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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국정원 대선개입] '내란음모로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잠용(潛蓉) 2013. 9. 2. 12:45

'내란음모'로 국정원 부정선거 덮을 수는 없을 걸?
오마이뉴스 | 입력 2013.09.02 11:33

 

 [오마이뉴스 김동수 기자] '다이내믹 코리아'라 했던가? 대한민국은 정말 하루새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나라다. 지난 달 28일 아침까지만 해도,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리고 < 조중동 > 과 KBS·MBC가 나몰라라 했지만 국정원 부정선거와 촛불집회가 사람들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날 아침 터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았다는 사건이 터지자 국정원 부정선거와 촛불은 뒷방신세가 되었다. 특히 < 조중동 > 과 KBS·MBC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집중보도했다.

 

< 충격적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 (29일)
< 이석기 의원, 내란 혐의 공개 뒤 하루 동안 뭐 했나 > (30일)
< '이석기 집단'의 대한민국 향한 敵愾心과 북에 대한 충성심 > (31일)- < 조선일보 >


< 조선 > "이석기 의원"에서 "'이석기 집단'"

< 조선일보 > 31일자 사설에는 "이석기는 의원이라는 신분을 마음껏 이용했고 이제는 그 휘하 대원들에게 '전쟁 준비'를 지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이석기 집단은 단순한 정신병자의 집합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파괴하려는 공격 집단이다. 정치권은 그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했다. 사설은 첫 문장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라고 한 후, 끝까지 의원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석기 집단"이라고 불렀다.

 

< '이석기 내란음모' 신속·정확하게 진상 밝혀라 > (29일)
< '이석기 내란음모' 공안 수사의 전범 보여야 > (30일)
< 통진당의 근거를 밝힐 책무 > (31일)- < 중앙일보 >
< 통진당 이석기의 내란음모 혐의, 北 연계 여부 밝혀야 > (29일)
< '통진당 해산' 청구해 헌재 심판 받아볼 때 > (30일)- < 동아일보 >

 

< 동아 > 는 30일자 사설에서 "이번 기회에 법 절차에 따라 통진당의 해산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면서 "법무부는 면밀한 법리 검토를 거쳐 정당 해산 사유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주저 없이 헌재에 심판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법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은 직무유기다"고 말했다. 진보당 해산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동아 > "'통진당 해산' 청구 필요"... 헌정사에 정당 해산 한 차례도 없어

하지만 이는 현 상황에서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정당해산은 헌법재판소 권한이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 (정당해산심판의 청구)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9인 가운데 6인 이상 찬성이 있으면 정당 해산이 결정된다. 우리나라 헌정사에 정당해산 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아직 그 어떤 혐의도 확증된 것은 없다. 국정원발 녹취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을 뿐이다. 이것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정당해산 절차를 밟으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법부가 내란음모로 최종 판결을 내리면 그때 가서 해산하면 된다. 아니 해산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더 이상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 지난 달 28일 진보당 '내란예비음모' 혐의 사건이 터지자 KBS < 뉴스9 > 는 집중 보도했다. ⓒ 뉴스9
 
KBS < 뉴스9 > 는 지난 28일 진보당 사건이 터진 후, 하루에 4-7꼭지로 집중 보도했다.
28일- < 국정원 "내란 음모"…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 외 3개
29일- < 국정원 "내란 음모 5월 회합 녹음 파일 확보" > 외 5개
30일- < 녹취록 공개…이석기 의원 "전쟁 준비해야" > 외 6개
31일- < 내란음모 3명 구속…이석기 영장 발부 자신 > 외 4개
< 뉴스9 > 와 < 뉴스데스크 > 진보당 사건 이후 하루 4-5꼭지 보도

1일에도 < '내란음모' 관련자 줄소환…추가 구속 방침 > , < 10여 차례 감청 영장…전격 압수수색 지시 > , < 진보당 "국정원 협조자 매수"…국정원 "터무니 없어" > , < 내일 정기국회…체포동의안 처리 가능성은? > 등 4꼭지를 보도했다.

