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파업으로 쪼개지는 국민의힘... 폭발하는 윤석열 선대위 갈등
경향신문ㅣ2021.11.30 17:27 수정 : 2021.11.30 18:53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0일 공식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대선 후보와 당대표가 충돌하면서 당대표가 당무를 사실상 보이콧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도 쪼개지고 있다. 이 대표가 전면에 나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 반기를 들자 수면 아래서 끓고 있던 ‘이준석 패싱’ ‘문고리 권력’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측도 대응에 나서면서 당내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윤 후보로선 갈등 봉합을 위해 이 대표 ‘파업’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갈등 때와 유사한 딜레마에 처했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여성위원회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이준석은 왜?
이 대표가 30일 공식 일정을 돌연 취소한 배경으로는 ‘이준석 패싱’ 논란이 꼽힌다. 이 대표는 전날까지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점심과 저녁에도 비공개로 일부 초선 의원들과 각각 만나 식사를 했다. 이 대표가 잠적을 시사한 것은 전날 오후 8시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때부터다. 그 전까지 이 대표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일은 3건이 있었다.
먼저 윤 후보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대표는 앞서 이 교수 내정설이 나왔을 때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윤 후보는 임명을 강행했고 ‘이준석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윤 후보가 선대위 출범 후 처음으로 잡은 충청 지역 일정을 두고 잡음이 나왔다. 윤 후보 측에서 사전 조율을 하지 않아 이 대표가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이 대표는 전날 오후에 나온 자신을 겨냥한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발 기사를 두고 불편한 심경을 밝혔다. 이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익명인터뷰 하고 다니는 그 분 이제 대놓고 공작질을 하고 다니는군요”라고 썼다.
장기적으로는 윤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과정부터 불거진 ‘투스톤 대전’의 여파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대선 무대에서 자신의 청년 지지층을 활용해 주요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고 김종인 전 위원장 등용을 적극 주장했다. 이 대표 구상은 ‘삼위일체론’으로 불렸다.
윤 후보의 선택은 달랐다. 윤 후보는 후보 선출 이후 이 대표가 유임을 원했던 당 사무총장직을 한기호 의원에서 자신의 측근인 권성동 의원으로 교체했다. 이 대표는 당시 김도읍 정책위의장 등의 중용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김 정책위의장은 당연직인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받는 데 그쳤다. 당 관계자는 이날 기자에게 “이 대표로선 김종인 전 위원장이 합류하지 않는 상황부터 전반적인 상황이 모두 ‘잽’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며 “전날 이어진 일들이 결정타가 된 것이지만, 시기만 좀 빨랐을 뿐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이 30일 국회에서 모여 당의 상황과 초선 의원들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쪼개지는 국민의힘
이 대표의 잠적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갈등은 표출되기 시작했다. 중진 의원들이 찬반으로 나눠져 의견을 냈고, 초선 의원들도 모여 목소리를 냈다. 중진인 홍준표, 김태호, 하태경 의원은 이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냈다. 홍 의원은 자신이 만든 청년플랫폼인 ‘청년의꿈’에서 “당대표를 겉돌게 하면 대선을 망친다”고 했다. 또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떨어진 중진들이 몰려다니면서 당대표를 저렇게 몰아세우니 당이 산으로 간다”고 적었다. 김태호 의원은 SNS에 “당대표까지 설 자리를 잃으면 대선을 어떻게 치르려는 거냐”며 “차, 포 다 떼고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 대표 없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대선 승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에게 “선대위 구성을 포함해 당이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데 있어서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대출 의원은 SNS에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후보 중심으로 가는 게 선거의 상식”이라며 “후보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각자 제 위치를 지킬 때”라고 적었다. 김태흠 의원은 SNS에 “대선후보, 당 대표, 선대위 핵심 인사들 왜 이러시느냐”면서 양측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이견이 있다면 자신의 사욕, 자존심을 다 버리고 선대위에서 녹여내라. 선대위는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께 대선 승리의 희망을 주시라”고 적었다.
최승재 의원 등 초선 의원 14명은 국회에서 모여 목소리를 냈다. 강민국 의원은 “후보뿐만 아니라 선대위, 당에서조차도 과연 대선 100일 앞두고 우리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느냐”면서 “지금 대선에 임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언론에 문고리란 얘기가 나온다.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선대위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많은 초선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대선은 후보 중심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대체로 인정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 칩거로 당내 갈등이 터져 나오면서 다시 공은 윤 후보에게로 돌아갔다. 윤 후보로선 이 대표의 파업 요구 조건을 수용하느냐, 아니면 자르고 가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윤 후보 측근인 장제원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파업’에 대해 “후보 앞에서 영역 싸움은 부적절하다”면서 “모든 일들이 나 중심으로 선거운동 하겠다, 나한테 더 큰 권한 달라, 나는 왜 빼냐 이런 게 선대위를 둘러싸고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 대표는 당이 처음으로 맞은 30대 당대표다. 그 덕분에 국민들이 당의 변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며 “선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소통을 해서 섭섭하지 않도록 예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 대표를 두고 “차라리 민주당의 송영길 대표랑 맞바꾸고 싶은 심정”이라며 “그럼에도 윤 후보는 이 대표를 달랠 수밖에 없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봉·문광호·조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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