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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 <청구영언> 19금 노래가 보물이 됐네

잠용(潛蓉) 2022. 6. 14. 12:12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 <청구영언>의 19금 노래가 보물이 됐네
경향신문ㅣ 2022.03.08 05:00 수정 : 2022.03.26 11:19

 

▲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원본. 통문관 출판사와 통문관 주인인 이겸노의 도장이 찍혀있고, 그 밑에 김천택임을 밝혀주는 ‘남파거사’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서문에는 “얼굴이 흰 김천택이 시 300편을 줄줄 외었고, 거문고 연주자인 전만제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모두 치유됐다”고 극찬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는 노래로 당세에 이름이 났지만 속되지 않았다. 얼굴빛이 희고 수염은 창처럼 뾰족했다. 어릴 때부터 <시경> 300편을 줄줄 외었다.”(<해동가요>)
○○○는 과연 누구이기에 ‘꽃미남’이고, 시 300편을 줄줄 외울 정도로 ‘뇌섹남’이었으며, 수준 높은 노래를 불렀을까.

“남파 김백함은 노래로 나라 안에 이름이 났다. 성률(리듬)에 정통하고 문예도 닦아 새로운 노랫말을 지어 여항인(중인)들에게 익히게 했다. (보컬)김백함과 (거문고 연주자) 전만제가 찾아와 음악을 들려주니 내 가슴 속에 맺힌 마음의 병까지 모두 치유됐다. 그 음악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화기(和氣)를 일으킨다.”(<청구영언> ‘서문’)
남파 김백함은 또 누구인가. 이 언급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이자 ‘국민가수’이면서 ‘힐링뮤지션’이 아닌가?

 

▲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첫노래말.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새려면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 꽃미남, 뇌섹남, 싱어송라이터, 국민가수, 힐링뮤지션
여기서 과연 ‘○○○’과 ‘남파 김백함’,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셋 다 동일 인물이다.
그이는 자가 백함이오, 호가 남파인 ‘김천택’이다. 숙종 연간에 포도청 포교를 지냈고, 1680년 무렵에 태어났다고 추정할 뿐 생몰연대는 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김천택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1728년(영조 4) 개인 문집에 실려있거나 구전으로 전하던 가곡의 노랫말 580수를 주제별, 시대별로 모은 <청구영언>의 편찬자이기 때문이다. <청구영언>은 <해동가요>(김수장 편찬·영조 연간)와 가곡원류(박효관·안민영 편찬·1876년)와 함께 ‘3대 가집’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지 않았던가.
이 셋 중 가장 앞서 편찬된 한국 최초의 노랫말(가사) 자료집이다.

 

▲ 1948년 간행된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활자본.  편찬 당시(1728년) 직접 손으로 쓴 원본을 바탕으로 펴낸 활자본이었다. 원본은 통문관 출판사 소장(1954년) 이후 공개되지 않았다가 2013년 국립한글박물관이 구입함으로써 학계에 소개됐다.  /권순회 한국교원대 교수 제공

<청구영언>의 또다른 의미는 태종(1400~1418), 효종(1649~1659), 숙종(1674~1720) 등 임금과 사대부, 중인, 기녀, 무명씨의 작품은 물론 저속하고 음란한 노랫말까지 같은 반열에 놓고 서슴치않고 실었다는 데 있다.
신분 질서가 뿌리깊던 18세기초가 아닌가. 김천택이 노랫말 속에 은근슬쩍 평등을 숨겨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임금인 태종의 ‘하여가(이런들 어떠하리…)’와 정몽주(1337~1392)의 ‘단심가(이 몸이 죽고죽어…)’, 성삼문(1418~1456)의 ‘충의가(수양산 바라보며…)’, 이순신(1545~1598)의 ‘우국가(한산섬 달밝은 밤에…)’는 물론이고 황진이(생몰년 미상)의 ‘청산리 벽계수야’ 같은 기생의 시조도 빠짐없이 실었다.
김천택은 이를 두고 “세상에 전하는 노래는 모두 채록했다. 작자는 모르지만 작품이 뛰어나서 여러 사람들에 알려진 경우라면 그대로 기록했다”(<청구영언> ‘이삭대엽 발문’)고 밝혔다.

