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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불교·죽음

[도심의 템플스테이] '연꽃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

잠용(潛蓉) 2015. 8. 20. 09:56

'연꽃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
경향신문 | 2015.08.19 23:09 | 수정 2015.08.20 09:33 

 

강북 조계사 1박2일 도심 속 템플스테이

몸을 뒤척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새벽 4시 비몽사몽의 시간. 목탁소리가 방사의 문을 흔들었다. 서울 종로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조계사, 대웅전 바로 앞 관음전 3층에서 1박2일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스님이 천천히 대웅전을 돌며 목탁소리로 세상을 깨우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법당에서 흘러오는 종소리가 은은했다. 스님 두 명이 번갈아가며 두드리는 법고는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듯했다. 이어진 목어(木漁) 소리는 청아했고 28번 타종하는 범종은 울림이 컸다. 새벽 4시30분 조계사는 경건했다.

 

[사진] 조계사 차담시간에 스님이 연꽃차를 내려주고 있다.

한 모금 마시면 맑은 연꽃 향기가 입안에 고인다.

 

조계사 하면 종로거리의 번잡스러움이 떠오른다.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사진을 찍으면 누가 주인공인지 분간하기도 힘들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데다 1년 내내 연등·연꽃 등 각종 축제가 열려 북적거린다. 밤은 더 북새통이다. 조계사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흥청대는 술집과 사람들에 치인다. 인사동은 먼동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한다. 조계사는 밤 9시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얼굴을 한다. 인적이 끊겨 숨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해진다. 밤 10시 방 안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딩 간판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조계사를 차분히 비추던 대웅전의 화려한 금강어들도 모두 잠드는 시간. 조계사의 밤은 한없이 고요했다.

 

“항상 새벽처럼 깨어 있으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을 즐겨라. 자기의 마음을 지켜라.”

법구경을 떠올리며 새벽 예불에 참석하러 대웅전으로 갔다. 예불은 자신을 돌아보고, 기원하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네모난 방석에 앉아 모난 마음이 둥글어지기를 바랐다.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새벽 예불은 ‘반야심경’으로 끝냈다. 사위가 어둑했지만 아침 일정이 시작되기 전 찬찬히 경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조계사 정문으로 나가봤다. 들어올 때 미처 보지 못한 사천왕이 서 있었고 소담스럽게 핀 연꽃들이 보였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벗삼아 고풍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있는 대웅전도 우뚝했다. 400~500년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백송과 회화나무는 인생의 덧없음을 들려주는 듯 살랑댔다.

 


[사진] 일본인 등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참선을 하고 있다.

 

오전 8시 기다리던 ‘소금 만다라’ 시간이 되었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만다라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 감정을 색과 문양으로 표현해 깨달음을 얻는 명상법이다. 다른 참가자 5명과 짝을 이뤄 산과 나무, 자연이 어우러진 템플스테이 문양을 골랐다. 30여분간 16절지 그림에 소금을 올렸다. 빨강, 노랑, 파랑 등 7가지 천연색 소금이 예뻤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한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무엇하러 애착하고 집착을 하십니까. 그대로 있는 것 같은 바위조차도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어느 지점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지인 스님이 “소금을 다 채우면 만다라를 섞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성스럽게 완성한 만다라를 곧바로 섞으라니 참가자들이 머뭇거렸다. “무너뜨려야 이기심과 애착을 버릴 수 있습니다.” 스님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죽비처럼 단호했다.

 

만다라를 섞기 전 참가자들은 명상문을 읽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행동과 말 또는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진 스님과의 차담은 느긋하고 평온했다. 스님이 내준 연꽃차는 향긋했다. 얼음을 동동 띄운 것처럼 시원한 꽃향기가 가득 퍼졌다. 일본인 사오리 아베(29)가 “도심 한복판에서 뜻밖에 고즈넉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사진] 조계사를 찾은 한 직장인이 합장하고 있다.

 

1박2일 일정이 끝나갈 무렵 대웅전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자랑과 남을 헐뜯기보다 도와주고 양보할 것을 다짐하며 1배,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언제든지 상냥하고 온화한 빛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1배,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며 1배…” 선사들은 맹렬한 화두 참구를 통해 세상을 꿰뚫는 길을 찾아낸다. 하룻밤 짧은 출가로는 무망한 일이다. 하지만 잠시만이라도 흔들리고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참 나의 씨앗을 키우는 계기를 삼을 수는 있다. 여름의 끝자락, 빈 마음에 맑은 기운을 채워 모두 여여(如如)하기를….

