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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영화] "조디악" (Zordiac 2007) - 데이빗 핀처 감독

잠용(潛蓉) 2020. 12. 16. 15:49

<조디악> - '숨죽인 채 밟아보는 그의 흔적'
[영화 후기,리뷰/ 넷플릭스, 범죄,추리,스릴러 영화 추천/결말 해석]
by Kyung film May 07. 2020

 

타이틀 : 조디악 (Zodiac)

국내 개봉일 : 2007.08.15.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안소니 에드워즈,

브라이언 콕스, 찰스 플레셔, 자크 그레니어, 필립 베이커 홀


숨죽인 채 밟아보는 그의 흔적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조디악 킬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조디악>. 50년이 지났지만 조디악 킬러는 아직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의 만화가였던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경찰이 사건 종결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조사를 이어나갔고, 조디악 킬러에 대한 책을 써낸다. 그가 써낸 책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했으며 그의 눈빛이 변하는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수사관 데이비드 역에 마크 러팔로, 폴 에이브리 역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하며 나의 개인적인 나의 개인적인 오덕심...과 배우에 대한 만족도를 넘치게 채워주었다.

 

<조디악>은 긴 러닝타임을 견딜 집중력을 갖추고 복잡한 등장인물, 이야기 중간에 흘려지는 단서들을 기억해야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다. 범죄, 추리의 오락적인 요소와 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에서 오는 저릿한 감각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초반에 여러 등장인물이 교차되며 나오는 순간에 헷갈리기 시작한다면 뒤로 갈수록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초반에 팍! 집중하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초반을 넘어가고 나면 영화가 자신의 힘을 발휘해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니.. 자연스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자칫 호불호가 나뉘기 쉬운 흐름이지만 조디악이라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1969년부터 시작해 83년, 마지막 91년까지 흘러가는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촘촘하고 세밀하게 구성해낸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증거나 정황은 하나도 없다. 영화의 중심 소재가 영구 미제 사건이어서 그런지 봉준호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주 조용히 옅은 숨을 내쉬며 ‘정말 잡고 싶은 그놈’의 흔적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그 느낌말이다.

 

조디악 시놉시스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친애하는 편집장께, 살인자가 보내는 바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는 1968년 12월 20일 허만 호숫가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연인, 1969년 7월 4일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에서 난사 당해 연인 중 남자만 살아남았던 사건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가 편지에 적힌 단서들은 사건을 조사한 사람 혹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신문사의 업무는 일대 마비가 된다.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이후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경찰을 조롱하는 살인범은 처음이기 때문. 범인은 함께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협박한다. 범인이 보낸 편지들은 그레이스미스, 에이브리, 토스키, 암스트롱, 네 명의 인생을 뒤집어 놓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암호 속에 내 정체가 숨겨져 있다

조디악이 크로니클 신문사로 보낸 편지. 그 편지의 암호를 본 크로니클 신문사의 삽화 작가 로버트는 조디악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평소 퍼즐 맞추는 것을 즐기던 그는 암호에 관련된 책을 찾기 시작한다. 조디악이 사용한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당시 FBI와 CIA, 미 해군 정보부까지 동원했으나 모든 암호를 푸는데 실패한다. 조디악은 복잡한 암호를 사용했고 좁혀오는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만큼 지능적인 살인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 행위를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자 ‘노예 수집’이라 말하며 본인을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상위에 있는 존재인 것처럼 표현한다.

 

조디악을 잡기 위해 로버트와 폴, 형사 데이비드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조디악은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제대로 된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다. 전전긍긍하고 있는 데이비드에게 ‘아서 리 앨런’이 조디악일 것이라는 제보가 들어오고 데이비드는 그를 찾아간다. 손목에 걸친 조디악 시계와 여러 정황이 리 앨런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으니 리 앨런에 대한 수색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건물 한 채가 다 지어질 만큼 길었던 1년이 지나가고 조디악에 대한 기사를 쓰다 그의 표적이 되었던 폴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상태가 된다. 폴은 약과 술에 찌들어 신문사를 떠나고 데이비드는 아서 리 앨런의 트레일러를 수색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그사이 조디악 킬러는 얼굴 없는 살인범이자 신화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디악 킬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고 영화 속 형사들은 범인을 잡는데 성공한다.

