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지점 예수님 옷을 벗긴 곳
Kfont color=green>문 입구에서 돌 침상을 바라보며 오른쪽 옆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있고 , 몇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입니다.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 사용하던 아람어이고, 희랍어로는 "크라니온(Kranion), 라틴어로는 "칼바(Kalva)" 영어로는 "갈보리 (Calvary)" 이며 "해골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 골고다 정상에는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의 10지점부터 13지점까지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나는 제 10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긴 곳입니다. 그 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마 27:35) 인 11지점이며 천주교회 소속입니다. 제 11지점의 정면 벽화는 1938년에 새로된 것인데,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가 내려다 보고 있는 모자이크입니다.
11지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문 입구에서 돌 침상을 바라보며 오른쪽 옆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있고 , 몇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입니다.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 사용하던 아람어이고, 희랍어로는 "크라니온(Kranion), 라틴어로는 "칼바(Kalva)" 영어로는 "갈보리 (Calvary)" 이며 "해골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 골고다 정상에는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의 10지점부터 13지점까지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나는 제 10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긴 곳입니다. 그 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마 27:35) 인 11지점이며 천주교회 소속입니다. 제 11지점의 정면 벽화는 1938년에 새로된 것인데,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가 내려다 보고 있는 모자이크입니다.
12지점 예수님 운명하신 곳
제11지점보다 조금 안쪽(북쪽)은 제12지점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자리입니다 (마 27:45-53). 이 곳의 관리는 희랍 정교회에서 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모습이 금속 조각으로 만들어 져 있고 천정에 등잔이 가득 달려 있습니다.
13지점 예수님 시체를 놓였던 곳
제13지점은 11지점과 12지점의 중간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 상에서 딸에 내리신 곳 (눅23:53)입니다. 이 곳에 있는 제단은 천주교 소속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목상이 있습니다. 이 마리아 상은 포루투칼의 마리아 1세가 1778년에 기증한 것인데, 이 작품은 16-17세기 형이고 리스본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제단 밑에 있는 골고다 언덕의 자연석을 볼 수 있습니다.
14지점 예수님 묻히신 곳
제14지점인 예수님 무덤은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무덤 주위의 돌을 깎아 내리고 무덤과 골고다 언덕만 자연석으로 살리면서 그 둘레에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동산 무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무덤은 주후 335년에 봉헌되어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 천주교와 희랍 정교회들이 공동으로 관리 하고 있으며, 개신교에서 말하는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 무덤은 천연적인 동산의 아름다움과 모형을 지니고 있는 예루살렘 성 북쪽에 있는 무덤 동산 (The Garden Tomb) 인데 그 무덤 동산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 되었습니다.
골고다언덕
성묘교회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요한 19:17).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곳.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 그리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 언덕에 위치한다. 십자가의 사건은 성밖에서 행해졌다. 성에서 가까운 고로 (요한 19:20). 324년에 첫번째로 건축된 후 성벽으로 둘러싼 시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11년 후에 골고다 언덕은 주후 44년에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새롭게 새운 성벽으로 인하여 성안에 위치하게 된다. 20세기 중반에 러시아 호스피스 부근, 교회의 동쪽과 북쪽에서 고대 성벽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교회 안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무덤은 이 지역이 당시 성 밖이었다는 중요한 증거인데, 유대인의 법으로는 성스러운 성 안에는 아무도 매장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는 다음의 이유로 1세기 크리스찬들에게 경건히 모셔졌을 것이다. 주후 135년 하드리안 황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흔적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과 예수의 무덤에 쥬피터를 위한 로마 신전을 세웠다(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장소에도 똑같이 하였다). 이것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2세기 후에 콘스탄틴 황제가 정권을 차지 하기 전까지 이 장소들은 잘 보존이 되었기 때문이다. 326년에 헬레나 모후에 의하여 하드리안 신전은 파괴되고 성서에 서술된 갈보리 무덤이 잘 보존되어 발견 되었다. 콘스탄틴의 명령과 그의 모후 헬레나 여왕의 감독 하에 갈보리와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 교회당이 세워졌다. 이 위대한 콘스탄틴 건물들은 614년 페르시아인들에 의하여 파괴 됐다. 그리고 아봇 모데스토스에 의하여 전보다는 작게 건축 됐다. 다시, 1009년에 칼리프 하켐에 의하여 파괴되고 이것을 이유로 십자군이 역사에 등장한다. 1048년에 콘스탄틴 모노모쿠스에 의하여 재건 되었다. 114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현재까지 보존된 성묘교회를 세웠다. 여러 번의 증축을 번복하였지만 교회는 십자군의기초 모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852년의 터키시대에 정해진 6개의 교단에의하여 성묘교회는 관리되고 있다.
출처: 기타가 있는 마을 글쓴이: 붉은 ♬ 낙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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