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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시대의 지성'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 별세

잠용(潛蓉) 2016. 1. 16. 18:21

신영복 교수 별세,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서 18일 영결식
헤럴드 pop 2016. 01. 16 12:28
 
'신영복 교수 오늘 새벽 별세'

신영복 교수가 향년 75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지난 15일 성공회대와 이대목동병원에 따르면 신영복 교수는 이날 밤 9시30분쯤 서울 목동의 자택에서 가족의 입회 하에 별세했다. 이후 신 교수는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밤 11시47분쯤 의료진의 공식 사망 선고를 받았다.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희귀 피부암 질환 판정을 받고 다른 부위로 암이 이전돼 투병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 신영복 교수 별세 / SBS뉴스 캡처

 

성공회대는 신영복 석좌교수의 장례를 학교장으로 진행한다고 16일 밝혔다. 빈소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16일 오후 2시부터 18일 오전 11시까지 마련되며, 빈소 운영시간은 16일 오후 2시~저녁 10시, 17일 오전 8시~저녁 10시이며, 18일은 오전 8시~11시까지다. 영결식(발인)은 18일 오전 11시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서 진행한다.

 

생전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감옥생활 동안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묶어 1988년에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발간했다.지난해에는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출간하며, 지난 2014년까지의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동양고전에 대한 현대적 맥락을 진솔하게 설명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고인은 담론 이후 집필 계획이 없었다"고 전했다.

[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시대의 지성' 신영복 교수 별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담론' 남겨
뉴시스ㅣ2016-01-16 01:50:43]    

 


↑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별세. 향년 75세./뉴시스 DB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널리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 고인은 2014년 희소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이날 오후 9시30분 서울 목동 자택에서 운명했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1963∼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6∼1968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만에 출소한 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한과 고뇌를 230여 장의 편지와 글에 담아 삽화와 함께 실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수많은 이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 10년과 출소 10년을 맞은 1998년, 더욱 새로워진 형식과 내용으로 재출간됐다. 출소 이후 발견된 메모 노트와 기존 책에 빠진 편지 글들을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1998년 3월13일 사면 복권되면서 1998년 5월1일 성공회대 교수로 정식 임명됐다는 점에서도 당시 재출간의 의미는 각별했다. 고인이 옥중에 있을 때 출간됐던 기존 책은 1976년 2월의 편지부터 실려 있었다. 재출간된 책에는 '청구회 추억' 등 1969년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서 기록한 글들,1970년대 초반 안양·대전교도소에서 쓴 편지들까지 누락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담겼다.

 

 

↑ 16일 새벽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모인 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제자 김창남(왼쪽 두번째) 성공회대 교수 및 지인들이 슬픔에 빠져있다. 고인의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가 있다. /2016.01.16.


20대 사색의 편린들과 어려웠던 징역 초년의 면모까지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서 휴지에 기록한 사색노트는 당시 남한산성에서 근무한 어느 헌병의 친절이 아니었더라면 영영 없어져 버렸을 소중한 기록이다. 또한 그가 교도소에서 그린 그림,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와 비좁은 봉함엽서 등에 철필로 깨알같이 박아 쓴 일부 편지의 원문을 그대로 살렸다. 기존 책이 수신자별로 구성됐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시기별로 구성돼 발신자인 저자의 입장이 더욱 잘 드러난다.

 

이후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2(1998)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 등 깊은 사색과 폭넓은 사상이 담긴 책을 펴냈다. '엽서'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수감돼 있으면서 고인이 보냈던 감성적이고도 지성적인 편지들을 그대로 영인해 묶은 책이다. '나무야 나무야'는 20년을 복역 후 가석방된 그가 전국의 사연 있는 곳을 두루 답사하면서 느낀 점들과 국토와 역사에 대해 사색한 24편의 글에 그림, 사진을 곁들여 엮은 책이다. 