 

 
[사진] <뉴스데스크>는 28일 이후 진보당 '내란예비음모' 혐의 사건를 집중 보도했다. ⓒ 뉴스데스크

 
MBC < 뉴스데스크 > 역시 비슷하다.
28일- < 국정원·검찰,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내란음모 혐의 > 외 3개
29일- < 이석기 하루만에 공개석상 등장…"모든 혐의 날조" > 외 4개
30일- < 국정원, 이석기 녹취록 공개…"전쟁 준비하자, 北은 애국적" > 외 4개
31일- < '내란음모' 통진당 3명 구속…"사안 중대, 증거인멸 우려" > 외 2개

그리고 1일에도 < 진보당 "협조자 매수해 사찰"..국정원 "터무니 없다" > , < 통진당, 계속된 말 바꾸기... 녹취록 인정? > , < 원포인트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되나 > , < 이석기, 인맥과 수완 좋아 단숨에 국회로 > 등 4꼭지를 보도했다. 특히 < 이석기, 인맥과 수완 좋아 단숨에 국회로 > 기사에서는 "가석방을 즈음해서는 병든 노모 그리고 동생 때문에 정직당한 누나의 사연 등이 메스컴에 소개되기도 했다"는 가족사까지 보도했다.

 

워낙 큰 사건이라, 보도 갯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교묘한 왜곡과 과장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30일자 KBS < 뉴스9 > 는 < '녹취록 공개…이석기 의원, 전쟁 준비해야' > 제목 기사에서 "(이석기 의원은) 남한 지배세력이 60여년 동안 만든 정세를 무너뜨려야 한다며 남한 정부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녹취록에 나오는 미국 관련 내용은 실제 이렇다.

 

"남북의 자주역량 관점에서 미 제국주의 군사적 방향과 군사체계를 끝장내겠다는 이러한 전체 조선민족의 입장에서 남녘의 역량을 책임지는 사람답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이 정세를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

녹취록에 "미제국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내용만으로 미국에 적대감을 드러냈다고 '단정'할 수 없다. MBC < 뉴스데스크 > 는 지난 달 31일 < '방통위' 이석기, 왜 '국방 자료' 요구? > 제목 기사에서 "이석기 의원 측이 지난해 국방부에 요청한 자료는 30여 건 가량 된다"면서 "미군기지 이전과 방위비 부담금, 전시작전 통제권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역시 녹취록에 나오는 미국 관련 발언과 연관지으려는 것이다.

 

KBS·MBC, 역시나 '국정원 부정선거'는 외면

30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죄'이기 때문에 기사 분량과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방송사는 그 동안 국정원 부정선거와 촛불집회를 아예 무시했다. < 뉴스9 > 와 < 뉴스데스크 > 가 국정원 청문회와 촛불집회를 제대로 보도한 적이 거의 없다. 하루에 4-5꼭지씩 보도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진보당 사태 이후도 별다르지 않다. 지난 달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권 과장은 "경찰에 입문해 7년 동안 수사과장으로 일했지만 구체적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과 관련해 지방청장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는 증언을 했다.

 

하지만 < 뉴스9 > 는 이날 진보당 관련 기사를 7꼭지나 보도하면서 공판 관련 기사는 보도하지 않았다. < 뉴스데스크 > 도 보도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31일 10번째 촛불집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는 데도 2만명(경찰추산 4천)이 참석했다. 비도 많이 내렸다. 이날 집회에는 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 등도 참석했다. 그럼 2만여명이 이들은 무조건 지지했을까? 아니다.

 

< 오마이뉴스 > 에 따르면, 집회에 참석한 변주연(38)씨는 "촛불 나올 정도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 "(내란음모 의혹에 대한) 조사는 조사대로 지켜보되,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게 민주주의고, 언론다운 모습이다.

 

만약 < 조중동 > 과 KBS·MBC가 '진보당 사건' 딱 절반만큼이라도 '국정원 부정선거'와 촛불집회를 보도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도움받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새누리당 의원이 "광주의 경찰입니까"라는 망언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진보당 내란음모 혐의 사건은 철저한 수사로 사실을 밝혀내면 된다. 하지만 국정원 부정선거를 덮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진보당 사건은 집중 보도하면서 부정선거는 외면한다면 언론으로서 자격 미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