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절벽 속 아파트값 계속 오르는 세 가지 이유
조선비즈ㅣ최상현 기자 2021.09.12 06:03|수정2021.09.12 06:03
서울 부동산 시장이 ‘거래절벽’ 상태에 빠진 가운데, 아파트값 상승세는 점점 가팔라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래량이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거래량이 감소하는 것은 가격 하락 신호라는 통념과 배치되는 상황이다. 12일 서울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698건으로 전년 동기(1만664건) 대비 55.9% 줄었다.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 8월 거래량은 3016건으로 집계됐는데, 아직 실거래가 신고가 완료되지 않은 잠재 증가분을 감안해도 7월보다 적을 것이라는게 한국부동산원 등 관계자들 설명이다.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8월부터 상승폭을 계속 더해가는 추세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7월 넷째주 0.23%였던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8월 들어 ▲첫째주 0.23% ▲둘째주 0.38% ▲셋째주 0.34% ▲넷째주 0.45% ▲다섯째주 0.41%로 한달 새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9월 첫째주 상승률도 0.45%를 나타내며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이처럼 서울 아파트값이 ‘거래절벽 속 급등세’를 보이는 현상에 대해 부동산 통계조사기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높아진 가격에 수요가 줄었지만 그보다 공급 부족이 더 심하고, 신고가가 또다른 신고가로 파급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사용한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는 내년에는 극심한 전세난이 예고된 상황이라 세입자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매수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분석이다.
▲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① 수요 줄었지만 매물은 멸종… ‘부르는 값’이 곧 시세로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몇년간 그야말로 ‘곱절’로 올랐다.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11억7734만원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7년 8월의 평균 매매가격인 6억3627만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두 배로 오른 셈이다. 올해 들어서도 1월(10억6108만원)에 비해 1억원 이상 올랐다. 가격 부담감을 느끼고 이탈하는 수요자가 늘고 있지만, 그보다 공급이 줄어든 정도가 더 크다는 것이 매주 부동산 시장에 대한 통계를 작성하는 관계자들 설명이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대출 규제 강화와 급등 피로감 등의 요인에도 수요가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만성적인 공급 부족이 이어지며 매도자가 주도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매도자 우위 장세’가 시세 상승 요인”이라고 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에서 발생한 아파트 매매거래 2058건 중 69.6%에 해당하는 1432건이 ‘최고가 거래’로 조사됐다. 최고가 거래는 직전 거래가격보다 높거나 같은 거래로, 신고가를 갱신하거나 신고가와 동일한 가격에 거래됐다는 의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금의 가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고를 수 있는 물량이 너무 한정된 상황”이라면서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데다 향후 1~2년간 신축 공급도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라 ‘지금이라도 사는게 낫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 일러스트=정다운
② “옆 단지 신고가만큼 호가 올릴게요”… 빨라진 파급효과
지난 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595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11단지’의 지난달 거래건수는 단 1건. 지난달 11일 전용면적 51㎡가 12억8000만원에 손바뀜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해당 면적의 현재 호가는 최저 13억4000만원에서 최고 15억원에 이르고, 최근에도 호가를 몇천만원 올린 집주인도 많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설명이다. 이처럼 거래가 드문데도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특정 단지 특정 면적에서 신고가가 나오면, 인근에 자리한 다른 단지도 호가가 덩달아 뛰는 파급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일 단지의 실거래가 만으로는 시세 추이를 반영하기 어렵다보니, 집값을 정할 때 살피는 비교 대상이 지역 전체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최근엔 여러 부동산 플랫폼을 통해 과거보다 실거래가와 같은 시세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실거래가가 다른 호가에 반영되는데 걸리는 시간도 대폭 단축됐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엔 이미 내놓은 매물도 인근 신고가 발생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렇게 가격을 올려도 매수자가 있으니 가능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리브부동산 관계자도 “거래량이 적다보니 실거래가가 편차를 두고 고루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가 다음에 또 신고가가 나오는 식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다”면서 “거래절벽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③ 모두가 예상하는 내년 전세난… ”계약갱신청구권 끝나면 갈 곳이 없다”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는 ‘이중 가격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같은 단지 내에서 면적과 층수가 비슷한 전세 실거래 가격이 많게는 수억원의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전세 계약과 신규 전세 계약이 혼재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단적인 예로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면적 84㎡는 지난 7월 23일 17억20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같은 달 29일에는 그보다 5억원 가량 낮은 12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고, 8월 10일에는 7억3500만원에 전세 거래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으로, 2년이 지나 전세계약이 만료되고 나면 임대인은 ‘시세대로’ 전세가격을 올릴 거라는 점이다. 동시에 전셋집을 새로 찾아야 하는 임차인도 대거 전세 시장에 유입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 만 2년차인 내년 하반기부터 ‘역대급 전세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한숨 돌린 세입자도 지금쯤 내년에 얼마나 전세금을 올려줘야 할지 알게 됐을 것”이라면서 “내년 전셋값이 오히려 지금 매매가격보다 비싸질 수도 있는 만큼 서둘러 매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급은 하세월... 당장 매물 늘리려면 ‘양도세 완화’가 해법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해소하려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완화 카드를 꺼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율을 완화하면 누군가에겐 필수재인 ‘주택’을 볼모로 한 시세차익을 그대로 인정해줬다는 비판이 일수도 있지만, 소수의 이익을 인정해주는 대신 다수를 위한 주택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2·4 대책을 내놓으며 뒤늦게나마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당장의 공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주도 정비사업부터 신규 택지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대책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공급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는 한계가 있다.
심교언 교수는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은 시장에 유통되는 매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고, 매물이 부족한 것은 보유세 인상에도 양도세가 훨씬 부담되기 때문”이라면서 “잠재 매도자의 양도세 부담을 줄여 ‘차익실현’ 매물을 대거 풀어놓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매물이 늘어난다면 아파트값에 낀 일부 거품도 해소되면서 시장이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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