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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따뜻한 봄날' - 김형영 지음

잠용(潛蓉) 2014. 3. 6. 15:38
 



[배경음악] Mehdi - "The First Day of Spring"(입춘: 섬진강변에 만개한 매화꽃)

 


'따듯한 봄날'
김형영 지음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멀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웅큼 한 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옛날 고려 때는 모진 겨울이 지나가고 봄철이 돌아와 보릿고개가 닥치면 입 하나라도 덜어서 남은 가족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늙으신 부모님을 산속에 지고가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아들이 어머니가 일흔 살이 되었으므로 버리기 위해 지게에 짊어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음식만 어머니에게 드리고 지게도 버린 채 되돌아 가려고 하는데 그때 따라왔던 어린 아들이 버린 지게를 다시 끌고 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왜 그 지게를 되가져 오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말했다.

 

“아부지, 지도 아부지가 늙으면 이 지게로 지고와야 하지 않겠시요? 그래서 가져왔시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자 그는 크게 뉘우치고 늙은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셔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오래오애 잘 봉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효자전(孝子傳) 이야기]

 

‘고려장’은 원래 불경에 나오는 ‘기로국(棄老國) 설화’인데 일제에 의해 고려의 풍습인 것처럼 왜곡된 것이라고 한다.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린다는 기로설화는 실제로 아시아 각국에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26~2006) 감독의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도 기로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바로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이다. 그리고 이 시를 노랫말로 만든 장사익의 ‘꽃구경’이라는 노래도 있다. [새는 나는데 나는 엉망이다]

 

지난해 연말, 소리꾼 장사익의 음악공연에 갔었다. 좌석은 이미 오래 전에 매진됐고, 공연 당일엔 암표상이 판을 칠 정도로 인기 있는 그런 공연이었다. 공연 시작 훨씬 전부터 널찍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장사익의 걸쭉하고 농익은 소리를 기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운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장사익은 폭발적으로 가락을 토해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한 맺힌 소리는 듣는 이들의 뒤통수를 ‘따악’ 후려쳤다.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노래는 시인 김형영의 시 <따뜻한 봄날>에 곡을 붙인 <꽃구경>이었다. 가사의 내용은 고려장 가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사람들은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그들은 아마 이 구절도 함께 떠올리지 않았을까?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불지: 나무가 고요해지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불대: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되는 진실... 소설가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도 바로 그런 자식들의 때늦은 후회를 담아내고 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후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에 반해 어머니의 사랑은 얼마나 컸던지 그들은 깨닫는다. 또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자였다는 사실도 절감한다. 《엄마를 부탁해》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아버지의 생일을 자식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복잡한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만다. 당연히 뒤에 따라오겠거니 여기고 앞서간 아버지는 혼자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문이 닫힌 후에야 엄마가 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버지는 서둘러 남영역에서 내려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모심과 살림]

 


시인 김형영: 1945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사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6년 《문학춘추》 신인작품 모집에 당선되었다. 이어 1967년 문화공보부 신인 예술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뷰했다.

시집으로는 <침묵의 무늬><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다른 하늘이 열릴 때><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새벽달처럼><홀로 울게 하소서><낮은 수평선>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내가 당신을 얼마나 꿈꾸었으면》등이 있다. 2005년 가톨릭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가톨릭문우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