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승수·하승우의 <껍데기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밥 먹여주는지 알 수 있다
오마이뉴스ㅣ2017.05.06 09:04 최종 업데이트 2017.05.06 09:04
↑ 신간 <껍데기 민주주의>-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관한 대담 ⓒ 포도밭출판사
"호주가 좋다더라. 이민 가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더라. 미국 영주권 얻으려면 닭공장 같은 데서 1년 정도 고생하면 된다더라. 미세먼지 때문에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했다더라" 등등. 참 살기 힘들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을 확인하자마자, 한국보다 다른 나라에서 살면 같은 노동을 해도 더 인간답게 살 것 같아서 이민을 고민하는 지인도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 않았다. 최순실로 드러난 대한민국 정부의 민낯은 '기득권 공화국'이다. 소수의 기득권이 국가 예산과 정책을 쥐락펴락했다. 정도껏 해야하는데 방심했는지 지나쳤다. 단순히 최순실, 박근혜만의 문제일까. 어느 한 사상가는 조선의 노론부터 기득권의 역사가 이어져 온다고 말한다. 조선의 노론, 친일파, 공화국 성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패러다임이 궤를 같이 한다.
기득권의 뿌리가 깊다. 삽질을 하면 할수록 뿌리가 깊어 닿지 않는다. 진보는 삽질하다 체념해버린 역사의 반복이었다. 언론, 재벌, 관료, 학계 등 가진 게 있는 세력이나 집단은 쉽게 권력화되고 기득권을 지니려고 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된다. 기득권의 또다른 이름은 '학벌', '지연'(지역주의) 등으로 엮여 있기도 하다. '진정한' 보수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회가 없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연애를 주저하고 결혼을 미룬다. 아이를 낳는 게 두렵고 걱정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나라가 싫으면 국민이 떠나면 된다? 이 명제는 쉽지 않다.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게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이민, 이민' 하지만 언어가 통하고 나고 자란 땅을 떠나는 게 어디 쉽겠는가. 떠날 수 없다면? 체념하고 살거나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거나 대안이 몇 가지 나오지 않는다. 의지와 뜻의 문제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이런 질문이 맴도는 이에게 좋은 정보가 있다. <껍데기 민주주의>. 상식 이하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답답하기만 한 이들에게 이 책은 현실을 진단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돕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것이다. 어둡고 침침한 현실을 차근차근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흔하디 흔한 공기가 미세먼지 폭격을 받아 깨끗함을 잃어버릴 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냥 이미 주어진 것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상황에서 우리의 주권이 누군가에게 더럽혀지는 사건을 마주할 때에라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민주주의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도래할 어떤 사회 체제일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요소는 무엇일까. 종교개혁을 했지만 교황이 목사로 바뀌었을 뿐 교회의 통치 체제가 비슷한 것과 같이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세워졌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왕 노릇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저자는 아나키즘을 '국가만이 아니라 시장의 폭력에 맞서고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주의에도 반대하기 때문에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며 반강권주의가 보다 정확한 번역'이라고 말한다. 자치와 자유를 꿈꾸는 이라면 아나키스트의 피가 흐른다고 보아야 한다. 모두가 자유인을 꿈꾼다면 '반강권주의자'이다. 저자는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위 '활동'을 하는 이들이 아나키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계나 권력 관계를 싫어하고 보수적인 문화를 지양하는 이들에게 아나키스트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 다만 제도화된 정치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멀리하는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다. 기득권화된 정치와 정부 일에 관심을 멀리 두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꾼들이 펼치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을 가지는 게 무척 피곤했던 적이 있었다. 정치를 혐오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무관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삶을 구성하는 정치까지 관심을 놓게 되기도 했다. '정치'라는 단어에 새겨진, 현실화해야 할 주권까지 희석하게 된 결과를 낳는다. 참으로 비극이다.
