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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 1억년 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잠용(潛蓉) 2022. 9. 8. 14:16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 1억년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경향신문ㅣ2022.09.06 05:00 수정 : 2022.09.06 09:55

 

▲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 일단산업단지 조성공사 구역에서 발견된 발가락 지문을 새긴 초소형 육식공룡. 이 공룡의 발자국 크기는 평균 2.4㎝이고, 공룡의 몸길이는 닭보다도 작은 최대 28.4㎝(추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룡의 발자국 4개에 모두 피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공룡의 발바닥 피부 자국은 사람의 손가락·발가락 지문에 해당된다. 마치 ‘엠보싱’처럼 둥근 돌기들의 직경은 0.5mm 미만으로 매우 촘촘하다.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제공

후기 백악기(6800만~6600만년 전)에 살았던 ‘트리케라톱스’라는 초식 공룡이 있다. 뿔 3개 달린 독특한 외모 덕분에 ‘쥬라기(쥐라기) 공원’을 비롯한 각종 영화나 게임, 다큐멘터리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먹잇감(혹은 라이벌)로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이 트리케라톱스의 조상격인 공룡화석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 경북 의성 만천리에서 발견된 1억년전 초식 아기공룡 두 마리의 걸음걸이 모습. 이 아기공룡 2마리는 처음엔 두 발로만 나란히 걸어가다가 속도를 줄이면서 네 발로 걸어간 흔적이 나타났다. 이중 한마리는 네 발로 바꾸기 전에 차렷자세로 잠시 정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연구성과는 지난 8월 국제학술지인 <히스토리컬 바이올로지>에 실렸다.|김경수·이정현·정성혁·임종덕·하연철·조권래·마틴 로클리의 ‘한국의 의성지질공원 사곡층에서 산출된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들: 역사적·고생물학적 견해’ 논문에서 정리


■ 천연기념물이 될 ‘쥐라기 공원’ 공룡의 먼 조상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뿔공룡 골격화석)’이다. 2008년 경기 화성 전곡항 방조제 주변 청소작업을 벌이던 화성시청 공무원이 발견했다는 공룡화석이다. 엉덩이와 꼬리, 양쪽 아래 다리와 발 등 하반신 뼈가 제자리에 있는 형태로 발견됐다. 이 화석에 ‘화성’ 명칭이 붙은 이유가 있다. 한반도에서 처음 확인된 전기 백악기(1억2000만년전)의 ‘뿔달린(각룡류) 공룡 화석’이기 때문이다. 이융남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이 공룡의 전체 몸길이는 2.3m 정도이고, 이족보행을 했으며, 대략 8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머리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그러나 남아있는 신경배돌기(꼬리뼈 위에 튀어난 부분)는 트리케라톱스와 같은 뿔달린 공룡의 특징을 나타낸다”면서 “또 독특한 발목뼈는 기존의 뿔달린 공룡과는 다른 ‘신종’이라는 것을 짐작케한다”고 짚어주었다. 이 교수의 논문은 2011년 1월 독일의 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젠샤프텐>(자연과학)에 실렸다.

각종 영화·게임·다큐에 등장하는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는 쥐라기(1억8000만~1억4500만년전)가 아니라 백악기(1억4500만년~6600만년전) 중에서도 후기 번성한 공룡들이다. ‘코리아 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1억2000만년전 지층(화성)에서 확인됐다. 따라서 화성에서 발견된 ‘뿔달린 공룡’은 그 유명한 트리케라톱스의 5400만~5200만년 조상격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 이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예고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뿔공룡 뼈화석)’. 백악기 전기인 1억2000만년전에 살았던 뿔공룡이다. /이융남 서울대 교수 제공