현실에선 잡지 못하는 그 조디악을 말이다. 영화를 본 데이비드는 깊은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범인을 잡고 싶은 건지, 지금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조디악 킬러를 조금씩 잊는다. 조디악은 살인을 멈췄으며 그가 죽인 사람들의 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고, 나락으로 빠진 수사를 건져올릴 방법도 없었다. 데이비드도 폴도 지나간 뉴스는 잊어버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로버트는 조디악에 대한 수사를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범인이 맞다는걸 느끼고 싶어

로버트와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는 멜라니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 않기에 본인이 해야 한다는 생각과 조디악에 대한 분노, 관심 등 여러 감정에 휩싸인 로버트는 조디악의 정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조디악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발표한 로버트에게 걸려온 월리스 페니의 제보전화. 이번엔 아서 리 앨런이 아닌 ‘릭 마셜’에 대한 제보였다.로버트는 조디악의 편지와 릭 마셜의 필체를 대조하기 위해 릭 마셜의 필체가 담긴 포스터를 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포스터의 필체가 100%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단서인 필름을 찾아 방문한 밥의 집. 포스터 필체의 주인은 밥이었고 그의 집엔 지하실이 있었다. 밥이 포스터의 필체가 자신의 것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싸한 느낌이 파도처럼 덮쳐온다.

 

영화의 중후반부터 끝까지, 대략 40분의 시간 동안 로버트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1시간 반동안 쌓아온 범인의 행적과 제보, 증거들이 하나둘씩 맞아들어간다. 로버트는 마지막에 데이비드를 만나 ‘아서 리 앨런’을 조디악으로 지목한다. 데이비드 또한 로버트의 의견에 이의가 없지만 그를 잡을 수 있는 증거가 없으니 이제 그만 책을 끝내라고 얘기한다. 활동 시기와 정황상 일치, 심증은 있으나 리 앨런을 구속하기엔 정확한 단서가 없다. 로버트는 사건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고 홀로 리 앨런을 찾아간다.

 

로버트와 앨런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그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그리고 7년 반 뒤. 91년. 조디악 범행의 생존자인 마이크 마조가 아서 리 앨런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조디악은 끝이 난다.

조디악은 누구였을까?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다. 조디악에 대해 책을 쓴 로버트와 생존자 마이크 마조는 아서 리 앨런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리 앨런은 재수사 진행 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의 DNA는 조디악의 편지에서 검출된 일부 DNA와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 앨런의 집에선 여러 명의 유전자가 뒤섞인 혈액이 묻은 칼과 총이 발견되었고 그의 친구의 증언과 조디악과 같은 시계를 착용했다는 점 등 그가 조디악임을 암시하는 증거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 리 앨런이 사망한 후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애초에 조디악은 한 명이 아닌 2명이었거나 모방 범죄를 일으킨 범인이 더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체 중 K가 일치하지 않았던 부분과 밥 본의 등장, 지하실에서 들었던 위층의 발소리는 2명의 존재를 암시하는듯한 느낌이 든다. (로버트는 이때 혼자 사는 게 맞냐고 다시 질문한다.)리고 조디악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조디악은 다리를 절었다고 하는데 리 앨런은 다리를 절지 않았다. ‘조디악 킬러’의 존재가 영원히 미제로 남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60년대가 아닌 2020년 현대 사회였다면 조디악 사건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그는 여전히 살아서 자신의 노예 수집의 흔적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증이 많아지는 영화였다.

 

조디악 킬러의 흔적과 정황을 따라

숨죽인 채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조디악>

희대의 연쇄살인범의 등장과 함께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삶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조디악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다시 스며든다. 거기에 긴장감 넘치는 구성과 한순간 덮쳐오는 시린 의문점들. 데이빗 핀처 감독의 거대하면서도 밀도 높은 구성 능력에 빠져들게 되는 영화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영화] 조디악 by Duroo Aug 18. 2020

 

감독/ 데이빗 핀쳐

私적 영화 소비생활 1 /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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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디악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여섯 번째 작품으로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디악 킬러의 연쇄살인은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주로 젊은 연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당시 수사기술의 부족, 증거물 부족 등의 이유로 끝끝내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렸다. 영화 조디악의 기본 폼은 여타 범죄 추리물과 같이 '범인 찾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태까지 흔히들 접해왔던 '셜록홈즈형' 추리물과는 다르다. 조디악은 셜록처럼 단순히 '객관적 물증'으로 추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 '부족한 물증'에 '합리적인 심증'을 덧대어 보다 몰입감 있게 추리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련되면서 절제미가 있는 탄탄한 연출력은 그러한 몰입감을 끝없이 팽창시킨다.


