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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휴먼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53회 "오늘, 맑고 향기롭게"

잠용(潛蓉) 2023. 4. 21. 22:47

KBS 휴먼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53회
오늘, 맑고 향기롭게 / 2023년 4월 21일 19:40 방송
KBS 관리자 2023.04.19 13:46:26조회수 2591

 

자연의 철학자들 53회, 자연주의 차 연구가 오동섭 출연

 


■ 방송일시 : 2023년 4월 21일 (금) 저녁 7시 40분, KBS1
■ 기획 / KBS
■ 프로듀서 / 신동만
■ 연출 / 박기흥 글.구성/ 최선희
■ 제작 / 황금나무

도시를 벗어나, 삶이 자연이고, 자연이 삶이 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가공되지 않은 순정한 영상과 그들만의 통찰이 담긴 언어로 기록한 
고품격 내추럴 휴먼 다큐멘터리, [자연의 철학자들].
53회 ‘오늘, 맑고 향기롭게’ 편에서는
보련산 자락에 억새집을 짓고 사는
자연주의 차(茶) 연구가 오동섭 씨의 철학을 들어본다.

■ 나의 자화상

“집은 내 자화상이에요.
내 모습 그 자체거든요.“

 

매월당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된 보련산 자락, 이 자연 속에 억새를 엮어 ‘매월당’이라는 집을 짓고 김시습의 차 정신을 실천하며 사는 한 남자가 있다. 오동섭(52) 씨. 그는 새벽마다 집 청소를 하며 하루를 연다. 마당의 티끌 하나, 마루의 먼지 한 톨까지 닦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까닭은 그에게 집은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초가집을 짓고 근심 걱정 없이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어릴 적 꿈과 그의 차 정신, 그리고 20여 년 동안 억새를 잇고 집을 둘러싼 정교한 돌담을 직접 쌓으며 그가 바친 땀이 모두 이 억새집에 응축돼 있다. 집만큼이나 그의 외양도 특이하다. 차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들어갈까 봐 머리를 질끈 묶어 상투를 틀었고, 쏟아지는 땀을 머리띠로 둘러막다 보니, 그 모습이 마치 조선 시대의 머슴 같다. 그가 얼마나 성실한 일꾼으로 살아왔는지를 반증해 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집의 주인은 따로 있는 듯하다. 억새 지붕 곳곳에 난 구멍들은 새들의 집이다. 자신이 좋자고 지은 집에 귀한 생명들까지 깃드니, 행복은 더욱 커진다. 

 

 

■ ‘선낫’ 하는 즐거움

“저는 앞으로도 ‘선낫’ 할 거예요. 많이 하고 싶지 않아요.
차도 조금 만들고, 밥도 조금 짓고, 일도 조금만 할 거예요.“

 

오동섭 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80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도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이 배고프다고 보챌 때 보리밥 해 먹인 시절을 당신의 봄날로 기억하고 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6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동섭 씨에게 남다르게 애틋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차 연구가로서, 기억을 잃어가는 노모를 둔 아들로서 봄나들이에 나선 동섭 씨. 예전에는 향기로운 봄꽃을 보면, 차 만들 욕심부터 앞섰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겨우 봄 한철 아름다운 꽃을 피운 뒤 사라지는 꽃이 눈물겨워 한 송이를 따기도 아깝다. 나물을 보면,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부터 떠올라 제 욕심을 앞세울 수 없다. 아들이 캐온 나물을 보며, ‘이렇게 선낫(조금) 해서 뭐할 거냐’ 놀리면서 활짝 웃는 어머니. 이맘때에만 누릴 수 있는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 

 


■ 차는 나의 벗, 모진 목숨 같아 우전은 꺾을 수 없어

“차(茶)를 만난다는 건 보고 싶었던 멋진 벗을 만난 느낌이에요.
만나기 전에는 만나고 싶고, 만나면 행복하고, 
헤어질 때도 그 친구의 향기와 느낌이 오랫동안 남아있어요.
그래서 혹독한 겨울을 뚫고 돋아난 우전은 
아무리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해도 꺾지 않아요.” 

 

시골에서 나고 자랄 때 그에게 자연은 ‘놀이터’이자 ‘자기만의 방’ 같은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산에서 제 몸보다 큰 나무 짐을 져 날라야 했지만 솔바람 소리만 들으면 피로가 가시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도시에서의 삶에 실패한 뒤, 도피하듯 찾아든 산은 다시 그를 조건 없이 품어 주었다. 산야초를 내주어 그가 먹고살게 해 주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야생차를 만나게 해주었다. 신비로운 향기를 품은 차에 홀리듯 빠져든 그는 차 연구가가 되어 이곳 보현산 자락에 정착했다. 4월, 야생 차나무에 새순, 즉 우전이 돋아난다. 우전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뚫고 돋아난 강한 생명력. 어떤 이들은 이 기운을 빌미로 우전을 따 차를 만든 뒤 비싼 값에 팔기도 하지만, 동섭 씨는 ‘모진 목숨’ 같아 차마 우전을 꺾을 수 없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해 온 자연이 그는 이제 고맙고 애틋하기만 하다. 

■ 이때를 맑고 향기롭게 사는 법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와요.
작은 꽃 하나에서 오고, 작은 열매 하나에서 와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에요.”

 

오동섭 씨는 20여 년 동안 차를 만들어왔다. 한때는 명차를 만들어 이름도 얻고 돈도 벌어보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그만의 날카로운 차 향기로 사람들을 감탄시켜보겠다는 의욕에도 넘쳤다. 하지만 쉰을 넘기고 보니, 차의 향기는 자신의 재주와 기술로 만드는 게 아니라 결국 자연이 준 향기였다. 또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향기는 그 무엇, 심지어 차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삶에도 때가 있어 이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봄날은 더욱 특별하다. 
 
자연 속에서 삶을 통찰한다! 
KBS 1TV 고품격 내추럴 휴먼 다큐멘터리! 
삶이 자연이고, 자연이 삶이 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梅月堂 茶詩] 煮茶1 (자다1: 차 끓이기)

松風輕拂 煮茶煙(송풍경불 자다연)
: 솔바람은 차달이는 연기 몰아 올리고
裊裊斜橫 落澗邊(뇨뇨사횡 낙간변)
: 하늘하늘 날아가 골짜기 냇가에 내린다
月上東窓 猶未睡(월상동창 유미수)
: 동창에는 달 떠올라도 아직 잠못 자고
挈甁歸去 汲寒泉(설병귀거 급한천)
: 물병 들고 돌아가 찬물을 긷는다

裊 간드러질 뇨
挈  들설
拂 떨칠 불
汲 물길을 급

 

(Roxanna Panufnik - Zen Love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