 

'강의'는 성공회대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됐던 고인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고전 강독을 토대로 과거를 재조명하며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고전 독법에서 과거에 대한 재조명이 가장 중요하다"며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2006년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을 붓글씨로 그려주고 받은 1억원을 모두 성공회대에 기부했다. 2007년 그의 글씨, 그림, 삶의 잠언을 한데 모은 베스트 에세이집 '처음처럼'이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뛰어난 서예 솜씨는 감옥에서 정향 선생으로부터 지도받은 결과로 전해졌다. 한문 서체로 익힌 필법을 한글에도 응용해 민중 정서에 맞게 민체, 연대체, 어깨동무체라는 글씨체를 창안해 독특한 경지를 보여줬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왼쪽) '담론'

 

고인은 영어의 몸으로 겪어낸 20년20일간의 옥중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감옥 20년의 삶이 완전히 인생을 바꾼 진정한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했으나,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났다. 지난해 4월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단 '담론'을 펴냈다. 신 교수의 강의 녹취 원고와 강의노트를 토대로 쓴 베스트셀러다. 그는 "앞으로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리고, '강의'에서 동양고전을 이해하는 법을 탐색한 그는 '담론'에서 이 둘을 합쳐 동양 고전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제시했다. 자전적인 글도 포함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검열 당하는 편지에 미처 쓰지 못한 말과 '청구회 추억'을 쓸 당시의 심경, 스스로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표현하는 기나긴 무기징역수의 삶 등이다.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를 남겼다. [snow@newsis.com ]


故신영복 교수 "걱정마라"며 눈 감아... 시민 400여명 찾아 '애도'
머니투데이 | 이재윤 기자  | 입력 2016.01.16. 16:27

 

시민 수백여명 빈소찾아 '애도'…박원순 시장·이재정 교육감 등 정치·교욱계 인사도 발길

'시대의 스승'으로 불린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75)의 빈소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정치·교육계 인사와 수백 여 명의 시민들이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오후 3시 현재 400여 명의 조문객이 찾아 애도를 표했다. 대학 내 고인의 저서와 작품 등이 마련된 '추모전시관'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16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마련된 고(故) 신영복 석좌교수 빈소 전경. 수백여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사진 = 구유나 기자

 

박 시장은 고인에 대해 "스승이셨다. 어떻게 보면 나도 제자다. 며칠 전 굉장히 힘들어하실 때 잠시 뵈었다. 힘드셔서 많은 얘기는 못 했다"며 "우리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남기셨다. 모든 정파, 여·야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모로 힘든 세상이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좋은 세상 만들어갈 결의를 다져야 할 때"라며 "선생님이 남긴 가르침을 우리가 잊지 않고 실천하며, 그가 꿈꾸었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허전함을 말할 바 없다. (마지막 뵀을 때)'걱정하지 마라. 더 건강해지겠다'며 눈을 감으셨던 것 같다"며 "말과 행동,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의 모범적인 지성인이셨다.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들 속 선생님의 철학과 사상, 가르침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라며 "우리가 떠나지 않는 한 선생님은 우릴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을 회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식민지와 분단·전쟁·독재 등 우리 시대 고통의 시간을 온몸을 받아내셨던 분"이라며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지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 16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내 마련된 고(故) 신영복 석좌의 추모전시관 전경. 수백여명의 시민들이 신 교수가 남긴 저서와 작품 등을 보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 사진 = 박신엽 기자

 

교육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위대한 스승을 잃었다"며 "개인적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선생님과 알고 지냈다. 선생님과 알고 지낸 25년은 가슴 시린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은 항상 희망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희망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며 "선생님이 꿈꾸셨던 세상, 따뜻한 사회를 포기하지 말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지혜를 주셨다"며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분노를 넘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수백여 명의 시민들도 고인의 빈소를 찾아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빈소가 마련되기 전부터 조문을 기다리던 이모씨(64·여)는 "신 교수의 저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마음속에 혁명을 가져다주셨다"고 눈물을 훔쳤다. 고인에게 서예를 배웠다는 제자 구모씨(54)는 "학교 제자는 아니지만 서예를 배우면서 '글을 잘 쓰기보다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관계와 의미를 중요시하셨다"고 말했다.

 

성공회대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15일 오후 9시30분쯤 서울 목동의 자택에서 가족의 입회하에 별세했다. 이후 신 교수는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오후 11시47분쯤 의료진의 공식 사망 선고를 받은 뒤 16일 오후 1시 빈소로 옮겨졌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의 복역생활 끝에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감옥생활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묶어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재윤 기자 mton@]

 

인간과 시대의 아픔 아우른 인문학의 큰별 지다
경향신문 2016.01.15 23:55:39 수정 2016.01.16 00:57:21 

 

 

[사진] 자신의 생각과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10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신 교수가 2006년 10월1일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여럿이 함께’라고 쓴 자신의 글씨체 앞에서 특집 대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통혁당 사건’으로 고초…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남겨
어깨동무체 ‘처음처럼’으로 유명… 2014년 암진단 이후 악화

이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10분쯤 타계했다.

