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란다
이상원 기자 | prodeo@sisain.co.kr
시사人ㅣ[438호] 2016.02.01 14:50:29
‘괴즐나사’ 라는 말이 있다. 기괴한 어감의 이 용어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애국가 4절을 줄인 말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할 때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했다. 요즈음은 현실을 반영한 심화 버전으로 ‘괴괴나사’ 도 있다. ‘즐거우나’가 빠지고 그 대신 '과로우나' 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정부는 1월26일 국무회의(사진)에서 ‘애국심’을 핵심 공직 가치로 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제 애국심은 청렴성·책임성과 함께 모든 공무원 시험 면접에서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그 대신 입법예고 때와 달리 공직 가치에서 민주성·도덕성·투명성·공정성·공익성·다양성은 빠졌다.
[사진]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연합뉴스
그런데 애국심을 어떻게 평가하지? 이럴 땐 최신 ‘기출문제’를 들여다 보면 된다. 지난해 9급 공무원 면접에서 한 면접관은 응시자에게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고 요구했다. 문제의 ‘괴즐나사’가 포함된 부분이다. 5급 공무원 면접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원전 문제 갈등 세력’ ‘국가 체제 전복 세력’ 등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고 했다. 1월2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민주성·공익성 등을 삭제한 것은 황교안 총리의 결정이다. 황 총리의 재검토 지시에 따라 애국심을 비롯한 세 개 항목만 공직 가치에 남았다는 것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황 총리는 병역 비리 의혹부터 밝혀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애국의 한 방법으로 출산을 꼽았다. 1월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민은 초저출산인 만큼 임신부는 나라의 보배이자 이 시대의 위대한 애국자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애국자는 ‘수입’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다음 날 열린 새누리당 저출산대책특별위원회 7차 회의에서 김 대표는 “(저출산 대책으로)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SNS에 “청년들이 왜 결혼을 못하는지, 왜 애를 안 낳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온라인 여론은 ‘반(反) 김무성’으로 대통합됐다. 자칭 ‘애국보수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도 김 대표 비판에 나섰다. 네이버와 네이트, 오늘의 유머와 디시인사이드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비난 여론이 이는 것을 보고 일베에서는 “국공 합작이다”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희한한 통찰도 나왔다. “당연하다. 헬조선에서 국적은 남녀노소 빈부 모두가 갖고 있는 유일한 기득권이거든.” ‘애국보수’들도 ‘괴괴나사’에는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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