉뚱하게 '난중일기'를 공부하게 된 것은 거북선 연구의 권위자였던 박 교수 때문이었다. 박 교수가 읽던 난중일기 관련 자료의 복사본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최 교수가 먼저 박 교수를 돕기 시작했고, 이어 배·김 박사가 합류했다. 박 교수는 1995년 은퇴한 뒤 시간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성과를 정리해 출간했다. 박 교수는 초판 서언(序言)에서 '한 민족의 특성은 어떤 위인을 낳았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위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존경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이 작은 해제가 학생층 독자들의 체계적인 학문적 탐구 의욕에 부응하는 참고 자료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쓴 일기의 친필본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 소장돼 있다. 그리고 200년 뒤인 정조 때 활자로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수록됐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때 붙였다. 하지만 불과 두 명이 2년 만에 전서를 편찬하는 바람에 오자·누락이 상당히 많고 의도적인 삭제로 의심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에 비해 1935년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간행한 '난중일기초(草)'는 조사부터 간행까지 8년이나 걸렸고 당대의 한학자들이 동원돼 완성도가 높다. '이순신의 일기'는 친필본·이충무공전서본·난중일기초를 꼼꼼히 비교·검토했다. 박 교수는 또 현충사에 보관돼 온 '별책 부록'이 난중일기 친필본을 100년쯤 뒤 필사한 것이란 사실도 밝혀냈다. 325일분의 일기를 담고 있는 '일기초(抄)'는 친필본의 유실된 부분과 활자본의 보완·확정에 큰 도움이 된다.
최희동 교수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한 대표적인 작업은 친필본을 기존 판독들과의 검독(檢讀)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친필본의 이미지 파일을 상호 비교 검토하여 기존 판독의 오류를 140여곳 찾아냈다. 이 작업의 결과는 2007년 '이순신의 일기초'(비매품)란 단행본으로 나왔고, '이순신의 일기'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부록 CD 롬으로 수록했다. 그는 또 친필본의 임진년(1592년) 부분 맨 끝에 있는 편지가 갑오년(1594년)에 영의정 유성룡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된 것인데 보수 과정에서 잘못 붙여진 것임도 밝혀냈다.
최 교수는 난중일기에 보이는 인명·지명을 밝히는 데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문헌 검토와 현지답사를 통해 460여개의 지명에 대해 현재 위치를 밝혔다. 그중에는 고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포함돼 있다. 또 1050여명의 인물에 관한 색인도 작성했다. 최희동 교수는 "난중일기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고 수많은 국역본이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영어 번역본도 다시 필요하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난중일기의 보존·정리·번역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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