조디악을 보면 '거장은 프레임 속 공기까지 연출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관객들은 일순간 실제로 영화 속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나눠마시고 있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관객이라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했을 것이다. 주인공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마주한 순간, 관객 역시 주인공과 함께 심증뿐인 범인을 마주했고 또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취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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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을 처음 만난 건 출처 없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50선'에서였다. 아직까지도 누가, 무슨 기준으로 작성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 리스트는 영화를 쥐뿔도 모르던 당시 나에겐 바이블이었다. 독실한 신자가 된 난 맹목적으로 그 리스트 속 영화를 골방 같았던 첫 자취방에서 밤이 새도록 시청했다. 나중에 와서 확인해보니 그 리스트엔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실려있었다. 세븐-파이트 클럽-조디악-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소셜 네트워크 까지. 물론 당시의 난 같은 감독일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리스트엔 감독 이름이 안 쓰여있으니 무슨 재주로 단번에 알아차렸겠는가. 리스트 작성자가 분명 지독한 데이빗 핀처 매니아였으리라 짐작해본다.

 

영화를 막 좋아하기 시작했던 21살에 나는 별생각 없이 세븐-파이트 클럽-조디악을 밤새 몰아봤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을 볼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동이 틀 무렵, 잠시 볼까 잘까 망설이다 튼 조디악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그래 이거야!'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겐 '취향저격'이라 칭할만한 이렇다 할 영화가 없었다. 조디악은 내가 처음으로 '취향저격'이란 표현을 써가며 남들에게 추천하기 시작한 영화였다.여전히 나의 '영화 취향'을 명확히 어떤 것이라 정의 내리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간엔 분명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


나는 영화적 '변주'를 즐기는 편이다. 적절한 예외성은 늘 나를 흥분시킨다. 조디악처럼 탄탄한 연출에 적절한 장르 문법의 변주가 더해지는 경우에 특히나 더 그러하다. 조디악은 범죄 추리물이지만 장르에 비해 극의 속도감이 떨어지고 화려한 액션도 없다. 범죄를 과장하여 영화적으로 그려내지도 않고 범죄자에 어떤 캐릭터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 어느 추리물보다도 몰입감이 있다. 관객들은 조디악을 보는 내내 '때론 심증이 물증보다도 정확하다.'란 말을 몸소 체험했다. 단순히 주인공이 범인을 추격하는 걸 지켜본 것이 아닌 주인공과 함께 범인을 찾아낸 것이다. 범인 찾기를 오락이 아닌 '체험'으로 그려냈다는 점. 내가 조디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디악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닮았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물증이 부족하여 사건이 미제로 남는다는 점, 그리고 심증이 가는 명확한 범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살인의 추억'을 재미있게 본 사람에게 나는 늘 '조디악'을 추천한다. 이야기만 들었을 땐 굉장히 비슷할 것 같지만 다 보고 나서는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두 감독의 다르지만 완벽한 연출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흔치 않으니 부디 두 작품 모두 즐기시길 바란다. 더불어 조디악이 입맛에 잘맞으시는 분들에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 헌터'를 추천드린다. 데이빗 핀처가 직접 연출한 편도 있으니 빠지지 않고 보시길 바라며....


정기 콘텐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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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늘 즐겁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나도 모르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엔 뛸 듯이 기쁘기도 하다.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영화에 관한 고정적인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어쩌면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감을 살 수 있는 키워드가 '취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디악을 시작으로 아주 사적인 취향으로써의 영화를 소개하는 '사적 영화 소비생활'을 연재해보고자 한다. 부디 즐겁게 글을 읽어주시길 바라며...


진실을 맨손으로 쓰다듬는 법, <조디악>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30. 202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것부터 말하고 시작하겠다. <조디악>은 거리(distance)의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스스로를 '조디악 킬러'라고 부르는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저지른 후 언론사에 암호문을 보내고, 수사기관과 언론사의 협공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결국 한 언론사 삽화가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는 가장 유력한 범인을 쫓으며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남긴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스토리다.


그러나 <조디악>은 <살인의 추억>은 물론 여타의 범죄물과 확연히 다른 구석이 있다. 영화는 '거리',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영화 초반에 한 커플이 살해당하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깜깜한 밤, 한적한 공터에 주차된 차 안에서 커플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한 대의 검은 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가 싶더니, 멀어진다. 아찔한 것은 다음 순간이다. 멀어졌던 그 차가 다시 커플을 향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 차는 커플의 차 바로 뒤에 정차한다. 이 장면의 긴장감은 좁아지다, 멀어지고, 다시 좁아지는 그 거리감의 조용한 역동성에 있다.