 

▲ 김천택은 임금과 사대부는 물론 중인계층, 기녀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시중에 떠도는 노랫말을 가리지 않고 모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 이산가족의 아픈 사연 속에 전설로 남았던 <청구영언> 원본
그런데 이 김천택이 펴낸 <청구영언>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 일종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무슨 소리인가? 사실 김천택의 <청구영언>이 가집의 전범이 되었다. 그 때문에 이후 다른 이들이 엮은 가집의 이름을 <청구영언>으로 짓는 일이 잦았다. 그 중 육당 최남선(1890~1957)이 소장한 <청구영언>이 진짜 <김천택 편 청구영언>으로 알려졌다. 책 이름도 <청구영언>인데다가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서문과 발문을 그대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당본>은 김천택보다 100년 이상 뒤인 19세기에 편찬된 이른바 ‘유사 청구영언’임이 밝혀졌다.
어떻게 밝혀졌을까? 때는 바야흐로 1948년이었다. 민간에 잠자고 있는 ‘희귀 진서(珍書)’를 출판한다는 목표아래 구성된 조선진서간행회가 첫번째로 펴낸 책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활자본이었다.

 

▲ <청구영언>에 실린 만횡청가 중 노골적인 노랫말들. 지금이라면 19금 딱지가 붙을 만한 하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시인(혹은 교사)인 오장환이라는 인물이 소장한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원본을 활자본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원본을 본 연구자들은 가곡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쓴 이 원본의 첫장에 ‘남파거사(南坡居士·김천택)’의 도장이 찍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김천택이 모은 노랫말을 본인이 직접 썼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쓴 원고본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오장환 소장본은 유일한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원본이다.
그러나 이때 펴낸 활자본은 50부 한정판이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사이 소장자인 오장환이 월북(1948년)한 뒤 <청구영언> 원고본의 존재는 잊혀지고 만다.
그러다 월북한 오장환의 장인이 1954년 책 한 권을 들고 통문관 출판사의 주인인 이겸노(1906~2006)를 찾아왔다.
“딸(오장환의 부인)이 사위(오장환)가 아낀 이 책(<청구영언>)을 매만지며 우는 것을 더는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 18세기 남녀 간의 연애, 기녀와 기방의 세계를 도시적 감각과 해학으로 그린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도. 당대의 풍류 가인들의 공연 모습과 양반 사대부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왼쪽부터 ‘상춘야흥’, ‘청금상련’, ‘쌍검대무’, ‘납량만흥’.


통문관은 이 책을 1만5000환에 구입했다. 그러나 통문관 소장품이 된 <청구영언> 원본은 이후 공개되지 않았다. 정병욱 서울대 교수(1922~1982)와 심재완 영남대 교수(1918~2011) 등이 통문관 구입 당시 감정을 했을 때 본 것이 고작이었다.

학계에서는 “<김천택편 청구영언>이 통문관에 있더라”는 정병욱·심재완 교수 등의 전언으로만 알고 있었다. ‘~카더라’ 혹은 ‘풍문으로 들었소’ 식이었다. 학계도 1948년에 간행된 활자본 <청구영언>을 돌려보며 공부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2013년 개관 준비중이던 국립한글박물관이 <청구영언>을 비롯한 통문관 소장 한글 자료들을 공개구입했다. 특히 첨단장비를 활용하여 원고본의 제1면 밑에 찍혀있던 희미한 인장 흔적에서 ‘남파거사(김천택의 호)’ 글자를 판독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이 <김천택편 청구영언>을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최초의 가집이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가곡(歌曲·전통악곡)’의 원천자료라는 가치를 평가한 것이다.

 

▲ <청구영언> ‘만횡청류’에는 노골적인 노랫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니네 부모가 널 태어나게 할 때에 나만 사랑하라 만드셨다’는 노랫말도 있다. 또 백마탄 왕자님을 새벽까지 ‘기다리기 힘들다 힘들다 하니(待人難 待人難)… 문밖에 나가 바라보고 바라본다(出門望 出門望)’고 절절하게 표현했다.

■ 청구영언에 왜 ‘19금’ 노래가 포함됐나?
<청구영언>은 ‘청구(靑丘·우리나라의 별칭)’와 ‘영언(永言·노래)’를 합친 제목이다. ‘영언’은 “시란 말에 뜻이 담긴 것이다. 가(歌)는 말을 길게 빼는 것(詩言志 歌永言)”이라는 <서경> ‘시’에서 따왔다.(한국민족문화백과) 한마디로 ‘우리나라 노래’를 모은 노래책이다. 김천택은 <청구영언> ‘발문’에서 편찬의 뜻을 밝혔다.

