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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성평등

[일본] 'AID로 태어난 사람 친부 알 권리 부여하라'

잠용(潛蓉) 2014. 5. 30. 08:39

정자 제공받아 태어난 일본인들

"유전적 아버지 알 권리 보장하라"
경향신문 | 도쿄 | 윤희일 특파원 | 입력 2014.05.29 21:32 | 수정 2014.05.29 23:26

 

병원 측 정보공개 거부에 심포지엄 열고 법 제정 요구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유전자상의 아버지를 알고 싶습니다."

일본 요코하마(橫浜)에 사는 40대 남성은 29세 때 자신이 '비배우자간인공수정(AID)'에 의해 태어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비배우자간인공수정은 불임 남편을 둔 여성이 제3자가 제공한 정자를 이용해 실시하는 인공수정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모든 것이 뿌리부터 무너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전자상의 아버지'를 찾아나선 이 남성은 자신의 어머니가 한 대학병원을 통해 정자를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대학병원 관계자로부터 "당시 의학부 학생들로부터 정자를 제공받고 1만5000엔(15만원)~3만엔(30만원)의 사례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자를 제공한 사람이 이 대학을 졸업한 60세 전후의 의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 유전자상의 아버지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현재 벽에 가로막힌 상태다. 지난 3월 병원 측에 정자 제공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이 "익명으로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 조건이었다"며 정보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남성처럼 일본에서 비배우자간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사람 등 100여명은 지난 25일 도쿄 시내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유전자상의 아버지를 알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949년 일본에서 비배우자간인공수정이 시작된 이후 이 방법으로 태어난 사람은 대략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유전적으로는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등 정신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한 심포지엄 참가자는 "제3자의 정자를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 뒤 그동안의 내 인생이 모두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는 "비배우자간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도 결국 치료의 대상자이기 때문에 출생과정과 정자 제공자를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비배우자간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뒤 자신의 출생 과정에 대해 알게 된 6명이 그동안 겪어온 심리적 고통과 자신들의 희망 등을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일본에 비배우자간인공수정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은 것과 관련, 연구모임을 만드는 등 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