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한국 11번째 쾌거 (종합2보)
연합뉴스 | 입력 2014.06.22 16:36 | 수정 2014.06.22 16:36
카타르 도하 세계유산위원회 결정
"군사방어술 집대성·살아 있는 유산"
북한·중국까지 합치면 한민족 유산 14번째 등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남한산성이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22일(한국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계속한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고 문화재청이 이날 밝혔다.
↑ <그래픽> 남·북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유네스코는 22일(한국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 <그래픽>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유네스코는 22일(한국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이로써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건이 한꺼번에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창덕궁과 수원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을 거쳐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11건에 이르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합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4건을 헤아린다.
이날 등재 심사에서 남한산성은 세계유산 가운데 인간이 남긴 기념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유산'이 되기 6개 조건 중에서도 기준(ⅱ)와 (ⅳ)를 충족했다고 평가됐다. 애초 한국정부는 등재기준 (ⅲ)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와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도 남한산성이 충족하는 것으로 제출했지만 이날 회의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등재기준 (ii)는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등재기준 (iv)는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 건축,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탁월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남한산성은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받았다. 세계유산위는 나아가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는 등재 심사에 앞서 현지실사 결과 등을 토대로 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등재(Inscribe) 권고' 판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 인접 지역의 개발 행위를 적절히 통제하고, 주민들이 유산 관리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경기도를 비롯한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력 하에 남한산성의 체계적 보존관리와 활용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이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남한산성은 일상적인 왕궁과는 별개 산성이면서도 병자호란 때는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한 '비상 왕궁'(emergency palace)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면서 "이런 산성은 세계적으로 남한산성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남한산성은 왕궁과 관련된 시설을 갖췄으며, 또한 축조와 운용 과정에 사찰과 승려가 동원된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표]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목록
남한산성, 어떤 점이 세계유산 가치 인정받았나?
[연합뉴스] 2014/06/22 15:36 송고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의 교류를 보여주는 군사유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기초를 둔다. 세계유산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크게 자연이 빚어낸 자연유산(natural heritage)과 인류 활동의 흔적인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그리고 이 두 가지 성격을 복합한 복합유산(mixed heritage)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문화유산이다.
한데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이 협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법률 체계로 보면 헌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조건은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에서 규정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자주 바뀌는 편이다.
[사진] 남한산성 전경
가이드라인이 규정한 세계유산의 조건은 ▲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 진정성(authenticity) ▲ 완전성(integrity)의 세 가지다. 하지만 이 또한 추상적인 까닭에 가이드라인은 그것을 더욱 세밀하게 10가지로 구체화한다. 10가지 중 6번째까지가 문화유산과 관련되며, 나머지 네 가지는 자연유산과 관련 사항이다. 이 세부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세계유산이 된다.
세 가지 조건 중에서도 흔히 유네스코에서는 'OUV'로 약칭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에 기초해 유네스코가 정의한 6가지 문화유산 등재조건은 다음과 같다.
(i) 인류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
(ii) 인류의 중요한 가치 교류를 보여주는 건축이나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이나 조경설계의 발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거나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일어난 것 .
(iii)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가 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건조물,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이거나 경관.
(v) 문화(또는 여러 문화) 또는 돌이킬 수 없는 영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큰 환경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전통적인 인간 정주지, 토지의 이용 또는 해양의 이용과 관계되는 탁월한 사례에 속하는 것.
(vi)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 사상, 신앙, 예술ㆍ문학 작품과 직접적으로 또는 형태적으로 연계된 것.
