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죽음의 質' 끌어올릴 웰다잉 법안들
[조선닷컴] 2015.07.03 03:20
[사진]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과잉 延命치료로 비참하게 또는 방치된 채로 맞는 죽음, 抗癌 진료 정보 미리 알리고
상급종합병원 장례식장을 호스피스센터로 전환하며 '웰다잉 공익재단' 만들길
서울대병원 암 병동이나 중환자실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저릿해진다. 환자들의 간절한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분들이 모두 완쾌하길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신(神)이 그 기도를 다 들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그렇다면 삶만큼 죽음도 편안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순간이 되면 사람을 살리기 위한 CT·MRI·PET 같은 값비싼 검사와 치료가 오히려 고통만 키우는 말기 단계가 온다.
죽음의 고통을 다스리면서 가족과 하고싶은 얘기도 하고 지난 생(生)을 정리하고 가는 게 행복할까? 아니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다 운명하는 게 행복할까? 심지어 일부 병원의 중환자실에선 말기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그 환자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환자 가족에게 소송을 당할까 봐 그렇게 한다. 과거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죽어가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었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뒤로 생긴 악습(惡習)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고비용 치료를 감당하지 못해 현대판 고려장이 만연하고, 환자와 가족이 자살하는 일마저 벌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환자실에 누워 유언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가는 사람이 생긴다.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인 절반은 방치된 상태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나머지 절반은 과도한 연명 의료로 비참하게 죽은 뒤 화려한 장례식장으로 옮겨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가 '죽음의 질(質)'을 조사했을 때 한국이 조사 대상 40개국 중 32위였던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월 국회에서 김재원 의원(새누리당)이 주관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 공청회가 있었다. 그에 앞서 김세연 의원(새누리당)이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안'도 발의했다. 정갑윤 국회 부의장(새누리당)과 원혜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동 대표를 맡은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 여야 의원 37명이 들어왔다. 김춘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이명수 의원(새누리당), 김제식 의원(새누리당)도 호스피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암 관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여야 구분 없이 과거 어느 때보다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번에도 '공감대 형성'에만 그치고 실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웰다잉이 중요한 이슈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제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다듬는 순간이 되면 국회도 정부도 '후순위'로 밀어버리곤 한다. 가령 정부는 7월부터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 의료'에 대해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만해도 큰 진전인지 모른다. 하지만 웰다잉 운동을 펼치는 처지에서는 말기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호스피스 기관이 턱없이 부족해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2002년 "호스피스 병상을 250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10년이 흘러도 목표 달성이 요원하자 2년 전 "2020년까지 1400병상을 확보하겠다"고 목표를 낮춰 잡았다. 지금도 정부는 1400병상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만 있고, 그 목표를 이룰 예산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매번 말만 하고 실천은 안 하는데, 책임지는 장관이 아무도 없는 걸 보면 앞으로는 정부가 5년마다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해마다 실적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정부의 근본적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그 이상의 '빅 플랜'을 세울 생각을 못 한다는 점이다. 호스피스가 뭔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항암 치료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더 이상 안 되니까 호스피스로 가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죽으라는 소리냐"고 오해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암 환자가 암 진단을 받을 때부터 항암 치료에 대한 정보와 호스피스에 대한 정보를 폭넓고 다양하게 제공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사전 의료 계획을 제도화해야 한다.
'빅 플랜'을 세우고 나면 그걸 채울 디테일은 충분히 있다. 상급 종합병원의 화려한 장례식장을 의무적으로 호스피스 센터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취약 계층의 간병 부담을 덜고 '웰다잉 문화 운동'을 담당할 공익 재단도 만들어야 한다. 여기 들어가는 돈은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건강증진기금과 건강보험료, 정부 지원금 등으로 마련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에 이런 내용이 촘촘하게 들어 있다. 여야의 관심과 실행이 필요할 뿐이다. 동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의 마지막을 제가 챙기겠다"고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다. 그래야 나라가 움직일 것 같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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