■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의 출현
이 ‘화성’ 보다 몇개월 먼저(2010년 10월) 한국 지명(보성)을 명칭으로 갖게 된 공룡 뼈화석도 있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앞바다에서 확인된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이다. 2004년 전남대팀이 뼈의 파편이 드러난 화석을 발견했다. 허민 전남대 교수(한국공룡연구센터장)는 “이 공룡 뼈화석은 목뼈~어깨뼈~윗팔뼈 일부~갈비뼈~척추~꼬리뼈 일부~뒷다리뼈 전체가 남아있다”면서 “전체 보존율은 50% 이상”이라고 전했다. 다만 ‘화성 엔시스’처럼 머리뼈는 보이지 않았다.
사체가 썩어 유골이 되어 머리만 떨어져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두개골은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경우가 많아 화석이 남기 더더군다나 어렵디. 화성이나 보성 뼈화석에 머리 부분이 없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보성엔시스’에는 약해서 부서지기 쉬운 갈비뼈를 비롯해 머리뼈를 제외한 나머지 뼈들이 온전히 붙어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앞발이 길고, 어깨뼈와 윗팔뼈가 발달한 점으로 미뤄 보아 땅을 파는 동작에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공룡은 국제학계의 공인을 받은 ‘한반도 국적의 토종 공룡’이라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이외에도 부산 부경대 연구팀이 1998년 경남 하동군 금성면에서 발굴한 뼈 화석 일부(9점)가 있다. 이 뼈화석에는 ‘부경고사우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 뿔 3개 달린 독특한 외모 덕분에 ‘쥐라기 공원’을 비롯한 각종 영화나 게임,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트리케라톱스’. 백악기 후기(6800만~6600만년전) 번성했던 초식공룡이다.  1억2000만년전 지층(화성)에서 확인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먼 후손 격이다. /출처: 국립중앙과학관·공룡사전

■ 1억년 전 한반도는 호숫가였다
이 지점에서 그냥 넘겨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확인된 공룡의 수는 1000여종에 이른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확인된 공룡뼈 화석이 단 3곳 뿐이라니…. 하지만 공룡이 남긴 흔적이 어디 뼈 하나만인가?
그렇지 않다. 공룡의 발자국과 알 등 다양한 형태의 화석이 존재한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장은 “경북~경남~전남~전북~충청 등에서 최소 2만개(족) 이상의 공룡발자국 화석들이 속속 확인됐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왜 ‘백악기 공원’이라는 공룡천국이 되었을까. 중생대 백악기의 한반도 지층을 연구해보면 알 수 있다.
즉 한반도(특히 남부)는 백악기에 강과 거대한 호수가 발달했던 곳이었다. 그때 물을 마시러 모여든 공룡의 무리가 호숫가를 거닐면서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 2004년 전남 전남 보성군 득량면 앞바다에서 확인된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 2004년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가 뼈의 파편이 드러난 화석을 발견했다. 이 공룡 뼈화석은 목뼈~어깨뼈~윗팔뼈 일부~갈비뼈~척추~꼬리뼈 일부~뒷다리뼈 전체가 남아있다. 6년여의 복원 끝에 한국 토종 공룡으로 인정받았다.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제공

그렇게 발자국이 찍힌 땅이 공기에 노출되고, 세월이 흘러 그 위에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서 단단한 바위가 되었을 것이다. 그후 화산 등 다양한 지각활동에 의해 지층이 솟아오르고, 다시 바람과 물 등의 침식(깎이는) 작용에 따라 땅속 깊숙히 갇혀있던 공룡 화석 등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깎이는 해안 지형에서 공룡알과 공룡발자국이 쉽게 노출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룡이 호숫가를 거닐며 고운 점토에 발자국을 찍었을 것이다. 또 공기가 잘 통하고 배수가 잘되는 호숫가 모래 쪽에 알 둥지를 조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왜 뼈화석은 많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대체로 한가지 이유에는 입을 모은다. 즉 ‘뼈화석이 아직 발견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룡 등 중생대 동물 화석이 주로 발견된 곳은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이 활발한 해안가였다. 그렇다면 지금 숲으로 뒤덮여있는 내륙 지방에서 뼈화석과 같은 공룡의 흔적이 얼마든지 확인될 수 있다. 못찾아서 그렇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 전남 신안 압해도와 보성 비봉리, 경기 화성 등에서 확인된 공룡알 둥지와 공룡알.  신안에서 발견된 공룡알 화석은 둥지의 지름만 2.3m, 높이가 약 60cm, 무게가 3t이나 된다. 게다가 둥지 안에 공룡 알이 19개가 들어있고 알 개체의 크기는 지름이 385~430㎜에 이른다. 전남 보성 해안가에서도 21여개의 알둥지와 195여개의 알이 확인됐다. 하나의 알둥지 안에 6~30개의 공룡알이 들어있었다. 가장 큰 둥지는 지름이 1.5m 정도 되었다.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이융남 서울대 교수 제공

