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44년째 '이중국적' 국보 백자, 조선이냐 원나라냐
경향신문ㅣ2018.12.28 06:00 수정 : 2018.12.28 10:12
국보와 보물이 무엇입니까? 보물은 ‘형태가 있는 문화재(유형문화재)’ 중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 중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문화재’를 의미합니다. 국보는 그 보물 중에서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 중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문화재를 뜻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지정된 국보 336건 중 국적이 모호한 문화재가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요? 쉽게 말하면 ‘이중국적’ 문화재라 할까요?
바로 국보 제168호 백자가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은 ‘백자 동화매국문 병(白磁 銅畵梅菊文 甁), 조선시대, 국보 제168호…’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국보 168호인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연 다르게 소개했습니다. ‘백자 유리홍 매화 국화무늬 병(白磁釉裏紅梅菊文甁), 중국 원나라 시대, 국보 제168호….’라 했습니다. 이상하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기관인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서로 다른 설명을 해놓았으니 말입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의 국적을 ‘조선’이라 했고 이름도 ‘백자 동화 매국문병’이라는 한국이름으로 표기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의 국적을 ‘중국-원나라’라 했고, ‘백자 유리홍 매국 무늬병’이라는 중국이름으로 표현했습니다.
▲ 1974년 문화재위원회에서 국보로 지정된 국보 168호 백자. 학계에서는 조선시대 작품이 아닌 원나라 시대 백자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공식적인 연구와 절차없이 유물의 국적과 명칭, 유물설명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양 기관의 유물설명을 볼까요?
“…이 작품은 조선 전기에 진사(辰砂·적색 안료)로 무늬를 그린 병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문화재청)
“…이 병은 경덕진요(景德鎭窯·중국 제일의 도요지) 초기 형태의 유리홍으로 시기는 원대(元代)이다…”(박물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국보나 보물 등 유형문화재를 지정 심의하는 문화재위원회가 잘못 한 거죠. 국보 168호 백자를 국보로 지정 심의한 문화재위원회는 1974년 6월21일 열렸는데 이때 ‘이 백자는 매화와 국화를 그린 15세기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보 지정’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문화재위원회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당시에는 유물을 제대로 판별할 도자기 전문가들이 없었다는군요.
그런데 훗날 도자기 전문가들은 이 국보 제 168호 백자의 국적이 ‘조선’이 아니라 ‘원나라’로 결론 내렸다는군요.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설명이 맞고 문화재청이 틀린 거로군요.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도 그렇게 잘한 것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보지정은 문화재위원회 회의라는 정식절차를 통해 국보가 됐잖습니까. 그렇다면 유물의 국적과 명칭이 바뀌는 것 또한 정식절차를 밟아야죠. 문제는 이 ‘국보 제168호 백자’의 제작시기 및 국적변경과 관련된 연구논문이나 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논문과 같은 연구결과없이 전문가들이 입으로 낸 견해로 유물설명을 바꾼 것이죠.
그러니까 문화재위원회 심의로 국보가 되었으니 역시 문화재위원회 결정으로 국보해제가 되던가, 아니면 유물의 명칭이나 국적을 바꾸던가 해야겠지요. 문화재청도 잘했다 할 수 없지만 박물관 역시 잘했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이 ‘국보 제168호 백자’의 국보 자격을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과거 스승이나 선배의 결정을 중간에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니 사람이 신은 아니지않습니까. 과거 학자들이 무슨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아닐진대 오류가 있었다면 누구라도 바꿔야죠. 국보자격을 박탈하지 않는다면 뭔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깔끔하게 정리하던가요. 이 국보 제168호 백자 뿐 아니라 국보 제89호인 ‘금제 띠고리’도 박물관은 ‘낙랑’이라 하고, 문화재청은 ‘삼한시대’라 했다지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요.
아닌게 아니라 국보나 보물 중에는 뭔가 개운치않은 내력을 가진 유물 등이 더러 있다는군요.
이번 참에 꺼림칙한한 국보 및 보물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 작업이 필요하겠네요. 아참, 일제강점기에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이 되었고. 해방 후 국보 제367호가 됐지만 1962년 저명한 문화재위원의 ‘일본 짝퉁설’ 제기로 국보에서 해제된 유물이 있는데요. 바로 양평 상원사 동종입니다. 최근들어 과학적 성분분석에서 ‘통일신라시대 종’으로 판명됐다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잔짜 통일신라종인데, 전문가 한사람의 고집으로 국보해제됐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이겠습니까. 이 역시 재평가되어야겠네요.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18회는 ‘44년째 이중국적이 된 국보, 원나라거냐 조선거냐’입니다.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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