향년 75세. 신 석좌교수의 책을 펴내온 돌베개출판사 측은 이날 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던 신 석좌교수가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결국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더불어 숲> <처음처럼> 등 많은 스테디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 냉철한 사회 현실 분석과 세계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져주었다.

고인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경제학자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있었던 시간 만 20년 20일로 1988년에야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한 고인은 1998년 사면복권됐다. 사면복권된 날 출간된 책이 바로 20년 수감생활 동안 처절하게 사유한 인간에 대한 이해, 세계에 대한 인식의 결과물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써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책은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고인은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변방을 찾아서>,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 <중국 역대 시가선집> 등을 펴냈다. 어릴 때 서예를 배운 고인은 학자이자 저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흔히 ‘어깨동무체’로 불린 독특한 글씨체로도 유명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그의 글씨체를 사용한 것이다.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으나, 지난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강단을 떠나면서 지난해 4월 펴낸 책이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단 <담론>이다. 20여년에 이르는 성공회대에서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그의 사상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담론>은 동양고전인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고인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재해석,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제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0년의 수형생활에서 배우고 깨달은 바를 엮은 제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고인은 이 책에서 ‘감옥은 대학’이라며 교도소에서 보낸 20년 세월은 실수와 방황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이기도 했다는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4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지식인은 비판 담론, 저항 담론, 대안 담론 생산에 충실해야 하고 (그 담론들을 실천할) 사회적 역량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또 청년들의 절망, 고뇌와 관련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젊은 시절 고유의 이상을 잃으면 안 된다. 젊은이들이 작은 숲을 만들기를 바란다. 작은 숲들이 소통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약속할 수 있는 숲들의 연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씨(68)와 아들 지용씨(26)가 있다. 빈소는 성공회대 대성당에 마련되며 발인은 18일 오전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타계한 신영복 교수는?… 주요 약력
이데일리 | 2016.01.16 00:02 | 김용운 기자 lucky@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의 저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7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이날 끝내 숨을 거뒀다. 다음은 고인의 주요 약력이다. [XML]
 
▲ 주요 약력

△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강사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20년 복역)
△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 1989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 2006년 8월 정년퇴임 
△ 2006∼2014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 주요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 엽서(1993) 
△ 나무야 나무야(1996) 
△ 더불어 숲 1권(1998) 
△ 더불어 숲 2권(1998)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1998)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2003) 
△ 신영복의 엽서(2003)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 
△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2007) 
△ 청구회 추억: Memories of Chung-Gu Hoe(2008) 
△ For the First Time: 처음처럼(영문판)(2008) 
△ 신영복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2010) 
△ 변방을 찾아서 (2012) 
△ 담론(2015) 

▲ 주요 역서
△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 사람아 아!사람아(1991) 
△ 루쉰전(1992) 
△ 중국역대시가선집(1994) 

▲ 수상 내역
△ 제3회 임창순상(2008) 
△ 제19회 만해문예대상(2015)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빈소
연합뉴스 | 입력 2016.01.16. 16:45 
 

 

(서울=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엄수된다. 2016.1.16  /성공회대 제공 [photo@yna.co.kr]

 

 

'시대의 스승을 애도합니다'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
연합뉴스 | 입력 2016.01.18. 11:36 | 수정 2016.01.18. 11:38  
 
7천850여명 빈소 방문해 추모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20년 수감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펴낸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이 찾았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재정 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고민정 KBS 아나운서·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또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불렀다.

 

 

↑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1월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에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리고 있다. uwg806@yna.co.kr

 

유족과 지인들이 성당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으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참가자들은 교내 피츠버그홀에서 복도까지 가득 메운 채 영결식 생중계를 지켜봤다. 교정 곳곳에는 신 교수의 제자들이 손수 적은 메시지가 담긴 엽서 수백여장이 붙어 있었다. 이 엽서에는 '사람이 희망임을 온몸과 영혼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대의 스승으로 진심으로 존경하며 돌아가심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등 글귀가 담겨 신 교수를 추모했다.

 

 이달 16일 차려진 빈소에는 첫날 3천500여명, 둘째 날 4천여명, 이날 350여명 등 모두 7천850여명이 찾았다. 빈소에는 일반 시민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노회찬 전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유시민 의원, 박원석 의원,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도 찾아 조문했다.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던 신 교수는 1998년 사면복권됐다. 이후 감옥 생활에서 느낀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내고서는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 신 교수는 아울러 '신영복체'로 불리는 글씨체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하고서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이달 15일 오후 9시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춰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오후 11시47분께 최종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향년 75세. 신 교수의 시신은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