 

■ 기자까지 거른 공룡알 출현 소식
국내의 공룡 화석의 발견과 연구는 이제 겨우 40~50년이 될 정도로 일천하다.
1972년 여름 양승영 경북대 교수가 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에서 희한한 모양의 화석을 발견한다. 돌에 늘어붙은(압착된) 알껍데기였다. 공룡알의 파편 덩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교수는 외국 자료를 검토해본 뒤에야 공룡알 화석임을 알게 되었다. 양교수는 4년 뒤인 1976년 2월 대한지질학회 학술발표장에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학술대회를 취재한 중앙지 기자 조차 오보를 염려한 탓인지 기사화 하지 않았다. ‘단독’, ‘특종’을 갈망하는 기자까지 ‘공룡의 한반도 출현’ 소식을 반신반의했던 것이다.(부산대 김항묵 교수가 서울대 대학원시절인 1972년 경북 의성군에서 공룡 뼈 화석을 발견한 사실을 지도교수에게 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시 10년이 지난 1982년 1월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을 답사중이던 양승영 교수팀이 노두(지층이 드러난 부분)에 무수히 찍힌 발자국의 흔적을 발견한다. 양교수는 발견 사실 및 연구를 담은 논문을 학계에 공식 발표했다.

 

▲ 1982년 1월 양승영 경북대 교수팀이 공룡발자국 화석을 처음으로 확인힌 경남 고성 하이면 덕명리 해안. 노출된 지층에서 무수히 찍힌 공룡 및 새 발자국의 흔적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모두 5000여개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장 제공

■ 가장 완벽한 공룡알의 둥지
한국의 공룡 화석 역사는 그렇게 40~50년에 불과할만큼 일천한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한반도=공룡천국’임을 증거해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속출했다.
공룡알은 어떨까? 1972년 경남 하동 금남면에서 껍데기의 흔적이 확인된 공룡알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9년 전남 신안 압해대교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공룡알 화석은 둥지의 지름만 2.3m, 높이가 약 60cm, 무게가 3t이나 된다. 게다가 둥지 안에 공룡 알이 19개가 들어있고 알 개체의 크기는 지름이 385~430㎜에 이른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안선에서는 뼈화석(코라이노사우루스 보성 엔시스)이 발견되기 전(1999년)부터 21여개의 알둥지와 195여개의 알이 확인된 바 있다. 하나의 알둥지 안에 6~30개의 공룡알이 들어있었다. 가장 큰 둥지는 지름이 1.5m 정도 되었다.
그렇다면 ‘코리아노사우루스’는 이곳 둥지에서 태어난 공룡이 아니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밖에도 경기 화성을 비롯해 전남과 경남 등 여러 퇴적층에서 공룡알 화석들이 잇달아 발견됐다.

 

▲ 2004년 경남 고성 마암면 두호리에서 확인된 공룡 발자국. 지금까지 발견된 4족 보행 공룡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신종으로 밝혀졌다. 앞발의 형태(초승달 형태)가 다른 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4족 보행 초식공룡(원형 또는 반달 모양)과 다르다. 이 화석에는 ‘캐리리이크늄 경수키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수키미’는 남해안 공룡 화석에 대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쳐온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임종덕 실장 제공

■ 2만개 이상 발견된 공룡 발자국
2만개 이상 발견되었다는 공룡 발자국 화석은 어떤가. 임종덕 실장은 “한반도만큼 단일면적당 공룡발자국 개수가 많고 다양하며, 보존상태가 좋은 지역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역시 백악기 호숫가라는 자연환경 덕분이라는 것이다.

가장 많은 발자국이 찍힌 곳은 1982년 양승영 교수가 발견한 경남 고성 덕명리 해안(5000여개)이라 할 수 있다.
전남 해남 우항리에서 확인된 공룡 화석 514개 중에는 지름이 1m가 넘는 대형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보였다.

1999년 온천지구 답사 중 공룡화석이 발견된 화순 서유리에서는 최장 52m나 걸었던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확인됐다.
전남 여수 화정면에서 속하는 5개 섬지역에서 확인된 3500여개의 발자국 화석 중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84m의 걸음거리(보행렬) 흔적이 보였다.