“무릇 (사대부가 즐기는) 문장(중국 글)과 시율(중국 시)은 책으로 편찬되어 오래도록 전해진다. 그러나 (일반 백성이 즐기는) 노래는 입으로만 불려지고 저절로 사그러든다. 이것이 어찌 분하고 아깝지 않은가?…”
김천택은 “따라서 고려 때부터 조선까지 이름난 분이거나 큰 선비거나, 혹은 여느 백성이나 아낙네들의 노래까지 하나하나 주워모아 틀린 것은 고치고, 깨끗이 적어 책 한 권(<청구영언>)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천택보다 약간 늦은 시대에 활약한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소년전홍’, ‘월야밀회’, ‘월하정인’, ‘정변야화’. 만횡청류에 등장하는 18~19세기의 풍속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뭐니뮈니해도 <청구영언>을 보는 재미는 116수에 달하는 ‘만횡청류’가 아닐까 싶다. ‘만횡청류(蔓橫淸流)’는 ‘만횡청 노래의 부류’라는 뜻을 지니는 말이다. ‘만횡(엇롱)’은 흥청거리는 농조를 뜻하고, ‘청’은 흥청거리는 만횡의 목으로 부르는 창법’을 지칭한다. ‘만횡청’은 ‘자유로운 내용의 가사를 치렁치렁 늘어지는 곡조로 부르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흥청거리는 곡조와 남녀 간의 걸림 없는 사랑 표현이 이런 노래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한국민족문화백과’) 조선 중기의 문인인 주세붕(1495~1554)는 “지금의 가악(歌樂)이라는 것은 흔히 음란한 풍속에서 나왔으니, 쌍화점이나 ‘청가(淸歌)’의 종류들은 모두 사람을 악하게 되도록 유도한다”면서 “그 음란하여 도리를 무너뜨림은 차마 듣지 못할 정도”(<해동잡록> ‘주세붕답황준량서’)라고 개탄했다.

 

▲ 요즘같으면 소름끼치는 성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노랫말도 있다. ‘각시네…’는 여인을 짝사랑하는 남자가 ‘차라리 그 여인의 깁 적삼 안섶이 되고 싶다’고 애를 태운다. 그래야 여인이 땀을 흘릴 때면 그 여인의 가슴과 닿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임 그리워…’는 ‘상사병은 백약이 무효이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씻은 듯이 낫는다’고 했다.

■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노골적인 노랫말
뭐가 어쨌기에 음란하고 퇴폐적인 난세의 음악이라는 것인가. 국립한글박물관이 펴낸 <청구영언-김천택편> ‘영인본·주해편’(2017)에서 평가해보자.
“반 여든(마흔살)에 처음으로 계집질하니, 여럿두렷 우벅주벅 죽을 뻔 살뻔 하다가…노도령의 마음 흥글항글 진실로 이 재미 알았다면 기어 다닐 때부터 했겠네.”

 

▲ 18~19세기에 도회지의 모습을 그린 태평성시도. 옷이나 건물은 중국식이지만 풍속은 조선식이다. 왼쪽에 공연 모습과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두 작품 모두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해서 성행위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하기 따라서 뿌리깊은 인습과 윤리의 벽을 깬 과감한 도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백화산 꼭대기에 낙락장송 휘어진 가지 위에, 부엉이 방귀 뀐 수상한 혹 길쭉넓죽 우툴두툴 뭉글뭉글하지 말고, 임의 ××이 그랬으면 진실로 그러기만 할 것이면….”

“석숭의 많은 재산과 두목지의 수려한 풍채라도 밤일을 할 때에 제 ××하찮으면 꿈만 꿀 것이니 그 무엇이 귀할쏘냐. 가난하고 풍채가 없을지라도 제 것이 묵직하여 내 것과 딱 맞기만 하면 그가 내 임인가 하노라.”
“백발에…화냥질 하는 ×이 젊은 서방 얻으려고 흰머리에 먹칠하고, 태산준령 허위허위 넘어가다가 때아닌 소나기에 흰 동정 검어지고 검던 머리 다 희었도다. 그르도다 늙은이 소망이라 될락말락 하도다.”

 

▲ <청구영언> ‘만횡청류’ 속에는 해학 넘치는 노랫말들이 꽤 있다. ‘일러주랴 일러주랴…’는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바람피운 것을 남편에게 이른다’고 협박하면서 외도현장을 생중계하듯 묘사하고 있다. ‘나는 임생각 하기를…’은 ‘나는 임을 보내처럼 여기는데, 상대는 나를 머리깎은 승려가 갖고 있는 성긴 얼레빗처럼 하찮게 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 “너 태어날 때 나만 사랑하라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노랫말도 있지만 절제미 가득한 사랑노래도 적지않다.
“눈썹은 수나비 앉는 듯, 잇바디는 박씨 까 세운 듯 날 보고, 방긋 웃는 모양은 삼색 복사꽃 미처 피지 못한 것이 하룻밤 빗기운에 반만 절로 핀 모습이로다. 네 부모 너 태어나게 할 때에 나만 사랑하라 만드셨도다.”

