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는 죽음] ② '살리는 것'인가, '못 죽게 하는 것'인가?
연합뉴스ㅣ임기창 입력 2022. 08. 14. 06:50 댓글 0개
말기환자 등에 의료수단 계속 동원..생존만 연장하는 '나쁜 죽음'
"'의학적 최선'은 산 사람 죄책감 때문..죽는 이에 대한 존중 없어"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김덕훈 인턴기자 = "평소 다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어떠한 계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적이 있다. 생각의 흐름을 거쳐 도달한 결론 중 하나는 '인간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 중 인간만이 자연법칙을 거스르며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길 거부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맞이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고, 인간도 동물의 한 종으로서 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 혹은 인간들은 자기 죽음을 지금보다 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법칙에 의한 개체 수 조절이 가능하다. 유독 인간만이 이를 거부한다. 질병에 걸리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질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인간도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서 죽음과 탄생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죽음이 슬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앞서 말한 연유들로 나 자신은 죽음에 좀 더 의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 죽고자 함은 없으나 죽음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체의 연명치료 같은 것 없이 여유롭게 대처하고 싶다."
<#. 회사원 김용대(가명·41)씨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내온 글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 연명의료에 대한 입장 등 일부 내용을 반영해 달라고 미리 요청했습니다.>
▲ 신생아 중환자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TV 제공
◇ '의학적 최선'이 간과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출생 당시 체중이 1㎏ 수준이었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길지 않았던 아이의 생은 온갖 수술의 연속이었다. 머리, 눈 등 신체 여러 부위에서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아이는 수술대에 올랐다. 아프다는 의사 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이는 병상에서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부모는 인공호흡기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는 아이의 병원비를 계속 댈 여력이 없었다. 추가로 시도해볼 만한 의료적 수단도 딱히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병원 측은 호흡기를 떼기로 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병원은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수술을 비롯한 각종 의료조치를 부모에게 권하고, 전문가인 의사의 설명을 들은 부모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조치에 동의한다. 이런 상황이 아이에게 오랫동안 반복된 셈이다. 한 의료인은 이 사례를 두고 "환자가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지 수많은 수술을 거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라며 "의사는 환자 보호자에게 희망을 줘서는 안 될 때는 주지 말아야 하고, 인공호흡기 제거 결정을 하려 했다면 훨씬 일찍 해야 했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노인 1만97명을 설문한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애 말 '좋은 죽음'의 조건(복수응답)으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 90.6%, 신체·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이 90.5%를 차지했다.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89.0%), '가족과 함께 맞는 임종'(86.9%)도 비율이 높았다.
[정한솔 제작]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하는 노인은 아니었지만, 조사 결과에 비춰보면 앞선 사례 속 미숙아의 죽음을 '좋은 죽음' 또는 '자연스러운 죽음'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신체 활동이 멈추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의학이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죽음을 '의학적 실패'로 보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좋은 죽음은 쉽지 않다.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편히 죽고 싶어도 강제로 병원으로 옮겨지고, 죽을 때도 산 사람들을 위해 죽음의 선언이 미뤄지는 것"이라며 "'의학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건 산 사람들의 죄책감에 관한 문제인데, 결국 여기에는 죽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없다"고 말했다.
◇ "중환자실서 연명의료 받다 임종, '최악의 죽음'"
전통사회에서는 집에서 가족에게 둘러싸여 맞는 죽음을 바람직한 죽음으로 봤다. 집 밖에서 죽는 '객사'(客死)는 나쁜 죽음의 한 유형으로 여겼다. 오늘날에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워낙 높아 오히려 객사가 일반적인 죽음의 유형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병원 내 사망 중에서도 중환자실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다 맞이하는 죽음은 가장 나쁜 축에 속한다는 게 여러 의료인의 견해다.
중환자실의 본질적 기능은 '소생 가능성이 있는' 급성 중증환자를 집중 치료하는 것이다. 대한간호학회가 펴낸 『간호학대사전』은 중환자실을 이렇게 정의한다. "외과계, 내과계 환자를 불문하고 중증환자를 한곳에 모아 중점적으로 치료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국소적 치료보다도 오히려 전신관리가 주체가 되는 환자가 대상이고, 급성 증상에서 강력하고도 집중적인 치료에 의해 회복의 가망이 있는 환자를 수용하는 곳이며 만성질환으로 증상이 진전되어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들여보내는 곳은 아니다."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생존 확률이 높지 않은 노인이나 말기 환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져 각종 의료기구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생명만 유지하다 사망하는 일이 많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중환자실 입원환자 건강보험 진료 통계를 보면, 2020년 중환자실 입원환자 중 65세 이상이 56.7%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65세 이상 입원자의 40.6%는 80대 이상이었다.