 

▲ 전남 화순 서유리에서 확인된 다양한 공룡발자국. 이 가운데는 최장 52m나 걸었던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 두 발로 걷다가 차렷자세 후 네 발로 걸어간 아기공룡
그중 필자가 흥미롭게 지켜본 공룡 화석이 둘 있다. 하나가 경북 의성 만천리에서 발견된 ‘아기공룡’ 두 마리이다.
1억년전 지층에서 확인된 아기공룡의 발자국 크기는 10㎝ 정도였다. 이 아기공룡 2마리는 처음엔 두 발로만 나란히 걸어가다가 속도를 줄이면서 네 발로 걸어간 흔적이 나타났다.

이중 한마리는 네 발로 바꾸기 전에 두 발로 모으고 차렷자세로 잠시 정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두 아기공룡의 이동속도는 초속 1.12m와 초속 0.68m였다. 시속으로 따지면 4.03km와 2.45km니까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 이 아기공룡과 함께 목 긴 초식공룡과 네발로 걷는 초식공룡 외에도 육식공룡의 흔적도 보였다. 초식과 육식공룡이 공존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연구성과는 지난 8월 국제학술지인 <히스토리컬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 공룡발자국이 514개나 확인된 전남 해남 우항리에서는 하늘의 지배자였던 익룡 발자국 화석도 443개나 나왔다. 이 가운데는 330~350㎜, 폭 105~110㎜에 달하는 익룡 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다. 이 익룡에는 ‘해남이크누스’라는 명칭이 붙었다. 물갈퀴새의 발자국은 물론 절지동물의 흔적 화석도 보였다. /임종덕 실장 제공

■ 1억1000만년전에 남긴 공룡의 지문
지문을 남긴 초소형 육식공룡의 화석도 눈길을 끈다. 이 화석은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 일단산업단지 조성공사 구역에서 발견됐다. 2019년에는 ‘초소형 육식공룡의 발바닥 피부흔적 화석’이라는 제목으로 네이처 자매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됨으로써 국제학계에 보고됐다.(공동연구자는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와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원 실장)
이 공룡의 발자국 길이는 평균 2.4㎝이고, 공룡의 몸길이는 닭보다도 작은 최대 28.4㎝(추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논문 제목에서 보듯 발견된 공룡의 발자국 4개에 모두 피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자그만치 1억1000만 년 전에 살았던 초소형 육식공룡의 발바닥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첫번째 화석이라는 점에서 국제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공룡의 발바닥 피부 자국은 사람의 손가락·발가락 지문에 해당된다.

 

▲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은 2009년 경북 군위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익룡의 흔적을 확인했다. 9000만년~1억1000만년 지층에서 발견한 익룡 발자국의 길이는 354㎜, 폭은 173㎜에 달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발자국 문양은 다각형 돌기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밀집되어있는 형태이다. 마치 ‘엠보싱’처럼 둥근 돌기들의 직경은 불과 0.5mm 미만으로 매우 촘촘하다. 이 공룡의 이동속도는 초속 2.27~2.57m 정도된다.
처음 이 화석이 확인됐을 때 ‘아기 공룡의 발자국 문양’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기공룡의 탄생기념 발도장’이라는 자못 흥미로운 스토리텔링도 있었다. 그러나 소형 육식 공룡 가운데는 발로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는 구애행동을 한다는 연구(김경수 교수·임종덕 실장·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 등의 공동국제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김경수 교수는 “초소형 공룡이라도 구애행위를 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었으므로 몸집이 작다고 아기공룡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따라서 발가락 지문을 남긴 초소형 공룡은 마이크로랩터(미크로랍토르·40~80㎝ 가량의 깃털달린 공룡)와 유사한 크기의 공룡일 수 있다”고 밝혔다. .

