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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미국 민요] 'House Of The Rising Sun' (해뜨는 집 1964)

잠용(潛蓉) 2014. 7. 6. 10:10

 

'House Of The Rising Sun' (해뜨는 집)

작사 Georgia Turner/ 작곡 미국 민요

The Animals (1964) 노래

 

(보컬: Eric Burdon, 키보드: Alan Price,
리드기타: Hilton Valentine, 베이스기타: Chas Chandler,
드럼: John Steel)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And God, I know I'm one.

뉴올리언스에 어떤 집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해 뜨는 집'이라 부르는,

그리고 그 집은 가난한 아이들의 폐허였어요

맙소사,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지요.

 

My mother was a tailor
She sewed my new blue jeans,
My father was a gamblin' man
Down in New Orleans.

어머니는 제봉사였는데

나의 새 블루진을 손수 만들었지요,

아버지는 도박꾼이었어요

뉴올리언스 시내에서.

 

Now the only thing a gambler needs
Is a suitcase and the trunk,
And the only time he's satisfied
Is when he's on a drunk.

지금 당장 도박꾼에게 필요는 물건은

한 개의 옷 상자와 트렁크뿐이고,

그가 만족하는 유일한 시간은

술에 취했을 때지요.

 

(Organ solo)

 

Oh mother, tell your children
Not to do what I have done,
Spend your lives in sin and misery
In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오, 어머니, 아이들에게 말하세요

내가 살아온 그대로는 살지 말라고,

죄악과 고통 속에 당신의 인생을 낭비하면서 

그 해뜨는 집에서.

 

Well, I got one foot on the platform
The other foot on the train,
I'm goin' back to New Orleans
To wear that ball and chain.

이제, 나는 플랫폼에 한쪽 발을 딛고

다른 발은 기차 위에 올렸어요,

난 뉴올리언스로 다시 돌아가고 있어요

스스로 가장(家長)의 짐을 지기 위해서.

 

Well,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And God, I know I'm one.

그래요, 뉴올리언스에 어떤 집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해 뜨는 집'이라고 부르는,

그리고 그 집은 가난한 아이들의 폐허였지요

맙소사,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어요.

 

http://www.metrolyrics.com/house-of-the-rising-sun-lyrics-the-animals.html

 

* down: =down town, 시내. 중심가
* to wear ball and chain: 사슬에 쇠구슬이 달린 족쇄를 차다,

[俗] 멍에를 지다, 무거운 책임을 지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다

(직역 잠용)

 


“House of the Rising Sun”(해뜨는 집) 해설

 

 

"House of the Rising Sun"은 미국의 민요이다. "Rising Sun Blues"란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사의 배경은 뉴올리언스로, 화자는 자신의 잘못된 인생에 대해서 회한을 털어놓고 있다. 가사는 여러 종류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화자가 여성인 경우와 남성인 경우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영국의 애니멀즈(The Animals)가 1964년에 발표한 곡과 존 바에즈(Joan Baez)가 부른 곡이다. 프리지드 핑크(Frijid Pink)도 이 노래를 부른 바 있다.

 

대개의 민요가 그렇듯이 구전(口傳)을 통해 전해 내려온 노래라 작곡자는 알 수 없다. 이 곡의 기원을 연구한 학자들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노래 가사의 해석도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곡의 중심 소재인 '해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이 유곽을 돌려 표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루이지애나 주의 한 감옥을 뜻하는 별칭이라는 설도 있다. 두 번째 설에 의하면 이 노래의 화자는 젊은 여성이며, 자기 어머니를 폭행한 노름꾼 아버지를 살해하고 감옥에 수감된 뒤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집" 은 미국의 민요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집" 또는 때때로 "떠오르는 태양 블루스"라고도 한다, 노래는 뉴올리언스에서의 잘못된 인생을 이야기한다. 버전에 따라, 노래는 여자와 남자의 관점에서 부를 수 있다. 가장 성공한 버전은 영국, 미국, 스웨덴, 캐나다에서 1위를 히트한 영국 록그룹 The Animals에 의해 1964년에 녹음된 곡이다.