이 노래 마지막 구절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사랑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감정임을 알 수 있다. 밤새도록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노래도 있다.
“기다리기 힘들다 힘들다 하니 닭 세번 울고 어느덧 새벽이라…문밖에 나가 바라보고 바라보니…이윽고 개짓는 소리에 백마탄 임이 넌즈시 돌아드니…반가운 마음이 만족스러워 오늘밤 두 사람의 즐거움이야 끝이 없겠지?”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사람 기다리기가 참 어렵고(待人難)’ ‘문밖에 나가 바라본다(出門望)’는 말을 반복했을까?
짝사랑과 상사병의 괴로움을 표현한 노래도 있다.
“임 그리워 깊이 든 병 어이하면 고쳐낼까. 의원 청하여 약 지으며 소경에게 푸닥거리 시키며 무당 불러 당줄긁기 한들 이 모진 병이 낫겠느냐. 진실로 임과 함께 있으면 즉시 나을 듯 하구나.”

 

▲ ‘만횡청류’ 중에는 리듬감 넘치는 노래가 더러 있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새려면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라든가 ‘오늘도 저물었네. 저물면 새리로다. 새면 임 가리로다. 가면 못보려니, 못보면 그리려니, 그리면 병들려니, 병 들면 못살리로다. 병들어 못살 줄 알면, 자고 간들 어떠리‘라는 노랫말은 절묘하다.

상사병은 불치병이지만 그 사랑이 와준다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라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짝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또 한 곡이 있다.
“각시네 옥 같은 가슴을 어떻게 좀 대어볼 수 없을까. 토면주(비단의 종류) 자줏빛 저고리 속에 깁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어보고 싶어라. 이따끔 땀나서 붙어 다닐 때 떨어질 줄을 모르더라.”

노래를 부른 이는 남성이다. 여인을 짝사랑하는 남성은 ‘차라리 그 여인의 깁 적삼 안섶이 되고 싶다’고 애를 태운다. 그래야 여인이 땀을 흘릴 때면 그 여인의 가슴과 닿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소름끼치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만약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나는 임 생각하길 엄동설한에 ‘맹상군의 호백구’(보배라는 뜻) 같이 하는데…. 임은 나를…이빨 빠진 늙은 중놈이 살 성긴 얼레빗 보듯 하는구나.”
남자는 짝사랑하는 여인을 보배처럼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여인은 남자를 ‘머리 깎은 승려의 성긴 얼레빗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유부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당신 남편한테 모든 사실을 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노래도 있다.
“일러주랴. 일러주랴. 내 아니 이르랴. 네 남편한테…. 거짓으로 물긷는 체 하고…건넌집 작은 김서방 불러내…삼밭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 하는지, 잔삼은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우줄우줄 하더라 하고 내 꼭 이를거야. 네 남편한테….”
협박도 협박이지만 두 불륜 남녀의 행각을 마치 생중계하듯 묘사하고 있다.

 

▲ 김천택은 <청구영언> 발문에서 “시중에서 유행하는 노래는 절로 사라진다”면서 “고려 때부터 조선까지 이름난 분이거나 큰 선비거나, 혹은 여느 백성이나 아낙네들의 노래까지 하나하나 모아서 책 한 권(<청구영언>)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공자도 음란한 노래를 버리지 않았다”
새삼 의문이 생긴다. 김천택은 왜 이렇게 19금 노래를 사대부는 물론 임금의 노랫말까지 들어있는 가집에 포함시켰을까. 김천택은 그 이유를 <청구영언> 서문에 밝혀놓았다.
“만횡청류는 노랫말이 음탕하고 뜻과 자취가 보잘 것 없어 본보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어 한꺼번에 폐기할 수 없는 까닭에 특별히 아래쪽에 적어둔다.”