그렇다면 발가락 지문으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마치 ‘엠보싱’처럼 두들두들 난 둥근 돌기는 악어와 같은 마름모꼴 돌기와 패턴이 다르다. 오히려 새의 발바닥과 똑같은 문양이다. 김경수 교수가 언급한 마이크로랩터가 바로 깃털 달린 공룡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 화석은 한반도와 가까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발견됐다. 따라서 정촌에서 확인된 초소형 육식동물은 마이크로랩터와 함께 공룡과 새의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화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캥거루처럼 두 뒷발로만 뜀뛰기 하듯 이동하는 포유류. 경남 진주에서 발견되어 ‘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 4족 보행 초식공룡의 비밀
또 2004년 경남 고성 마암면 두호리에서 확인된 공룡 발자국은 지금까지 발견된 4족 보행 공룡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신종으로 밝혀졌다. 국내연구진(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장)의 연구결과는 2012년 5월 국제 학술지인 ‘이크노스’에 실렸다. 임종덕 실장은 “전 세계적으로 앞발과 뒷발의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되는 것은 1%도 안 된다”면서 “특히 앞발의 형태(초승달 형태)가 다른 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4족 보행 초식공룡(원형 또는 반달 모양)과 다르다”고 전했다.
이 화석에는 ‘캐리리이크늄 경수키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수키미’는 남해안 공룡 화석에 대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쳐온 김경수 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 울산에서 확인된 수생 파충류는 중생대(쥐라기 중기·약 1억7400만년)에 출현해서 신생대(마이오세 전기·1천6000만년)에 멸종한 ‘코리스토데라’인 것으로 밝혀졌다.  코리스토데라 화석으로는 세계에서는 두번째지만 완전한 형태를 갖춘 첫번째 발견이었다. 이렇게 확인된 코리스토데라의 이름을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로 명명됐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 하늘의 지배자 익룡의 출현
그렇다면 중생대 백악기에는 공룡만의 천국이었을까. 아니다. 공룡과 함께 공생 또는 경쟁하며 살았던 익룡(중생대에 하늘을 지배한 파충류), 악어, 개구리, 포유류, 도마뱀, 조류 등 다양한 종류의 척추동물 발자국들도 발견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공룡발자국이 처음 발견된 경남 고성 덕명리에서는 같은 시기(백악기)에 공존했던 새 발자국도 확인됐다. 공룡발자국이 514개나 확인된 전남 해남 우항리에서는 하늘의 지배자였던 익룡 발자국 화석도 443개나 나왔다.


우항리에서는 330~350㎜, 폭 105~110㎜에 달하는 익룡 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다. 이 익룡에는 ‘해남이크누스’라는 명칭이 붙었다. 물갈퀴새의 발자국은 물론 절지동물의 흔적 화석도 보였다. 또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은 2009년 경북 군위에서 ‘해남 이크누스’보다 큰 익룡의 흔적을 확인했다. 9000만년~1억1000만년 지층에서 발견한 익룡 발자국의 길이는 354㎜, 폭은 173㎜에 달했다. 익룡은 해남·군위는 물론 경남 진주·하동·사천·거제, 전북 군산 등에서 보고되었다. 2001년 경남 하동에서는 익룡의 뼈화석까지 출토되었다.

뼈화석(‘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과 공룡알 화석이 쏟아진 전남 보성에서는 몸길이 2m가 넘는 거대 도마뱀 화석이 확인됐다. 이밖에도 울산 반구대 인근에서 확인된 수생 파충류(‘노바페스 울산엔시스’), 캥거루처럼 두 뒷발로만 뜀뛰기 하듯 이동하는 포유류(‘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 등도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중생대 동물들의 발자국에 붙인 이름이다.

 

▲ 전기 백악기에 호숫가를 거니는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의 상상도. 울산에서 확인된 ‘노바페스 울산엔시스’가 바로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으로 추정된다.|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 1억년전 한반도는?
필자는 집 주변 ‘프리미엄 아울렛’에 마련된 각종 공룡 모형을 보고 열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함 반 의아함 반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애들은 왜 그렇게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면서 좋아할까? 

그런데 공룡 관련 공부를 하다보니 ‘좋아할 자격이 있는 대한민국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1억만 년 전 공룡천국, 즉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가 아닌가.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공룡 관련 화석산지와 개별 화석 17건(이번 지정예고된 화성 뼈화석 포함)에 이를 정도다. 그러고보면 아이들의 순수한 눈에는 땅에는 공룡, 하늘엔 익룡이 지배했던 1억만 년 전의 한반도 풍경이 보이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 기사는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장, 양승영 경북대 명예교수,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이융남 서울대 교수, 허민 전남대교수 등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명상음악/ 홀로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