 

많은 고전 민요처럼, "떠오르는 태양의 집"도 작곡자는 불확실하다. 일부 음악학자는 이 노래 역시 초기 이주민들에 의해 미국에 정착한 18 세기의 불우한 방랑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발라드의 전통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if only(이번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얼마동안 발전의 기간이 지난 뒤에는, 그들은 "Streets of Laredo"(라레도의 거리)와 같이 미국 노래로 나타난다. 미국 블루스의 전통에는 청중들에게 구설적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는 이런 슬픈 이야기도 포함되었다.

 

The Animals의 키보드 주자인 앨런 프라이스는 이 노래가 원래는 'Soho 매춘'에 대한 16세기 영국 민요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이후에 뉴올리언스에 정착한 영국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가장 오래된 현존 녹음은 다재다능한 애팔래치아 음악가 클라렌스 "톰" 애슐리(Clarence "Tom" Ashley)와 그웬 포스터(Gwen Foster)로 1933 년에 녹음되었다 [확인이 필요]. 그리고 애슐리는 그의 할아버지 Enoch Ashley에서 배웠다고 한다. 1928 년에 녹음된 Alger "Texas" Alexander의 The Risin' Sun​​은 때때로 최초의 녹음으로 언급되지만, 이것은 완전히 다른 곡이다.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Alan Lomax)에 의해 수집되지 않은 노래는 불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맥스와 그의 아버지는 1932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에 있는 미국 민요의 기록 보관소에서 큐레이터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래를 미국의 지역별로 검색했다. 아내와 함께 동부 켄터키로 원정하면서 로맥스는 켄터키의 Middlesborough에 갔는데 Tilman Cadle이라는 지역 가수겸 배우의 집에서,자신의 녹음장비를 설치한다. 1937년 9월 15일 그는 조지아 터너(Georgia Turner)라는 지역 광부의 16세 딸이 이 노래를 녹음했다. 그는 처음 그것을 The Risin' Sun Blues라고 불렀다.

 

로맥스는 나중에 버트 마틴(Bert Martin)이 부른 다른 버전과 다우 헨슨(Daw Henson)이 부른 노래 등, 이들 두 사람의 동부 켄터키 가수에 의해 부른 세 번째 버전을 녹음했다. 맥스는 1941년 자신의 노래 책 <우리의 노래하는 시골 Our Singing Country>에서, 마틴(Martin)의 버전을 참조하여, Turner의 가사를 인정(credited)하였다. 그의 최신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의 멜로디는 영국 민요 Matty Groves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Wikipedia에서 직역 잠용]

 

뉴올리언스(New Orleans)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 남부의 미시시피 강 어귀로부터 상류로 170㎞에 위치한 도시로 2000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는 48만 4,674명이며, 주변 도시권까지 합친 뉴올리언스 메트로폴리탄의 인구는 133만 7,726명이다. 미국의 주요 항구도시이고, 43번째 규모의 메트로폴리탄이며, 루이지애나주의 최대 도시다. 멕시코 만과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항구 도시로 라틴아메리카와의 무역의 중심지이며, 재즈가 탄생한 도시로서 "재즈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처음 프랑스인에 의해서 건설되었기 때문에 구시가(舊市街)에는 그때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위키백과]

 

