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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노무현을 배반한 사람은 내가 아닌 문 대통령"

잠용(潛蓉) 2021. 12. 10. 15:31

[김병준 인터뷰] "노무현을 배반한 사람은 내가 아닌 문 대통령"
시사저널ㅣ2021. 12. 10. 11:02 수정 2021. 12. 10. 12:14 댓글 5318개

 

(시사저널=구민주·김종일·이원석 기자)

[인터뷰]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
"준비 안 된 文 정부, 대한민국 '투기 공화국' 만들어"

좌우 진영을 넘나들며 활동한 정치인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의 정치 이력은 단연 다채롭다. 여야가 자리를 맞바꿔온 지난 20여 년간 김 위원장은 때마다 요직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노무현이 아끼는 책사였고, 박근혜가 탄핵 위기 때 찾은 책임총리 후보였다. 이번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의 정책 총괄로서, 당 선대위의 '왼쪽 날개'를 담당하게 됐다.

 

김 위원장이 주요한 시기마다 소환되는 이유는 그의 지난 정치 궤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탈국가주의를 강조한다. 최근 출간한 저서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에서도 언급했듯, 무딘 칼날로 개인과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권력의 타파를 주장한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분배 담론 없는 보수는 사이비 보수, 성장 담론 없는 진보는 사이비 진보"라며 양 진영의 기존 이데올로기 모두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인 지역균형발전은 김 위원장의 전공 분야다. 행정학자였던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것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방분권 비전을 공유하면서였다. 1994년 노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했고, 이듬해부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신(新)행정수도 정책을 구상하며 사실상 지금의 세종시를 설계한 주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 김 위원장을 향한 평가는 분분하다. 정치의 출발지와 멀어진 그에겐 '철새' 또는 '배신자' 꼬리표가 붙어있다. 보수진영에서도 그는 양면의 인상을 남겼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탄핵이 이뤄지며 씁쓸히 물러났던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 몰락의 길을 걷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인적 쇄신과 당 지지율 회복을 이뤄낸 기억도 있다.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두고 중책을 맡은 김 위원장은 지금 다시 정치적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의 정치 여정에서 '노무현'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일찍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정운영 철학을 공유한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 등 중책을 맡으며 참여정부 정책의 상당수를 설계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핵심 의제인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노무현의 구상'이 곧 '김병준의 구상'이라고 할 만큼 그의 의중이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당적을 옮겨 보수 인사가 된 후에도 김 위원장에겐 '원조 친노'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자주 따라붙는다. 자연히 노 전 대통령을 등진 '배신자 프레임'도 씌워졌다. 김 위원장으로선 '참을 수 없는' 비난이었다. 12월8일 인터뷰에서도 그는 "정말 노무현을 배반한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했다. 그는 "문재인과 김병준 중에 누가 정말 노무현을 배반한 사람인지 토론도 할 수 있다"며 '노무현 정신'을 잃었다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 일각에선 노무현을 등진 '배신자' 혹은 '철새'라고 비난한다.
"노무현의 정신과 철학은 이 정부 들어와서 이미 다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다 사라질 줄 알았기 때문에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외쳤던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시장 기능에 대한 인정, 서비스 산업 육성, 그 어느 것 하나도 지금 정부에선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과 주변 세력들은 노 전 대통령이 용기를 갖고 추진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이라크 파병을 정면으로 반대했고, 노 전 대통령이 당분간은 어렵다 했던 탈원전도 단행했다. 이 정부 어디가 노무현과 닮았다는 것인가?"

대통령으로서 노무현과 문재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통령 노무현은 어디까지나 대화와 타협을 존중했다. 검찰 개혁에 앞서 '검사와의 대화'부터 가졌던 사람이다. 지금 정부는 대화나 타협이 아니라, 칼부터 들고 권한을 행사했다. 어디가 노무현과 닮았나. 노 전 대통령 시절 지역균형발전회의를 60~70번 했는데, 그중 절반가량을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그 회의에서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공기업 지방 이전 방안 등을 다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역균형발전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한 건 딱 한 번뿐이라고 한다. 어떻게 지금 정부를 노무현 정부 2기라고 말할 수 있나. 배신자는 제가 아니라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다."

 

▲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일찍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정운영 철학을 공유하며 참여정 부 정책의 상당수를 설계했다. 사진은 2007년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 위원장(왼쪽) 과 노 전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현 정부의 공과는 무엇인가?
"잘못이 워낙 많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탄핵의 반작용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러운 탄핵 이후 준비가 충분히 안 돼 있었다.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제대로 담론 한번 꺼내보지 못한 채 대통령이 됐다. 그러니 선거 때부터 줄곧 분배 담론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꺼내놓은 소득주도성장도 사실 성장정책이라기보단 분배정책에 가깝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어떻게 대처할지 얘기하지 않고 진영과 이념 중심으로 폐쇄적인 논리만 추구했다. 투자는 안 되는데 정부는 빚을 내서 돈을 쓰고, 무역 흑자는 과거 패턴대로 일어나고 시중 유동성은 한없이 올라가고 있다. 그 돈이 다 어디로 가겠나. 부동산이나 코인 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전체를 '투기 공화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구민주·김종일·이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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