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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해방가요 1호] "사대문을 열어라" (원제 '인민의 노래' 1945)

잠용(潛蓉) 2022. 1. 22. 19:03


"사대문을 열어라" (1945)
(원제는 '인민의 노래')
박영호 작사/ 김용환 작곡/ 노래 합창

< 1 >
四大門을 열어라 人更을 쳐라
半萬年 옛터에 먼동이 튼다
勞動者야 農民아 靑年 學徒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 2 >
쇠사슬을 끊어라 날개를 펴라
半世紀 눈물이 아랑곳이냐?
自由民아 同志여 海外 同胞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 3 >
太陽 위에 걸어라 우리의 理想
自由와 平等의 징을 울려라
鎔鑛爐야 괭이야 무쇠 마치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사대문을 열어라(1945) 합창


사대문을 열어라(1945) / 쟈니 브라더스 (KBS기요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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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명곡 순례 (6) 사대문을 열어라
(1945년 作)- 박용호 작사 / 김용환 작곡
Silverinewsㅣ허길우 2021.03.26 09:38댓글 0


▲ 사진출처 : 다음 블로그 / kbs관현악단 출신모임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는 2021년, 우리 전통 가요 및 옛 가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 고난의 시대를 거치며 국민의 위로가 되어준 가요를 추억하며 1980년대 이전의 가요명곡을 돌아보기로 한다. 원제는 "인민의 노래"로 해방가요 1호로 기록된 곡이다. 1945년 8월 22일 광복직후 김구와 이승만을 위한 환영준비 중 광복과 독립의 기쁨을 상징하는 노래를 만들자는 연예 관계자들의 합의 하에 탄생된 곡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을 하고 결혼을 해서 또 아이를 낳아 성장시키는 시간.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다. 물론 1905년 일사조약 이전에도 자유롭지 않았던 역사이긴 하지만 을사조약부터 광복까지의 시간만을 놓고보면 두 세대가 함께 하는 꽤 긴 시간인 것이다. 그 길고 긴 시간을 억압과 치욕 그리고 설움으로 점철되는 시간 앞에 광복이라는 문이 열렸을 때의 우리 민족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짐작을 하다보면 이 기쁨을 표현하고 나누는 수많은 문학 예술이 탄생된 것은 당연하다. 연예계 관계자들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광복을 맞아 함께 부르고 즐거워 할 노래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동질감이 탄생시킨 곡이 바로 "사대문을 열어라" 였다.

민족의 기쁨과 영광을 하나의 목소리로 함께 부를 수 있는 감동은 기억해 보면 '88 서울 올림픽에서 "손에 손잡고"와 2002년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념과 빈부, 남녀노소 모두 필요 없는, 한 민족이 하나의 같은 염원을 이뤄냈을 때 가능한 순간이다. 수십 년을 일제 치욕에서 버텨온 우리 민족의 염원은 분명 단 하나! 광복이었고, 그 염원을 이루어낸 그 순간에 모두가 함께 외치고 부를 수 있는 노래였던 "사대문을 열어라"는 가요가 대중에게 미치는 의미와 영향을 명료하게 알려준다. 여타 유행가처럼 뜨거운 사랑을 받은 곡은 아니지만 "해방가요 1호"라는 점에서 우리 가요사의 명곡이라 아니 꼽을 수 없다.
[silverinews 허길우  news1@silverinews.com]

"만주 이민사"를 다룬 [등잔불]을 희곡으로 썼던 작사가 박영호(朴英鎬)는 황폐한 조국산하를 두고 노래시로 위와같이 읊었다. 해방가요 제 1호이다. 그런데 원 제목은 [인민의 노래]이다. 광복후 이승만(李承萬)의 환국,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와 김구(金九)의 귀국 등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1945년 8월 22일 연예관계 인사들이 서울 종로2가의 기독교서적 빌딩 4층에 모여 이들을 맞이할 환영준비를 하자는 중론 속에 조국 광복과 독립의 기쁨을 상징하는 노래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이 노래는 당시 서울 종각 옆에 있던 한청빌딩 3층 간이녹음실에서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로 하여 남녀혼성 합창으로 불렀던 노래를 레코딩 원판(왁스판)에다 녹음을 했다. 그 뒤 방송국에서 이 원판 레코드를 매일 방송해 주었으나 며칠 뒤 노래보다 잡음이 심해진 원판 레코드는 더이상 방송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뒤 1983년 [TV로 본 한국가요사] 제2편(MBCTV 제작)에서 38년만에 방송합창단의 노래로 재방송되었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해방가요 제1호로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綠酒紅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