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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성평등

[뿌리찾기] 해외 입양인 "난 화가 나 있지 않아요... 사랑해요"

잠용(潛蓉) 2019. 5. 11. 16:10

뿌리 찾아 온 해외 입양인 "난 화가 나 있지 않아요... 사랑해요"
중앙일보ㅣ박해리 입력 2019.05.11. 11:00 댓글 561개  



▲ 생후 3개월만에 네덜란드로 입양된 해실 샌더(36ㆍ한국이름 문혜실)는 친모가 과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장안동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부모를 찾기에 나섰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그는 "친모를 찾을때까지 매년 한국에 방문할 것이다"고 말했다. [해실 샌더 본인 제공]
 
# “나는 내 친모에게 화가 나 있지 않고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친가족을 찾을 때까지 매년 한국에 올 것이다.” 생후 3개월 만에 네덜란드로 입양된 해실 샌더(36·한국이름 문혜실)는 친모를 찾기 위해 지난달 27일 한국에 왔다. 그는 전단지를 뿌리며 서울 장안동을 직접 돌아다녔다. 샌더는 1983년 9월7일 오후 7시 약 30세던 문모씨(현재 62~65세 추정, 장안동 거주)가 서울 후암동 이순옥 산부인과에서 낳은 쌍둥이의 둘째로 태어났다. 며칠 후 문씨는 아이를 두고 퇴원했으며 친권 포기 각서를 썼다. 샌더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져 3개월 후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샌더는 “처음 한국 올 때까지 이를 알지 못했다. 네덜란드 입양 파일에 나는 버려졌으며 부모는 알 수 없다는 거짓 기록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훌륭한 양부모 밑에서 멋진 삶을 살았고 예술가이자 선생님이 됐다”며 “친모를 찾고 싶은 이유는 그녀의 결정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내 가족의 얼굴이 궁금해서다”고 말했다.



▲ 생후 3개월만에 네덜란드로 입양된 해실 샌더는 친모가 과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장안동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부모를 찾아 나섰다. [해실 샌더 본인 제공]
 

#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메리 콜린스(한국이름 조미애·37)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국의 입양기관은 부모를 찾을 수 없다고 그에게 통보하며 경남 사천에서 32세의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여성에게 버려졌다며 부모의 이름·나이 정보만을 알려줬다. 포기할 수 없던 콜린스는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심하고 해외입양인연대(GOAL)의 모국방문행사를 통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사천의 주민센터를 방문해 자신의 친부를 알고 있는 은퇴한 직원을 만나 친가족과 재회하게 됐다.


서류상으로 당시 비혼인 상태라던 부모는 여전히 결혼한 상태였고 세명의 언니와 오빠 한명도 함께였다. 콜린스는 “입양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답을 얻으려 부모를 찾는다. 하지만 내가 가족을 찾으며 배운 건 더 깊은 차원의 인간 간 연결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두 개의 문화를 가진 것이 축복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한국에 올 것이다”며 말했다.



▲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메리 콜린스(한국이름 조미애 37)는 지난해 해외 입양인연대 모국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친가족을 찾았다. 사진은 콜린스와 그의 친오빠 /사진 메리 콜린스 본인 제공


뿌리 찾으려는 해외 입양인들



▲ 해외입양인연대(GOAL)는 매년 모국방문행사를 진행한다. 사진은 지난해 모국방문행사 모습. 리차드 피터슨 해외입양인연대 사무총장은 "이 단체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등 해외각지 입양인들의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 1993년에 설립됐다"고 말했다. 해외입양인연대는 7명 직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5명은 해외입양인 출신이다.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다. 해외입양은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샌더와 콜린스처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오는 입양인들은 여전히 많다. 중앙입양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친부모를 찾기 위해 입양정보공개청구한 건수는 총 1607건에 이른다. 이 중 동의 건수는 307건, 실제 상봉이 이루어진 건 89건이다. 1998년 생긴 해외입양인연대(GOAL)는 이런 입양인들을 돕기 위해 모국방문행사를 진행한다. 한국에 온 적 없는 입양인들을 선정해 열흘간 한국에서 지내며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서울 청운동에 있는 ‘뿌리의 집’은 김도현 목사가 2004년부터 운영하며 그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허브 역활을 해왔다.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돕고 원하는 이들에게는 친부모 찾기를 도와준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여러 단체가 힘쓰지만 막상 부모를 찾는 일은 녹록지 않다. GOAL에서 친부모찾기 담당하는 프랑스 입양인 데미안 테리스는 “입양기관에 정보 의뢰하지만 못 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름·주소가 지워져 있거나 거짓 정보도 있어 무엇이 진짜인지 찾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차드 피터슨 GOAL 사무총장은 “입양기관에 가서 ‘내 부모가 날 찾으러 온 적 있나’란 질문을 하지 않으면 과거에 부모가 왔어도 말해주지 않기도 한다”며 “기관을 방문하는 분들은 꼭 이런 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실종팀은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한 여성의 부모를 52년 만에 찾아주기도 했다. 서대문경찰서 이성철 실종팀장은 “DNA를 채취해 실종아동전문기관을 통해 국과수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찾는다”며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통역과 함께 올 때도 있지만 언어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파파고(네이버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통번역 앱)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미국 현지 언론에도 소개되며 미국 LA 영사관에 부모를 찾고 싶다는 입양인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LA영사관 주재 경찰은 서대문경찰서와 협력해 이들이 한국에 방문하지 않고도 DNA 검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현재 3명의 여성이 DNA 검사했다. 장기실종을 전담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장기실종팀도 해외입양인들의 부모 찾기를 돕고 있다.



▲ LA총영사관을 방문한 입양인 킴벌리 버머(김유리·47 왼쪽부터)와 딸 해나(조민진·15) 모녀, 에마 코프(김희진·22). 이들은 모두 생후 6~12개월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들은 한국 가족을 찾기 위해 LA에와서 DNA검사를 했다. LA총영사관은 서울서대문경찰서와 협력해 입양인 대상 무료 유전자 검사를 통한 가족찾기를 제공하고 있다. 검사된 DNA는 서대문경찰서 실종팀으로 보내진 후 실종아동전문기관을 거쳐 국과수에 의뢰해 분석된다. /미주중앙일보 김형재 기자


‘아동수출국’ 오명 한국의 남은 과제
모든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길 원하는 건 아니다. 리처드 사무총장은 “입양인들은 각자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부모 찾는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김도현 뿌리의 집 목사는 “친가족을 찾는 것은 감정적인 일이고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도 지원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입양은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보내졌다고 하지만 모두가 좋은 삶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실제로 해외 입양인들은 강제추방, 파양, 재입양 등을 겪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398명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이는 전체 입양의 46.1% 해당한다. 김 목사는 “해외입양을 국내입양으로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미혼모 등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편견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아동이 이별과 상실을 겪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