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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폭우피해] 44가구 중 귀농·귀촌 30가구… 산사태에 쓸려간 '예천 지경터' 마을

잠용(潛蓉) 2023. 7. 17. 09:12

[르포]  44가구 중 귀농·귀촌 30가구… 산사태에 쓸려간 '예천 지경터' 마을
뉴스1ㅣ2023. 7. 17. 05:00수정 2023. 7. 17. 08:26

아들 집 찾았다, 전기 확인하려 집 나왔다 참변 모면… 부부 생사 갈려
"1.5만평 과수원도, 인삼밭도 쓸려내려가… 어떻게 살지 막막"

 

▲ 16일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지경터 마을이 폐허로 변해 있다. 2023.7.16/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예천=뉴스1) 이기범 장성희 홍유진 기자 = 어귀부터 온통 흙더미다. 개울 옆 도로는 종이처럼 접혔다. 본래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엔 나무와 바위가 뒤엉켜 있다. 그 사이를 메운 생활 쓰레기가 삶의 흔적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산에서 쏟아지는 흙탕물은 반파된 집을 짓누르고, 도로가 뜯긴 자리엔 철골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마을로 오가는 길목엔 군용차와 소방차, 언론사 차량만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지난 15일 폭우와 산사태가 휩쓸고 간 경북 예천군 은풍면 지경터 마을의 모습이다. 모처럼 비친 햇살에 마을 참상은 더욱 도드라졌다. 지경터 마을은 귀농·귀촌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전체 44가구 중 30가구가 귀농·귀촌인으로 구성됐을 정도로 최근 10여 년간 살기 좋은 동네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인생 이모작'의 꿈은 산사태와 함께 쓸려 내려갔다.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서 4~5년 전 퇴직하고 귀농했다."

아들이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 참변을 피한 권모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에 남아있던 남편 홍모씨(66)는 집과 함께 떠내려갔다. 남편의 황망한 소식은 마을 사람들이 수소문한 덕분에 제주도 서귀포에 있던 권씨에게 가닿았다. 남편은 집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거리에서 발견됐다. 덤덤했던 권씨는 지인의 전화에 "이런 천재지변이 있냐"며 허망한 속내를 털어놨다. 빈소를 찾아온 조문객들의 발길엔 눈물을 훔쳤다.

▲ 16일 오후 경북 예천군 용문면 하천에서 119구조대가 불어난 물에 떠내려온 차량 잔해를 발견해 수색하고 있다. 2023.7.16 /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서울에서 지경터 마을로 내려온 김종수씨(35)는 아직 아버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거주하던 컨테이너 파편만 발견됐다. 김씨의 아버지는 2년 전 귀농했다. 김씨는 "15일 새벽 1시에서 2시쯤 일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 번호가 없어서 연락이 늦게 왔다"며 "어머니께서는 14일 오후 9시반쯤 마지막 통화를 하셨고, 아버지는 비가 오고 있지만 집에 남아 있겠다고 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차량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소지품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어제 오늘 계속 그러고 있다"고 초조한 마음을 나타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살다 5년 전 예천에 귀촌한 60대 부부는 생사가 갈렸다.남편 C씨는 지난 15일 오전 4시30쯤 컴퓨터가 켜지지 않아 전기를 확인하려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흙더미가 덮쳤고 함께 쓸려 내려오던 나뭇가지에 튕겨 나갔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역시 꼼짝없이 흙더미에 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내인 D씨(69)는 끝내 숨졌다. 예천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들의 유가족은 "완전 찰나에 아름드리나무가 굴러내려 오고 흙더미가 덮쳤다"며 "동네 사람들을 불러 같이 흙을 파내 처남댁을 끄집어내 아랫동네까지 둘러업고 119차에 태워 옮겼지만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고 말했다.