다른 살인장면도 마찬가지다. 호수에 있던 여자는 살인범이 천천히 다가오는 순간을 시시각각 느끼며 "웬 남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고 말한다. 또 택시기사가 살해되던 장면에서 카메라는 하늘 멀리서 택시를 찍다가, 점점 택시를 향해 가까워진다. 마침내 카메라가 택시 안에 들어와 기사의 곁에 안착했을 때 그는 살해당한다.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와 거리. 우리의 몸 속에 숨겨진 위험 신호를 켜게 만드는 본능적인 거리. <조디악>은 바로 그 거리에 주목한다. 어쩌면 폴(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레이스미스에게 자꾸만 짜증을 내며 "나에게서 떨어져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거리를 좁히는 것은 상대를 포착하는 것이며, 나의 레이더에 담는 것이다. 수사물이 '거리'를 다룬다면 통상은 '형사와 범죄자' 사이의 거리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조디악>은 좀 다른 길을 간다. 영화는 처음 살인범과 피해자들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좁아지면 살해당하는 그 섬뜩한 거리. 그리고는 형사들이 유력 용의자인 '리(존 캐럴 린치)'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사는 실패하고,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때 돌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삽화가, 그레이스미스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마치 이어달리기의 바톤을 넘겨받은 주자처럼 용의자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가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리의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의 지인들을 징검다리 삼아 조금씩 살인범에게 가까워진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지는 순간도 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그는 때로 달아난다. 그러니까 (그의 활동을 책을 쓰기 위한 것으로 본다면) 작가-살인범 사이의 바람직한 거리는 형사의 경우와 다른 것이다. 형사와 살인범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울수록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살인범과의 적정한 거리를 따로 찾아야 한다. 진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를.

 

영화의 말미에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우연히 상점에 들른 그레이스미스는 리와 마주친다. 공격을 받기에는 다소 멀고, 그를 알아보기에는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적절하다'고 부를 수 있는 그 거리에서 리를 바라본 뒤 그레이스미스는 돌아선다. 이 하나의 순간을 위해, 살인범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그는 여태 그다지도 오랜 시간을 헤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순간의 도래는 서사의 측면에서 우연적이지만 영화의 측면에서 필연적이다. 거리의 영화라고 할 만한 순간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정말 하고싶은 말은 이제부터다. <조디악>을 보는 내내 나는 어딘가 불쾌하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처음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경찰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을 플래쉬로 찬찬히 살펴본다.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레이스미스는 어린 아들을 정성껏 돌보며 등교준비를 시킨다. 칫솔질을 돕고, 안아주고,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의 애정어린 손길. 최악의 살인장면 뒤에 부자의 다정한 아침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장면은 너무 다른 온도를 지녔음에도,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불쾌감을 자아낸다. 더 이상한 순간도 있다. 티비를 켜자 뉴스에서는, 스쿨버스의 아이들을 죽이겠다는 살인예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레이스미스는 아들이 곁에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며 뉴스를 끈다. 그런데 이때 아들이 그레이스미스를 향해 다가가는 순간의 연출은 마치 범죄자, 혹은 사냥꾼이 표적을 향해 다가가는 장면처럼 으스스하게 연출된다. 뿐만 아니라 그레이스미스의 아내도 마치 살인범처럼 어두운 밤에 느닷없이 집에서 나타난다.


어째서 이 영화는 그레이스미스의 '가족'들과 '살인사건'의 이미지를 이다지도 가깝게 접붙여 놓는걸까. 그런 의문이 생길 무렵, 계속해서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화난 아내를 달래는 그레이스미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의 모습은 한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챙기는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가 살인사건에 속에 놓인 진실의 윤곽을 더듬는 정성어린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것은 형사가 용의자를 쫓을 때와도 다르고 기자가 특종을 찾을 때와도 다르다. 어린 아이를 보살피듯 세심하고도 걱정스러운 태도.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자 자신이 기록하는 작품의 주인공들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 <조디악>에서 내가 본 것은 겁 먹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이며, 마치 어린 아들을 씻기듯 맨 손으로 정성스레 사건을 쓰다듬어 진실을 찾아가는 작가의 모습이다. 그의 태도가 묵직한 감동을 건네고 <조디악>을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살인사건의 살아남은 피해자에게 용의자로 추정되는 자들의 사진이 주어진다. 피해자는 그 중에서도 리의 사진을 짚으며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실화에 따르면 그 뒤에도 여러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영화는 이 순간에서 멈춘다. 영화가 생각하는 범인의 얼굴이 마침내 드러난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그레이스미스가 연필로 정성스레 그린 용의자의 몽타주가, 그가 아이를 돌보듯 진실을 더듬어 완성한 책이, 한 조각의 실사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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