중환자실 입원 경험자들은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도 우울증 등을 동반한 '중환자실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만큼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공간이라는 뜻이다. 중환자실을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는 인공호흡기는 사실 환자를 매우 괴롭게 하는 연명의료 장치다. 호스가 목구멍을 타고 기도까지 삽입된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데다, 기계가 숨을 불어넣고 빨아들이는 일방적 패턴에 환자가 맞추지 못하면 심한 기침으로 기관지에 상처가 나는 등 속칭 '뒤집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인공호흡기 착용 환자에게는 진정제를 투여해 자발호흡을 억제한다.
그러나 병실에서 24시간 울리는 기계음, 늘 켜져 있는 조명 등 외부 자극이 많아 숙면하지 못하고 악몽을 꾼다. 호흡기를 달아도 때때로 호흡곤란이 오고,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환청을 듣거나 헛것을 보는 '섬망'을 겪기도 한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 결국 상태가 호전되는 환자들도 있겠지만, 애초에 말기 질환 등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까지 이같은 환경에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명예교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인공호흡기 등에 매달려 매우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고, 외부와 격리된 채 의식도 없는 상태로 죽게 되면 가족과 차분히 대화하면서 죽음을 맞는 과정도 없다"며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받으면서 임종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 심폐소생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숨만 붙여놓는' 의료조치…"환자 본인이 너무 힘들 듯"
심정지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CPR)도 연명의료가 되면 오히려 품위 있는 죽음을 가로막기도 한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심정지를 일으키더라도 사전에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의료진은 CPR을 하게 된다. 흉부에 강한 힘과 체중이 계속 실리면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손상될 수도 있다. 맥이 돌아온다 해도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고, 그대로 사망한다면 마지막 모습은 처참해진다.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저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신체 기능이 소진된 환자를 상대로 한 심폐소생술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큰 장애 없이 삶을 이어갈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요행히 일시적으로 심폐기능이 돌아오더라도 환자는 바로 연명치료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경우 환자는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중환자실에서의 삶을 기약도 없이 이어나가야 한다."
▲ 요양병원(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TV 제공
오늘날 자녀들이 생업 등 이유로 간병을 책임지기 어려울 때 부모를 입원시키는 요양병원도 자칫하면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이뤄지기 쉬운 공간이다. 알츠하이머 등 회복 가능성이 없는 질병을 앓거나 말기질환 등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기본적인 의료조치만 받으며 머무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의견이 맞아 연명의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 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폐소생술이나 수혈 등 조치로 생명만 유지하기도 한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환자는 대개 상급병원으로 옮겨지고,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또다른 연명의료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음식물을 식도가 아닌 기도로 넘길 우려가 있거나 소화 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은 '콧줄'로 불리는 튜브를 위까지 삽입해 유동식으로 식사를 한다. 의식조차 없이 누워만 있는 환자도 이런 식으로 영양을 투여받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기력이 남은 이들은 답답하다며 튜브를 뽑아대다 침상에 결박되기 일쑤다. 요양병원에서 6년째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최모(67)씨는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못 시킬 수준이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이지만 병원에서는 '할일은 해야 한다'며 콧줄을 끼우고 연명의료도 한다"며 "'저렇게까지 해서 숨을 붙여놓으면 본인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고 했다.
박중철 교수는 "요양병원도 의료기관이고 의사가 있으니 그곳에서 임종하게 해도 되는데 먹지 못한다면 일단 콧줄을 넣고, 상태가 악화하거나 악화 징후가 보이면 일단 상급병원으로 보내고 본다"며 "'어떻게든 생존시키는' 쪽으로만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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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② '살리는 것'인가, '못 죽게 하는 것'인가?
③ 고통 없고 품위 있게… '파티하듯' 떠나기
④ '좋은 죽음' 위한 법과 제도… 우리 현실은?
⑤ 이제는 죽음을 양지에서 이야기할 때
(명상음악/ 홀로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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