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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2022년 호랑이해] 한민족의 표상... 진취적 기상·복된 삶 상징

잠용(潛蓉) 2022. 1. 1. 23:37

[2022 신년특집 - 임인년에 바라본 호랑이]

한민족의 표상 호랑이... 진취적 기상·복된 삶 상징 
세계일보ㅣ조성민 입력 2022. 01. 01. 19:01 댓글 6개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쁜 귀신 쫓고 경사 스러운 일 암시해... 조선 새해 첫날 虎 그림 액막이로 사용
농본주의 탓 개체 감소.. 일제강점기 절멸... 신화·전설·민담 40%서 주요 소재 등장
虎 관련 국내지명만 389개.. 흔적 여전... 서울·평창올림픽 등서 마스코트로 쓰여

□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가 밝았다. 호랑이는 고대 단군신화부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마스코트 ‘수호랑’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함께한 세월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간직한 호랑이는 그 의미가 남다를 뿐 아니라 우리 문화 속에 신화, 예술품, 상징 등으로 다채롭게 깃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민족과 한국호랑이
한국호랑이는 한반도에 살았던 시베리아호랑이를 지칭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지난해 11월30일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편’에 따르면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큰 한국호랑이는 주로 해발 500∼800m의 높지 않은 산림지대에 서식하며 보통 하루 80∼100㎞를 이동, 영역을 순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이며 산맥으로 연결된 한반도는 호랑이의 서식조건과 맞아 오래전부터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함께해왔다. 이는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와 고대 벽화, 민간 설화 등으로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며 호랑이는 개체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조선이 민본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농본주의를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산을 개간하며 농경지를 확대하는 정책으로 인해 영역을 침범받은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호환’이 잦아지자 조선은 포호정책을 펼쳤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착호군 제도를 두었는데, 중앙에는 최정예 특수부대 착호갑사를 설치하고 지방에는 호랑이 사냥 전문가 착호인을 두어 호환을 방비했다. 착호군 제도는 호랑이 수가 줄어든 18세기 후반 폐지됐다.

 

▲ 무속에서 믿는 신상의 하나인 관악산 산신을 표현한 족자 형태의 관악산 산신도(민속072816). 산신은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보살펴주는 신으로, 수염을 만지며 앉아있는 모습으로 묘사됐으며, 산신 좌측에 복숭아를 든 동자와 산신의 화신인 호랑이가 그려져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후 일제강점기 일본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을 잡아 없앤다는 명목으로 해수구제 사업을 진행했고, 우리나라 호랑이를 절멸시킨다. 일본이 자행한 호랑이 사냥이 기록된 책 ‘정호기’(1918)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조선의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호랑이 포수들을 모아 ‘정호군’을 창설하였고, 조선에서 호랑이 사냥을 즐겼다. 사냥의 목적은 일제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적 행사였다. 그는 일본 내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한국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열며 “저희가 일본의 영토(일본에 병탄된 한반도) 내에서 호랑이를 잡아왔습니다”라고 연설했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따르면 이렇게 23년 동안 죽임을 당한 호랑이가 141마리에 이른다. 그 결과 한국호랑이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 기슭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기록 이후 자취를 감췄다.

 

한국호랑이의 흔적들
한반도에서 야생 한국호랑이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전국의 자연지명 10만509개 가운데 호랑이 관련 지명은 389개(0.4%)다. ‘범바위’가 전국에서 23곳으로 우리나라 호랑이 지명 중 제일 많이 사용됐다. 다음으로는 호암, 호동, 범골, 호암산, 복호 순으로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74개로 가장 많고, 경북(71개), 경남(51개) 등이 뒤를 이었다. 종류별로는 마을 이름이 284개, 산 명칭이 47개, 고개 명이 28개 등이었다.

신화·전설·민담 등 설화 속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십이지 동물과 관련한 설화 1283건 중 호랑이 관련 설화는 약 40%(501건)을 차지하고 있다. 오죽하면 조선 후기 기인 정수동(1808∼1858)은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조건으로 노자를 얻어 금강산을 다녀왔는데, 수십일간 줄곧 호랑이 이야기만을 해댔다고 전해진다.