 

▲ 조계사는대한불교 조계종의 본사(本寺)이자 한국 불교의 중심지다. 1395년(태조 4년) 세워졌다는 얘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한용운이 민족 자존회복을 위해 각황사(覺皇寺)라고 이름 붙였다. 근대 한국 불교의 처음이자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4대문 안에 최초로 자리 잡은 사찰이다. 1937년 태고사(太古寺)로 불렸고 1954년 조계사로 바뀌었다.

 

조계사를 찾는 경우 인사동을 빼놓을 수 없다. 화랑, 전통공예점, 전통 가구점 등이 모여 있는 쌈지길은 늘 북적인다. 최근엔 강남에서 인사동으로 이사 온 김치박물관이 인기인데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 1924년에 문을 연 통인가게도 많이 찾는 편이다.▲ 인사동 옆 조계사, 쌈지길·김치박물관 등 볼거리·먹거리 풍성조계사 부근 맛집은 널려 있다. 인사동 막걸리 전문집 ‘늘마중’에선 다양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채식을 좋아하면 ‘오세계향’을 찾거나 ‘고궁’에서 비빔밥을 시켜먹으면 된다. 조계사 정문 앞에 사찰 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이 있다. 코스 요리점인데 점심은 2만7500원이지만 저녁은 3만9600원으로 비싼 편이다.

 

조계사 템플스테이는 1박2일 사찰 체험형과 휴식형이 있는데 각각 9만8000원, 7만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각각 8만원, 5만원이다. 깔끔한 현대식 방에 욕실도 갖췄다. 당일 프로그램은 매달 첫째, 둘째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다. 참가비는 3만원.

 

▲ ‘아·생·여·당’ 골라 가는 4색 템플스테이
숙박 체험은 꼭 예약해야템플스테이는 전국 122개 사찰에서 연중무휴 운영되고 있다.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된다. 오롯이 나를 보듬으며 참 마음과 행복을 찾아보자.

 


[지도] 전국 13개 템플스테이 지정사찰

 


어디로 갈까=서울 도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다면 봉은사와 조계사 말고도 2~3곳 더 있다. 금선사, 묘각사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묘각사는 외국인 대상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설날과 추석, 단오 등 명절에는 한국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북한산 국립공원 내 금선사는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삼각산의 정기가 맑고 강하다 하여 세운 절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호젓한 산사의 템플스테이가 좋다. 불교문화사업단은 전국 13개 사찰을 ‘아·생·여·당’ 4개 브랜드로 운영하고 있다.

 

아아(我峨)는 아프고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위로’ 여행이다. 경북 심원사와 충북 법주사, 충북 반야사, 전북 금산사에 가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생생(生生)은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사찰에서 ‘건강’을 챙기는 템플스테이다. 전남 영암 도갑사, 경남 산청 대원사, 강원 동해 삼화사, 경기 양평 용문사에 가면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여여(如如)는 성내는 마음, 욕심을 조용히 내려놓고 참된 나를 만나는 ‘비움’의 여행이다. 해남의 미황사, 충남 수덕사에서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해보자. 당당(堂堂)은 잃어버린 삶의 ‘꿈’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강원 낙산사와 백담사, 경기 용인의 법륜사를 찾으면 내가 바라는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템플스테이 Tip=가고 싶은 지역과 사찰을 고른 뒤 인터넷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와 전화로 일정을 확인한다. 당일 체험이 아닌 경우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가격은 지역에 따라 1박2일은 3만~12만원, 2박3일은 9만~12만원 선이다. 미취학 아동은 무료다. 사찰에서의 첫날은 오후 2~3시에 시작해 오후 9시에 끝난다. 퇴실은 다음날 낮 12시~오후 2시 사이다. 공양은 1박2일 기준으로 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 점심까지 세끼다. 산사의 아침 저녁은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겉옷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세면도구와 수건은 따로 가져가야 한다. <글 정유미·사진 김정근 기자 youme@kyunghyang.com>

 


('연꽃 위에 내리는 비' - 한태주 오카리나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