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菊花 옆에서' / 서정주 작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京鄕新聞 1947. 11. 9>
=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 (명시 '국화 옆에서' 해설)
■ 시작 배경
그러면서도 3음보의 율격과 한시(漢詩)의 ‘기승전결’의 구성법을 채택하여 전통시의 맥락을 잇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누님’도 대가족 제도에서 시련과 인종(忍從)을 겪은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을 대표한다. 이 시를 감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국화꽃’이 핵심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점을 ‘누님’에 두었을 때 ‘40대 여인의 원숙미’라는 잘못된 주제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님’은 원관념인 ‘국화’의 보조관념으로 쓰였을 뿐이다. 오히려 ‘국화’는 모든 생명을 대표하는 존재로 이 시에서 쓰였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체험의 순간적 표현이라는 본래의 서정 양식 속에서 체험의 연속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에서 제시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 은은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곧 삶의 욕망을 격정적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조화로운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적 경지를 확보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작품은 흔하디흔한 사물인 국화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살펴본 결과이며, 한 송이 국화에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의 우주적 질서를 포착한 시다.
■ 자작시 해설 [사진] 만년의 未堂 徐廷柱 (1915~2000 전북고창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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