저자는 어떻게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지,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로 밥 먹을 수 있는지,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가 찰싹 붙어 있다는 것을 친절한 대화체로 나누어 준다. '구조적 전환과 일상에서의 대안적인 삶'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의 대안적 삶은 '풀뿌리'가 왕성해질 때에라야 가능한 실천이다. 풀뿌리에 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1. 아래로부터 자신과 우리의 삶의 기분을 조직하는 활동,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주체, …아래로부터 그동안의 권력 과정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해나가는 정치과정으로서의 풀뿌리
2. 정당 운동하시는 분들은 정당의 단위조직으로서 풀뿌리
3. 하나하나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하나의 연결망 속에서 서로 얽혀 있는 풀뿌리망
지역의 자치력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에 관한 설명을 추가한다. 관료제를 깨려고 주민평의회를 만든 사례를 소개하며 자치권으로의 분권 개념을 설명한다. 차베스는 입법/행정/사법 외에 '시민부'를 만들었는데 아래로부터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방안이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사례-국민 발안 제도, 국민투표 제도-를 언급하기도 한다. 풀뿌리를 공론장과 같은 위상으로 보며 공론장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관해 지적하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대안적 삶과 동시에 '구조적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1.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 2. 권력을 분산시키고 분권화시키기 위한 노력 3.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구체화한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고 제안한다. 전체 의석수를 기준으로 득표한 비율만큼 의석을 배정하자는 것이다(좀더 자세한 내용은 참조). 지금은 거대 정당이 득표한 것보다 더 많은 비례의석를 가져가고 있다. 정치적 신념에 부합하는 정당에 표를 준다고하더라도 일정 비율에 도달하지 않으면 사장되어 버리는 게 지금의 선거제도의 현실이다.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이 첫 순위로 나오는 이유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중앙국가로는 한계가 있고 지역분권을 해야 한다. …광역 지자체가 아니라 더 작은 마을, 기초지역이 중심이 되어야 민주주의에 가까워진다. …마을 단위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덧붙여,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를 복원하려면 결국 지역 중심으로 가야 한다, 지역분권/지역순환적인 사회구조나 경제구조로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일상적 삶이 운동으로 확장되어 구조적 전환을 이뤄 시민이 주인되는 지역 분권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 '일상과 운동 사이를 지속적으로 이어줄 수 있는 매개로서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선거 전문가가 아닌 풀뿌리에 속하는 평범한 시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한다. 또 다른 정당의 기능은 다른 세상에 관해 상상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논의를 풀며 자본주의는 경제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라며 "탈자본주의라고 하는 건 선언하기는 굉장히 쉽지만 일상생활의 습관과 문화로 바꿔야 하고 시스템도 바꿔야 하고 제도도 바꿔야 하고, 그 바꾸는 기간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결집력도 필요하고, 결집력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이걸 지역화해서 고민할 수 있는 주제들도 등장"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임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덮고나면 요원한 과제가 산적한 것 같은 먹먹함이 밀려오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가야할 곳이 분명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염증을 느끼며 시민이 주인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이때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까?
일상적이고 흔한 '인터넷'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주권자로서의 시민에 관해, 내 권리에 관해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어 왔던 게 아닐까. 투표 할 때만 주권자로 호명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주권자로 내 권한과 권리와 의무를 계속 깨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마 이런 질문에 관한 안내가 <껍데기 민주주의>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 주권자의 의지와 뜻이 매 사안마다 수납되지 못하고 때때로 시민의 의지에 반하여 대의 권력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권한을 휘두른다. 묻자. 대통령 한명 잘 뽑는다고 나라가 바뀔까. 잊지 말아야 할 게 뭘까. 저자의 생각을 편집하여 답을 가름하려 한다.
"소수의 기득권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건 바로 다수의 힘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저들에게 맞서야 한다... 실천 속에서 새로운 앎이 싹트고, 민중이 느낌, 감정, 멋으로 가득 찬 살아있는 앎을 얻는 과정이야말로 혁명이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김준열 phch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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