[사진] 남한산성 동문
국내 11번째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남한산성은 이 중에서도 (ii)와 (iv)를 충족했다. 등재 기준 (ii)에 따라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유산"으로 간주되었으며 (iv)에 따라서는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한 초대형 포곡식 산성"으로 평가된 것이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세계유산학과 교수에 의하면 남한산성은 등재기준 (ii)에 따라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에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7)을 거치면서 국가 유사시에 왕실과 조정의 보장처로 방어력을 갖춘 임시수도의 필요성을 절감함에 따라 등장한 산성도시로서 새로운 화포와 무기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고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성곽을 증·개축하고, 다양한 중국의 방어전술을 응용해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남한산성은 그 자체 독특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사, 특히 당시 동아시아 사회와 교류한 흔적이라는 것이다.
등재기준 (iv)와 관련해 남한산성은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기술적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낸다고 평가받았다. 남한산성은 그 원류를 찾아가면 나당전쟁 거점 중 한 곳인 통일신라시대 주장성(672년)에 닿는다. 실제 남한산성에서는 주장성 흔적이 발굴결과 드러났다. 그러다가 1624년 인조 때는 전통적인 퇴물림 방식에 따라 정방형과 장방형 돌을 20단 이상 쌓아 옆에서 보면 하단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직선에서 뒤로 굽어지는 굽도리 방식의 형태의 남한산성으로 탈바꿈한다. 화포 공격에 대비해 하단에는 대형 석재와 암반을 사용해 성벽의 지지력을 높여 화포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다.
[사진] 남한산성 남문
그러다가 18세기 영조와 정조 때는 석재 중간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성벽의 지지력을 더욱 높인다. 성벽과 옹성에는 불랑기 등의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포좌를 만들고 옆에 화약고를 만든 포대를 건설했다. 또한 여장을 만들면서 마사토와 강회, 동유를 섞은 모르타르와 전돌을 함께 사용해 구조적인 지지력을 높였고, 근총안과 원총안을 만들어 적에게 사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변모에 따라 남한산성은 성벽이 시기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인조 초에 축성한 원래 성, 병자호란 이후에 만든 3개 외성, 그리고 5개 옹성과 방어시설 등은 축성술이 변모한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화석과 같은 유산인 셈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고려되기는 했지만, 남한산성은 결국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했다 해서 국내 11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물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경기도가 보여주는 보존정비 정책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기도는 산성 내 러브호텔을 철거했는가 하면, 무분별한 식당가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사진] 남한산성 행궁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남한산성은 밤이 좋아, 한눈에 즐기는 서울야경
뉴시스 | 김태은 | 입력 2014.06.29 07:54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은 야경 또한 탐스럽다. 산성 주변에 흩어진 유적 사이를 걸으며 숲과 성곽 둘레길이 선사하는 한낮의 여유를 만끽했다면, 해 질 무렵에는 산성에서 바라보는 야경에 취해본다. 남한산성 서문 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을 아우른 야경은 시대를 넘어서는 아득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남한산성의 야경 감상은 선선한 바람과 고독이 함께한다. 한낮에 성곽을 채우던 산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산성 안은 오붓함이 동행하는 시간이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탐방 코스 역시 주말 낮이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해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가로등만 듬성듬성 켜진 한적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 【서울=뉴시스】위례 둘레길
↑ 【서울=뉴시스】수어장대
↑ 【서울=뉴시스】남한산성에서 내려다 본 서울 야경
↑ 【서울=뉴시스】남한산성 서문
