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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공예·조각

[문화재] 부여 왕흥사 출토유물은 마야부인 (?)

잠용(潛蓉) 2014. 2. 21. 14:00

왕흥사 터 청동여인상은 '마야부인'?
동아일보 | 입력 2014.02.21 03:08 | 수정 2014.02.21 08:42

 

[사진] 충남 부여 왕흥사 터에서 출토된 소형 청동 인물상.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낯선 자세와 복식… 가능성 높아”
“아기 부처상 없어 무리한 추정”

[동아일보]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추정되는 청동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충남 부여군에 있는 왕흥사(王興寺) 터에서 지난해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소형 청동 인물상을 찾았다"고 밝혔다. 6세기 백제시대 사찰인 왕흥사 터는 2007년에 위덕왕(威德王·554∼598)이 577년 죽은 왕자를 위해 봉안했다는 명문이 있는 사리기(舍利器)가 나와 큰 화제를 모았다.

 

출토된 인물상은 높이 6cm의 소형 유물이나, 지금까지 국내에선 발견된 적이 없는 자세와 복식이 눈길을 끈다.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발밑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를 입었는데, 마야부인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배 소장은 "마야부인 상이 맞을 경우 네팔과 파키스탄, 일본엔 부조상이나 불상이 여럿 전해지나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청동상을 마야부인으로 보기는 다소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마야부인은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붙잡고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석가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해외 마야부인 상은 나뭇가지를 붙잡았거나 애기(부처)가 함께 등장한다. 이번에 나온 청동상은 자세는 엇비슷하지만 나무와 부처는 찾지 못했다.

 

다만 이 청동상은 두상이 몸체에 비해 큰 데다 옷차림을 표현한 기법으로 미뤄볼 때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강순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출토된 지층의 깊이를 감안하면 왕흥사 창건 시절 제작된 인물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백제의 발레리나?
조선일보 | 허윤희 기자 | 입력 2014.02.21 03:05

 

 

백제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이 세운 사찰인 충남 부여 왕흥사 터에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청동 인물상이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부여 왕흥사 터 강당이 있던 곳에서 최근 발굴된 청동 인물상을 20일 공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날 공개된 인물상은 높이 6㎝, 폭 2.5㎝의 소형. 연구소는 "오른손을 올리고 있는 독특한 자세, 발밑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를 입은 복식은 국내에서는 출토된 사례가 없다"며 "강당지(址) 고려시대 문화층 맨 아래층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아 고려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옷 주름 양식을 볼 때 삼국시대, 즉 왕흥사가 창건된 백제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비파괴 분석을 진행한 결과 성분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형태가 불분명하고 국내에서는 처음 출토된 희귀 사례라 정확한 시기와 양식에 대해서는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인물상을 검토한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석가모니를 출산하고 있는 마야 부인을 연상시킨다. 6세기 백제의 인물상으로 추정되며, 중국·일본에 있는 마야부인상과 유사한 형태라는 점에서 백제 조각의 세계사적 위상을 확인하게 해주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주장했다.

왕흥사지는 577년 백제 위덕왕이 봉안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담은 용기)가 출토됐던 사비 시기의 사찰 유적이다.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