◇ [번역에 대한 반론] '해뜨는 집'이라고 하니 혹시 청량리 588이나 영등포 역전 뒷골목의 무슨 싸구려 집창촌 쯤으로 오해하고 금지곡 목록에까지 오른 것은(그것이 사실이라도 외국에서는 어느 나라도 이 곡을 금지했다는 자료는 아직 본 일이 없다) 1960년대 이 노래가 처음 국내에 소개될 때 원어 가사에 대한 오해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God'(하나님)이 나오고 'sin'(죄악)이니 범죄니 'ball and chain'을 죄수들에게 채우는 '족쇄'로 번역해 놓았으니 "탕아의 잘못된 인생에 대한 회한"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설마 이런 가사가 미국에서 그것도 '재즈의 발상지'인 뉴올리언스에서 여러사람의 입으로 구전된 민요가 되었겠는가? 설사 멜로디는 영국민요 Soho 매춘곡에서 따왔다고 하드라도 The Animals 가사의 내용만은 적어도 음담패설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구대륙 유럽에서 여러 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미국 동남해안 뉴올리언스로 이민온 가난한 이주민 가족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 집을 "해뜨는 집" 이라고 불렀단다. 그건 아마 먹고 살기 위해 해가 뜰 때부터 부지런을 떨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들까지 구걸과 절도를 저지르며 거리를 헤매고, 돈 없고 배운 기술 없는 아버지는 일확천금에 눈이 어두워 마치 우리나라 강원랜드 같은 도박의 중심가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어머니는 그래도 가족들 입에 풀질이라도 해보려고 옛날 고향에서 배운 재봉일로 근근히 살아가는 이 불쌍한 빈민 일가의 처참한 생활이 어째서 팝송 번역가의 머리 속에는 그려지지 않았을까? 설마 창녀촌을 헤매는 인간 망난이, 목사님들이 말하는 '돌아온 탕아'를 노래한 가스펠(gaspel) 송에 불과하다면 1960년대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차트 1위에 오르고, 남녀 유명 가수들이 다투어 취입해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인기곡 목록에 남아 있겠는가? [잠용]   

 

거리의 악사가 부른 '해뜨는 집'
[오마이뉴스] 2008.02.02 15:57 l 최종 업데이트 2008.02.02 15:57 l 배상열 panoksun


전철은 늘 그렇듯이 단순하고 무료하게 레일을 마찰하며 직진했다. 그나마 창밖에 바라볼 것이 없는 지하철이 되어버리면 저렴하고 효율적인 운송수단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주변에 '헐벗은'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때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그 사내가 들어온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다. 연못에 빠지면 물고기가 뛰쳐나올 것처럼 때가 얼룩덜룩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나이는 나와 비슷할 것 (나는 63년생이다)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구걸이 목적일 것 같은 사내의 손에 들린 것은 자신의 지금 상태와 그리 다를 것도 없는 기타와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앉은뱅이 의자였다.

 

사내는 “구걸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들려드리고 정당하게 대가를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부터도 귀찮기 짝이 없었다. 전철에 들끓는 잡상인들도 성가신데 같잖은 기타소리에 듣기 괴로울 것 같은 노래가 버무려지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칸으로 가버리면 될 테지만 모처럼 앉은 자리를 쉽게 내줄 수는 없었다. 원치 않는 라이브 연주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내의 기타 솜씨는 그럭저럭 들어줄 만했다. 하기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을 테니까 기타를 들고 구걸하러 나왔을 테지만. 통속적인 대중가요 두어 곡이 끝난 다음 갑자기 사내가 내장을 토해낼 것처럼 거칠게 기침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하루 종일 혹사한 목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사내의 앞에 놓인 텅 빈 박카스 박스가 청중(?)의 냉담한 반응을 증명했다.

 