야경을 감상하는 최고의 포인트는 서문 성곽 위다. 행락객이 하산에 나설 무렵, 북문을 거슬러 서문으로 오른다. 서문에서 조우하는 야경의 묘미는 옛 도읍이던 서울의 건물과 한강 변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옅은 어둠에서 벗어난 도시가 은은한 조명으로 뒤덮이는 시간을 알현하는 것이다. 청량산을 거슬러 오른 선선한 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역사의 흔적이 담긴 남한산성에서 만나는 서울 야경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남한산성은 백제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 역할을 한 요충지였다. 조선 인조 때는 청나라가 침략하자, 왕이 이곳으로 피신해 47일 동안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성곽 위에 서면 마치 성루를 지키는 옛 병사가 된 듯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남한산성은 광주, 하남, 성남시와 접한 공간에 있다. 서문에서는 서울 송파구를 중심으로 강남 일대와 멀리 하남시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서문 성곽 아래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야경 감상은 성곽 위쪽이 한결 운치 있다. 다른 산에서 조망하는 야경과 달리 서문까지 큰길이 닦여 가족이 함께 산책하며 오붓하게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은 국내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와 역사의 현장이다. 야간에는 일부 유적에만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려면 야경 감상 전 산성을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10여년 복원 과정을 거쳐 문을 연 행궁(사적 제480호)은 남한산성의 새로운 상징이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 밖으로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도 숙종과 영조, 정조 등이 능행 길에 머물렀다. 남한산성 행궁은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으로, 유사시에는 남한산성이 임시 수도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행궁 안에는 정문이자 '한강 남쪽 제일의 누각'이라는 의미가 있는 한남루 외에 내행전, 외행전, 이위정 등이 복원됐다. 행전에서는 무료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주말이면 아이들을 위한 책 만들기와 부채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행전을 둘러봤으면 본격적인 남한산성 낮 투어에 나설 차례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 험준한 자연 지형을 따라 둘레 11.76㎞ 성곽에 200여 문화재가 자연경관과 함께 흩어져 있다.
산성 탐방 코스 중 가장 수월하고 가족 여행객이 접근하기 쉬운 코스는 북문~서문~수어장대~남문을 둘러보는 코스다. 이곳에서는 성곽 안팎을 넘나들며 성곽 둘레길을 걸어보면 좋다. 성문 밖으로 잠시 나서면 솔숲이 상쾌한 휴식을 선물한다. 탐방 코스의 반환점인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남한산성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성안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서문 옆 병암에는 정조 때 서문 근처가 파괴된 것을 주민들이 자진해 보수한 것을 찬양하는 글이 새겨졌다.
빠르게 수어장대와 서문까지 오르려면 숭렬전, 국청사를 거치는 숲길 코스를 선택한다. 숭렬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조 당시 책임자인 이서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이 단축 코스는 야간에 길을 잃을 우려가 있으니 해가 진 뒤에는 산행을 삼간다.
산성 탐방을 마친 뒤에도 곳곳에 들어선 유적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다. 군사 훈련을 위해 건립한 연무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6호)이 육중한 규모를 자랑하고, 병자호란 때 항복을 끝까지 반대한 3학사를 기리는 현절사(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호)가 오붓한 자태로 남아 있다. 남한산성 인근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흔적이 담긴 만해기념관도 들러보면 좋다. 산성 주변으로는 야경 투어의 여운을 즐길 만한 공간도 있다. 무기 제작을 관장하던 침괘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호)과 행궁 초입 종루 인근에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허기를 달랠 식당과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들어섰다.
산성 남문으로 접어들기 전 닭죽마을 역시 여름 원기를 보충하기에 좋다. 마을에는 음식점이 20여곳 모여 있는데, 남한산성에 놀러 온 사람들이 계곡에 발 담그고 닭을 먹던 시절부터 30여년 간 운영해온 곳도 있다. 동문 방향으로 향한 뒤, 광주 분원리에서 팔당호를 바라보며 시래기붕어찜을 맛보는 것도 몸에 좋은 뒤풀이가 될 듯하다. 당일 여행 코스로는 남한산성 행궁에서 숭렬전, 이어 수어장대에 들렀다가 북문에서 서문을 향하는 일정이 적당하다.
1박2일 여행 코스도 비슷하다. 첫째 날에는 당일 코스와 똑같이 돈 뒤 닭죽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면 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남문에서 시작해 연무관에 갔다가 현절사를 통해 동문으로 내려온다.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홈페이지(http://nhss.ggcf.kr), 광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jcity.go.kr), 남한산성도립공원 031-743-6610,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031-777-7500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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