▲ 16일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지경터 마을에서 귀농 2년차 실종자 가족이 애타는 심정으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수색을 지켜보고 있다. 2023.7.16 /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울산에서 일하다 7년 전 예천에 내려온 또 다른 60대 부부는 순간의 선택으로 화를 면했다. 감천면 이장 이모씨(62)는 집중 호우가 쏟아진 15일 오전 3시쯤 인삼밭을 살피러 나섰다. 이씨의 아내인 전모씨(61)는 남편이 놓고 간 휴대전화를 챙겨주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이씨는 "집사람이 나오자마자 벼락이 치면서 쩍 소리가 났다"며 "집사람은 집에 얼른 들어가자고 했는데 느낌이 안 좋아서 손을 잡고 나서자마자 1분도 안 되는 찰나에 산더미가 막 무너져 바위며 집채만 한 돌이며 막 굴러 내려왔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집을 빠져나올 당시 신었던 장화를 그대로 신고 있었다. 이씨는 아내와 함께 목숨을 구해 다행이라면서도 집과 1만5000평에 달하는 논과 밭이 쓸려내려 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지경터 마을에서 만난 채용주씨(70)는 "(이런 산사태는) 70살 평생 처음"이라며 흙더미에 매몰된 사과밭과 사라진 길을 가리켰다.


[이기범 기자 장성희 기자 홍유진 기자 Ktiger@news1.kr]


[르포] 집채만한 흙더미가 우르르… 주택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국민일뵈ㅣ김재환,김재산 입력 2023. 7. 17. 04:03

산사태 초토화 예천 ‘망연자실’
연결 도로 유실로 장비 진입 난항
탐침봉으로 찌르며 일일이 수작업
주민들도 삽 들고 복구작업 도와

▲ 산사태가 휩쓸고 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이 16일 진흙과 부러진 나뭇가지, 돌덩이들로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우예 알았겠노 이래 될 줄을…우리 형님 자주 만나기라도 할걸.” 16일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서 매몰된 장모씨 부부의 사촌 동생 장씨는 한달음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백석리는 이번 기록적 폭우로 가장 피해가 큰 마을 중 하나다. 산사태로 마을 진입로가 유실되고, 도로와 가옥들이 흙더미에 완전히 파묻혔다. 이곳에서 14년째 동네 일꾼 역할을 해 온 장씨 부부도 집으로 쏟아지는 토사를 피하지 못하고 매몰됐다.

사촌 동생 장씨는 뻘밭으로 변한 길을 힘겹게 오르며 매몰된 장씨 부부 집으로 향했다. 매몰된 장씨의 친형과 아들도 함께 했다. 30여분간 산을 올랐지만, 이들이 마주한 건 거대한 흙더미였다. 장씨 내외가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었다. 친형 장씨는 한 주민에게 절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동생 집이) 여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엔 옷가지, 살림살이, 농기구 등이 물기 머금은 흙덩이와 한 데 뒤엉켜 있었다. 주민들은 “집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창문 너머로 보니 앞집이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나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쾅하고 큰 바위가 굴러가는 소리에 깨서 나와 보니 이미 산사태로 마을이 쑥대밭이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온전한 집이 하나도 없어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이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지 1시간여 뒤 장씨 아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씨 아들은 말을 잃었다. 수색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전날 소식을 접하고, 부모가 계신 곳을 찾으려 인근 병원을 전전했다고 한다. 모친이 발견된 장소는 원래 살던 집에서 20m가량 떨어진 지점이라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이날 오전부터 경북 지역에는 2000명 넘는 인원과 수백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백석리에도 80여명의 구조 대원이 탐침봉을 들고 진흙을 쑤셔가면서 위험한 지형인지, 혹시나 토사 아래 실종자가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그러나 내린 비로 현장이 뻘밭으로 변해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현장으로 가는 길이 대부분 유실돼 중장비의 이동도 어려웠다. . 경북도소방본부 구조팀장은 “다 토사로 뒤덮여 있어 발을 넣으면 푹푹 빠지고, 그 안에 실종자가 있을 수도 있어 일일이 탐침봉으로 찌르며 수작업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 백석리와 함께 피해가 컸던 감천면 벌방리 주민 유모(72)씨는 삽을 들고 집 앞 골목길에 쌓은 진흙을 퍼냈다. 유씨는 “피해지역이 많아 우리 마을에는 굴착기 2대만 복구에 투입된 거 같다”며 “칠십 평생 살면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고 산사태가 심하게 난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옆에선 포크레인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차를 들어내고 토사를 퍼 올렸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예정된 작업 시간이 끝나가자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통곡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사위가 캄캄해진 뒤로도 한참을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예천=김재환 김재산 기자 jae@kmib.co.kr]