 

▲ 대오방기의 하나로 진영의 오른편 문에 세워서 우영, 우위를 지휘하는 데 쓰였던 백호기(노부33). 흰 사각 바탕에 적색 날개를 달고 나는 백호와 청·적·황·백 네 가지 색깔의 구름이 그려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호랑이는 조선 후기 민화의 주된 주제이기도 했다. 호랑이가 벽사진경(나쁜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로 나아감)과 기복호사(안녕하고 복된 삶을 바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호랑이 그림은 세화(새해맞이 그림)라고 해서 정월에 액막이로 사용했다. 우리 선조들은 까치호랑이 그림과 용호문배도(새해 첫날 대문 양쪽에 붙이는 용과 호랑이 그림) 등을 집 안 곳곳에 붙이고 좋은 한 해를 기원했다.


조선 역대 왕의 제사 음악으로 사용되는 종묘제례악과 공자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에 쓰이는 악기 ‘어(?)’도 호랑이와 관련 있다. 어는 1116년(예종 11)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된 후 아악 연주에 사용됐는데, 엎드린 백호의 형태를 띤 어는 양을 상징하는 축의 반대편인 서쪽에서 음악의 종지를 알리는 역을 한다. 백호가 서방의 음을 수호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어를 치는 동작은 축이 열었던 하늘과 땅을 다시 맞닿게 하여 음악을 그치게 함으로써 음양이 화합해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한국인의 표상이 된 호랑이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적 표상으로 떠오르며 우리나라 대표 표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00년대 일본은 우리나라 영토를 닭 또는 토끼로 비유했다. 이에 당시 최남선(1890∼1957)은 일본의 이러한 행위에 대응하여 1908년 잡지 ‘소년’에 호랑이 형태론을 제시했다. 그는 한반도 형상을 호랑이로 표상하며 민족주의 인식을 자극했고, 소년들에게 호랑이와 같은 진취적인 기상을 지니라고 주창했다. 또 1926년 호랑이해를 기념하여 동아일보에 7편의 ‘호랑이’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조선시대 민화 까치호랑이(덕수 2506).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을 대표하는 그림인 까치호랑이는 영물인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려넣어 새해 나쁜 것을 쫓아내고 기쁜 소식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주요 국제대회에서도 호랑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다.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호랑이가 민화와 설화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그 씩씩한 기상이 약진하는 한민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적절하기에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스코트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호돌이는 다른 나라의 무상원조를 받을 정도로 궁핍했던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로 성장했다는 발전 신화를 나타냈다.

 

30년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에서도 백호를 형상화한 호랑이가 마스코트로 선정된다. 당시 평창올림픽조직는 “신화와 설화에서 산과 자연을 지키는 신성한 상상의 동물로 묘사되는 백호가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과 최상의 조화를 이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하고 애칭을 ‘수호랑’으로 붙였다. 수호랑은 호돌이의 직계 후손으로 불리며, 이 둘은 호랑이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위상을 갖게 된 주요 사건이 됐다.

 

호랑이는 군부대, 대학, 스포츠팀 등에서도 널리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육군의 맹호부대와 특전사 707특임대대, 공군 제38전투비행전대 111전투비행대대 등에서 호랑이가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며, 육군은 백두산호랑이를 그려 넣은 ‘호국이’를 공식 캐릭터로 사용 중이다. 대학교는 고려대학이 안암골 호랑이를 상징으로, 스포츠팀은 야구의 기아, 축구의 울산 현대가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쓴다. 또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1년 태극마크에서 호랑이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어흥!..나쁜 기운 물리치는 호랑이 그림 보세요"
연합뉴스ㅣ박상현 입력 2022. 01. 02. 07:35 댓글 1개

▲ '월하송림호족도'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산신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서 18점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호랑이 그림 15건 18점을 공개한다고 2일 밝혔다. 5월 1일까지 전시되는 호랑이 그림은 호랑이와 용을 함께 화폭에 담은 '용호도'(龍虎圖), 호랑이와 까치를 묘사한 '호작도'(虎鵲圖) 등 다양하다.

19세기 용호도를 보면 호랑이의 성난 얼굴에서 긴장감이 느껴지고,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용은 신비감을 전한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은 특히 민간에서 유행했는데, 전시에 나온 호작도 속 호랑이는 익살스럽고 친근하게 표현됐다. 솔숲 사이를 지나고 있는 호랑이 11마리를 그린 '월하송림호족도'(月下松林虎族圖), 붉은 옷을 입은 산신과 눈이 빨간 호랑이를 나란히 배치한 '산신도'(山神圖)도 감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호랑이는 예부터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존재로 여겨졌고, 새해가 되면 집마다 호랑이 그림을 문밖에 붙여 놓았다"며 "관람객들이 다양한 호랑이 모습을 감상하며 힘찬 기운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