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가연성 마감재가 '불쏘시개'...
통유리 사우나에는 유독가스 가득
[경향신문] 이삭·김찬호·유설희 기자 입력 2017.12.21. 23:31 수정 2017.12.21. 23:37 댓글 548개
↑ 암흑 속 수색 21일 밤 대형화재로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소방관들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천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희생자 왜 많았나?
[경향신문]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순식간에 번진 유독가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대피하기 어려운 건물 구조와 화재에 취약한 건물 마감재 등도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 2층 여성 사우나에 사망자 집중
이날 화재에서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인 20명이 2층 여성 사우나에서 발생했다. 여성들이 옷을 입느라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3층 남성 사우나에 있던 남성 10여명이 대부분 대피에 성공한 것과 대조된다. 3층 사우나에서 탈출한 윤종원씨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나 관계자가 비상구로 대피하라고 안내해줘 4층에서 내려온 네댓명의 사람들이 합류해 비상계단으로 탈출했다”며 “여성 사우나가 있는 2층 비상구로 나온 사람들은 못 봤다”고 말했다.
이는 1층 필로티 구조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가 바로 위층인 2층에 가장 먼저 유입돼 여성 사우나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여성 사우나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한 곳밖에 없다. 이 출구가 유독가스로 가득 차면 내부에 있던 이용객들의 탈출이 쉽지 않다. 이 시설을 자주 이용했다는 한 목격자는 “목욕탕 입구가 2~3명이 오가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다”며 “연기가 많이 나서 앞이 보이지 않는 데다 경황이 없어 탈출구를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나가 통유리 구조로 돼 있던 것도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 창문은 열어서 연기를 배출시킬 수 있지만 통유리는 강화유리라 파괴도 안되기 때문에 여성 사우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더 빨리 질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가연성 마감재로 불길 확산
화재에 취약한 건물 구조와 가연성 마감재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보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연기와 불길이 위층으로 번진 데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층 필로티 공간은 주차장뿐 아니라 공용 통로로 사용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화재가 시작돼 피신이 더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차된 차량의 인화성 물질 때문에 불길이 더욱 빠르게 확산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건물 외부 마감재도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건물은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외장재인 ‘드라이비트’로 꾸며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로폼이 화재에 취약해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사망자들은 화상보다 대부분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이비트는 2015년 126명의 사상자를 낳은 의정부 아파트 대형 화재 당시 피해를 키웠던 소재로 당시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불이 나면 빠르게 번지고, 유독가스를 내뿜는 데도 이 소재가 계속 쓰이는 건 저렴한 시공비 때문이다. 이 건물은 올해 주인이 바뀌면서 지난 10월 리모델링을 거쳐 재오픈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 칠한 페인트와 내부 장식재가 화재를 키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소방당국, 초동대처 늦어
소방당국이 신속한 화재 진압에 실패한 것도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건물 주변에는 주차한 차량들이 많아 화재 초기에 소방차 진입이 어려웠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소방차가 진입에 필요한 7~8m의 도로 폭도 확보되지 않아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굴절 소방차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고층에 있던 시민들의 대피가 지연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사다리차는 최소 8m 반경이 확보돼야 펼칠 수 있는데 연기가 상당히 많이 나서 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삭·김찬호·유설희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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