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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는 죽음] ①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잠용(潛蓉) 2022. 8. 14. 07:23

[존중받는 죽음] ①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연합뉴스ㅣ임기창 기자 2022-08-13 06:50 공유 댓글5 

'웰다잉' 관심 커지지만… 10명 중 7명은 여전히 병원서 임종
죽음 대하는 인식과 문화 고민할 때… "바람직한 모델 정립해야"

 

편집자 주 = 지난 6월 의사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웰다잉'(well-dying)과 안락사·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가족의 품에서 품위 있게 임종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는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게 일반적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 당사자 본인이 아닌 가족, 또는 의료진의 판단과 결정에 좌우되는 일도 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거론되는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의 양상을 살펴보고, 좋은 죽음을 위해 어떤 인식 전환과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 짚어보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김덕훈 인턴기자 = "30대에 접어들자 죽음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더 이상 죽음은 추상적이거나 나와 거리가 먼일이 아니다. 지인의 부모상은 물론 지인 본인상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나이에 생때같은 자녀들을 남겨두고 심장마비나 뇌출혈, 교통사고 등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자식들 생각에 편히 눈이나 감았을까? 고인과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노라면 이런 죽음이야말로 가장 피하고 싶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향후 10년간은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굳건히 먹어보기도 한다. 물론 아무리 다짐하고 결심해본들 죽음의 영역은 나의 선택지가 아니지만 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죽음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인간 누구에게나 죽음은 어떤 타이밍과 형태로든 찾아올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별다른 지병 없이 장수하다가 잠자듯 죽는 경우를 '호상'(好喪)이라고 부른다. 호상의 큰 범주 안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죽음은 '수면 상태에서 맞는 영면'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고, 고통도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열망일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를 실현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복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명의료는 거부하고 싶다. 연명의료를 근근이 유지하느라 등골이 휘어야 하는 가족들의 처절한 입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나 눈짓 같은 작은 표현도 어려울 정도로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최소한의 권리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처럼 미천한 인간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까지는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고통을 사라지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 회사원 추정윤(가명·37)씨가 '내가 생각하는 죽음'을 주제로 보내온 글입니다. 자유롭게 작성하되 죽음에 대한 평소 인식, 자신이 희망하는 죽음의 모습, 연명의료에 대한 입장 등 일부 내용을 반영해 달라고 미리 요청했습니다.>

 

[연합뉴스TV 제공]


◇ 75%가 의료기관서 죽음 맞아… "인간미 없는 임종"
'기력이 떨어져 활동력과 대사 작용이 약해진다. 식욕이 저하되고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기 힘들어지면서 소변량도 감소한다. 호흡이 어려워지고 혼수상태가 길어지며, 목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눈이 뒤로 젖혀진다. 종국에는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사라지며 몸이 차가워진다.' 사고사나 돌연사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닌, 말기 질환이나 노쇠로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대기업 회장이든 유명 정치인이든 이름 없는 평범한 시민이든 신체 에너지가 무한한 사람은 없다. 때가 되면 모든 대사 작용이 멈추고 세포가 죽으면서 생명이 끝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이런 수준의 죽음을 맞는다면 그나마 인간의 품위를 크게 잃지 않은 편이다.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많은 이들이 의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콧줄'로 불리는 유동식 투입 튜브를 위까지 삽입한 채 병상에 누워 있거나, 굵직한 관을 기도에 넣어 인공호흡하는 방식으로 생명만 유지하다 결국 사망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노년층 대상 콘텐츠가 다수 검색된다. 죽음의 과정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일선 의료인들도 죽음의 과정에 관한 고민을 던지는 책을 계속 내놓는다.

이 가운데 공통으로 강조하는 '나쁜 죽음'이 있다. 가족을 곁에 두지도 못한 채 병원에서 말 그대로 '숨만 붙여 놓는' 연명의료를 받다 감염 등에 따른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다. 반면 무의미한 연명의료 없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원하는 곳에서 맞는 죽음은 '좋은 죽음'으로 꼽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죽음의 대부분은 의료기관에서 이뤄진다. 통계청이 잠정 집계한 지난해 사망 장소별 사망자수 비중을 보면, 병·의원과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이 74.8%인 반면 주택은 16.5%였다. 1998년 주택 내 사망자 비율이 60.5%, 의료기관은 28.5%였던 것과 비교하면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의료기관 사망 비율은 76.8%로 전체 평균을 웃돈다.

[정한솔 제작]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저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한국인들은 집과 같이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맞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꼽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런 바람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며 "병원에서의 임종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기계적인 의학적 사건이자 한낱 의료적 업무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바람직한 죽음이 무엇인지, 규범적 인식 만들어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는 삶과의 영원한 단절이라는 의식적 측면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고통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암 등 특정한 질병 자체가 고통을 유발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고통이 발생한다.
이런 고통을 줄이고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하는 수단으로 거론되는 것이 안락사 또는 존엄사 등으로 불리는 의료조치다. 국내에서는 의사가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해 사망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처방해주는 방식이 불법이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허용되고 있다.

다만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오로지 생명 유지만을 위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국내에도 2018년 도입됐다. 환자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또는 환자는 의식불명이지만 가족이 동의하는 경우 가능하다.
지난 6월에는 말기 환자가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받아 생을 마감하는 행위(의사조력 자살)를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있지만, 좋은 죽음에 관한 법·제도적 논의의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중환자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좋은 죽음은 단순히 안락사나 연명의료 결정 등 고통을 경감하는 의료적 수단의 차원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인식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을 언급하는 일 자체를 꺼리고, 의료기술을 총동원해서라도 일단 생명을 연장하고 보자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며, 어떻게 삶을 정리하고 더 나은 죽음을 맞을지 미리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명예교수는 "우리가 어떤 것을 바람직한 죽음으로 봐야 하는지 등 모델 설정이 돼야 한다"며 "의료계는 모든 것을 의료기술로, 법이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제도로 모든 걸 접근하려 하지만 그보다는 바람직한 죽음에 관한 규범적 인식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