아무리 퇴폐적인 노래라 해도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고 사랑받는 ‘대중가요’인만큼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김천택도 이 만횡청류를 가집에 포함시키면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왕실 후손(선조 맏아들인 임해군의 후손)인 이정섭(1688~1744)에게 ‘만횡청류’ 116수를 보여주고 발문을 부탁했다. 이정섭의 발문에 자초지종이 나와있다.
“김천택이 하루는 막 편집한 <청구영언>을 보여주면서 ‘책에 민간의 음란한 이야기와 상스러운 가사도 있습니다…군자가 이를 보고 병이라 여기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요.’라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정섭은 “공자도 <시경>을 편찬하면서 춘추시대에서 음란하기로 악명높은 노래인 ‘정풍(鄭風·정나라 노래)’과 ‘위풍(衛風·위나라 노래)’을 버리지 않았다”고 시쳇말로 ‘쉴드’를 쳐주었다. 이정섭은 “선(善)한 음악이 있다면 악(惡)한 음악도 있는 것이니까 음악을 감상함으로 선과 악을 구별짓는 것도 나름 가치있다”는 논리까지 재공했다. 이정섭은 창작의 자유와 감상의 자유를 설파한 것이다. 김천택은 종실인 이정섭의 “괜찮다”는 평가에 안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음란하고 퇴폐적이라는 ‘만횡청류’에도 필자가 즐겨 인용하는 가사가 있다. 시쳇말로 라임(Rhyme·가사에서 마지막 문장의 운율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기막힌 노래다.
“오늘도 저물었네. 저물면 새리로다. 새면 임 가리로다(갈 것이다). 가면 못보려니, 못보면 그리려니(그리워할 것이니), 그리면 병들려니, 병 들면 못살리로다. 병들어 못살 줄 알면, 자고 간들 어떠리.”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새려면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시쳇말로 라임(Rhyme·가사에서 마지막 문장의 운율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기막히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김천택을 최초의 가집인 <청구영언>을 편찬한 인물로만 평가되면 어떨까. 아마 김천택 본인이 섭섭해 할 것이다.

 

▲김천택은 음란하고 저속한 노랫말로 낙인찍힌 ‘만횡청류’를 <청구영언>에 포함시킬까 고민했다. 그는 종실인 이정섭(1688~1744)을 찾아가 감수를 요청했고, 이정섭은 “공자님도 <시경>을 편찬할 때 음란하기로 악명 높은 <정풍>(정나라 노래)과 위풍(위나라 노래)을 버리지 않았다”면서 “괜찮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고 격려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특히 김천택을 평가하는 단어로 ‘신성(新聲)’, ‘신번(新飜)’ ‘신곡(新曲)’ 등 모두 새로울 ‘신(新)’자가 들어간다.
김천택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개척했던 선구자였다는 뜻이다. 김천택이 지은 노래 중 72~79수가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실려 있다. 지금까지 전승되는 옛 노랫말은 5000수 정도된다. 그중 <청구영언>에 실린 것이 580수니까 10%(11.6%)가 넘는다. 포교(포도총 포도부장)로서 저잣거리 치안을 담당하면서 당대 시중에서 널리 불리던 노랫말을 홀로 모은 것이다. 수집 작업이 10년 걸렸다니 얼마나 엄청난 역작인가. 김천택 덕분에 옛 선현들의 풍류가 더욱 다채롭고 풍부해졌다.

(이 기사를 위해 권순회 한국교원대 교수와 국립한글박물관 고은숙·서주연 학예사, 박재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사 등이 자료와 도움말을 제공했습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참고자료> --------------------------------------------------------------------------------------
□ 국립한글박물관, <청구영언-김천택편>(영인본·주해편), 2017
□ 조규익, <만횡청류의 미학>, 박이정, 2009
□ 권순회, ‘김천택 편 청구영언의 문헌특성’, <청구영언>(주해편), 국립한글박물관, 2017
□ 이상원, ‘김천택 편 청구영언과 후대 가집의 관계’, <청구영언>(주해편), 국립한글박물관, 2017
□ 신경숙, ‘근대학문 100년 속에서 김천택 편 청구영언이 걸어온 길’, <청구영언>(주해편), 2017
□ 김석회·권순회·박진호·이상호·신윤경·조혜숙·강경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김천택편 청구영언의 종합적 고찰>(학술대회 자료집), 국립한글박물관·한국시가협회, 2017
□ 김복영, ‘만횡청류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2001
□ 강혜정, ‘만횡청류의 형성 기반과 여항가요와의 친연성에 대한 고찰’, <어문논집> 62, 민족어문학회, 2010
□ 신윤경, ‘김천택 편 <청구영언>의 만횡청류에 담긴 삶의 장면과 의미’, <한국시가연구> 43권, 한국시가학회, 2017

 

(배경음악/ 산절로 수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