겨우 기침을 누른 사내의 목소리는 며칠 밤을 지샌 상주(喪主)처럼 끅끅거리며 갈라졌다. 이쯤해서 퇴장하기를 바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사내가 연주한 것은 뜻밖에도 '창밖의 여자'였다. 1980년에 발표하여 조용필 신화를 개막한 '창밖의 여자'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갖가지 기록을 보유했지만, 그는 조용필이 아니었고 여기는 카네기홀이 아니었다. 그가 연주한 '창밖의 여자'는 전혀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신중하고 집요하게 '창밖의 여자'를 보낸 다음 느닷없이 외국노래가 터져 나왔다. 그룹 애니멀스(Animals)의 '해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이 등장하자 그제야 반응이 왔다. 그러나 반응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영어가 튀어나오자 무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일 따름이었다. 그것은 노래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사대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에게 향했던 관심이 사그라지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활동했던 영국의 5인조 남성그룹 Animals가 64년에 빅 히트시킨 'House of the Rising Sun'은 정말 나에겐 오랜만이었다. 가사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영어가 일반화되지 못했던 그 시절 (뭐 지금도 그렇지만)에는 '상처 입은 장미' 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안되어 창녀들이 고향집을 그리는 내용으로 불리기도 했던 팝송이었다. 그제야 사내의 기타 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코드와 코드를 오가는 핑거링(fingering)이 아주 매끄러웠고 터치도 수준급이었다. 말쑥하게 차리고 제대로 된 장비를 가졌다면 변두리의 클럽에서는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그런 솜씨를 가진 사내가 무엇 때문에 노숙자가 되어 구걸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의 운명은 본래 그런 속성이 있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그시 눈을 감고 감상하는 것 밖에 없었다.

 

갑자기 베트남 전쟁이 떠올랐다. 원치 않는 전쟁에 투입되어 지옥 같은 정글에서 호흡이 끊기던 병사들이 비통하게 절규하던 어머니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단조롭게 철컥이는 레일의 마찰소음이 헬리콥터의 불길한 날개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M-16 소총과 몇 개의 수류탄을 휴대하고 ‘죽음의 버스’라고 불리던 휴이 헬리콥터에 탑승된 병사 같았다. 전철 문이 열리면 정글의 지옥이 나를 기다릴 것 같았다. 미처 조준도 하기 전에 헤아릴 수조차 없는 적들의 일제사격에 나는 온몸을 헤집히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거나 부비트랩에 걸려들어 '어머니'를 외칠 사이도 없이 산산조각으로 분해될 것만 같았다. 그린 컬러의 바디백에 담긴 나의 잔해가 뉴올리언스의 해 뜨는 집에 부쳐진 다음 요철(凹凸)로 맞물린 지퍼가 '찌익' 하고 열리면 나는 멍한 눈동자로 이질적인 하늘을 바라볼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기 전에 전철을 내릴 때가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웠다. 되는대로 지폐 한 장을 꺼내 집어던지듯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의 연주는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아나콘다처럼 감겨드는 기타의 선율을 간신히 뿌리치고 내릴 수 있었다. 바깥은 다행히 베트남이 아니었다. 정글도 없었고 적도 없었으며 기후를 비롯한 모든 외적인 요소가 베트남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부비트랩은 존재했다. 전업작가의 빛 좋은 허울 아래 아내에게 생계를 떠맡긴 지 이미 1년을 넘겼다. 느닷없이 전쟁의 환영이 오버랩된 것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고통의 증상이 다른 형태로 연장된 것일 테지...

 

나에게 세상은 전쟁터며 생존은 오직 필력(筆力)에 의한다. 제대로 싸울 기회를 맞은 이상에는 전과(戰果)를 올려야만 한다. 머지않아 탄창을 채우고 착검(着劍)한 다음 군장(軍裝)을 꾸려 밖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곳곳에 늘어선 나의 적들은 강하고 사납다. 그들과 싸워 이기고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하고 사나워져야만 할 것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다섯 차례의 전투보다 훨씬 흉험할 것이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이미 이긴 것 같은 예감마저 들 정도다. 마감을 향해 달리는 원고의 행보가 경쾌하고 산뜻하다. 출판사에서 인세와 보너스를 받으면 그 기타맨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소주라도 한 잔 나누고 방금이라도 줄이 끊길 것처럼 위태로운 기타를 새 것으로 장만해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을 테지...//

 


Frijid Pink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1971)


Joan Baez ~ House Of The Rising Sun


NINA SIMONE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Best Version)


THE VENTURES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Wild Again Concert '97)


Demis Roussos-House Of The Rising Sun


The House of the Rising Sun versión THE ANDES


TOMMY EMMANUEL : House of the rising 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