“저녁부터 산이 우우우~ 울어… 새벽녘 10여채 순식간에 덮쳤다”
조선일보ㅣ예천/권광순기자 2023. 7. 17. 03:21 수정 2023. 7. 17. 08:23

(파묻힌 주택·뜯겨 나간 도로…폐허가 된 삶의 터전)


9명 사망·8명 실종… 예천 산사태

▲ 펄밭 같은 폐허 헤치며 실종자 수색 - 산사태로 주민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한 주택이 무너져 내린 토사에 파묻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됐다. 지난 15일 오후 실종자 수색대원들이 삽과 탐침봉을 들고 땅을 찔러보며 실종자를 찾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찾은 경북 예천군은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군 전체가 쑥대밭이 돼 있었다. 흙더미가 파도처럼 쓸려 내려와 주택과 도로를 뒤덮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었다. 예천군에서는 이날 오후 9시까지 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오전 10시쯤 실종자 수색이 한창이던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흰돌마을. 13가구 3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만 산사태로 주민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위쪽 주택 5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래쪽 집들은 흙더미에 뒤덮여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전봇대는 넘어져 전깃줄이 바닥에 닿아 있고, 도로 아스팔트도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119 소방대원과 경찰은 곳곳에 흩어져 탐침봉으로 땅을 찌르며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삽과 장비를 동원해 물길을 내고 쓰레기를 치우는 등 복구 작업을 벌였다. 수색견 10마리와 드론 5대도 동원됐다. 수색견과 함께 흙더미를 수색하던 한 소방관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그는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하면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흙더미 속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안 좋다”고 했다.

주민들은 “산사태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경로당에서 만난 옆 마을 주민 박진녀(71)씨는 “전날 새벽 ‘산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흰돌마을에 사는 언니가 걱정돼 달려 왔는데 다행히 (언니는) 진흙 속에서 구조됐다”며 “순식간에 허벅지 높이까지 흙이 밀려와 대피했고, 대피할 때도 정강이 높이가 넘는 물줄기가 세차게 내려와서 사람들끼리 서로 붙잡고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저께(14일) 밤부터 산사태가 날 때까지 ‘우우우’ 하고 마치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며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겪는다. 대피하라는 문자가 와도 설마했다”고 했다.

▲ 맨손으로라도… - 16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에서 한 주민이 맨손으로 토사를 퍼내고 있다. /연합뉴스

흰돌마을 주민 A씨는 15일 새벽 산사태 직전 아랫집에 안부를 물으러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 그는 이튿날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A씨의 아내도 이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던 중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 매몰돼 목숨을 잃었다.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임영식(69)씨는 “큰 나무들이 함께 떠밀려오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주민 신종분(62)씨는 애지중지 키우던 소 여섯 마리를 한순간에 잃었다. 신씨는 “비가 그치고 남편이 축사에 올라가 봤더니 소들이 코에 피를 쏟으면서 죽어 있었다고 했다”며 “그 아이(소)들은 매일 여물을 주고, 축사 정리도 하면서 사랑으로 키워 자식과도 같았는데...”라며 울먹였다. 주민 김정숙(72)씨는 “평소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주고, 집에 와서 연통 배관도 갈아주고 하던 이웃들이었는데 실종돼 생사를 모르니 답답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사고 직후 구조된 이모(66)씨는 “흙더미가 문을 틀어막아 꼼짝도 못하고 고립돼 있었다. 밖에선 굉음만 들리고 어떤 상황인지 알 수도 없어 정말 무서웠다”며 “마침 구조대가 창문 쪽으로 출구를 만들어 겨우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폭우로 예천군과 영주·문경시, 봉화군 등 경북 북부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이날 오후 9시까지 경북도 집계를 보면, 인명 피해는 사망 19명, 실종 8명, 부상 17명 등 총 44명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중 16명은 산사태와 침수 등으로 토사에 매몰됐고, 나머지 3명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예천군이 9명으로 사망자가 가장 많았고, 영주시 4명, 봉화군 4명, 문경 2명 등이었다. 실종자 8명도 모두 예천군 주민인데, 3명은 매몰됐고 5명은 급류에 휩쓸려 사라졌다. 또 한때 1716가구 2623명이 대피했으며, 아직 998가구 1541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영주·문경·예천·봉화 등지에선 1만1000여 가구가 정전됐고, 이 지역 농지 1636.8ha(495만여 평)가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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