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人의 전문가 "금리인하만으론 효과 없다… 양적완화 검토해야"
매일경제ㅣ입력 2016.04.27 17:54:01ㅣ수정 2016.04.28 07:58:04
수출 회복 중요… 발권력 동원 원화값 절하시켜야
국채 한은 매입통해 정부가 산은·주택금융公 지원
한은, 산은債·MBS 매입땐 사회적 공감대 확보해야
◆ 한국판 양적완화
"경기 침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별로 없어 우리나라도 '양적완화'를 고민할 타이밍이 됐다. 한국은행이 국고채를 매입해 우리 경제 전체를 부양하는 게 효과적이나 만약 특정 은행 채권을 매입하거나 특정 부실업종에 지원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먼저 구해야 한다." 한국판 양적완화론에 대해 정치권에선 찬반 양론이 뜨겁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석좌교수,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한국경제학회장 출신인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관인 김진일 고려대 교수,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 등 통화정책 전문가 6인에게 양적완화 방법론을 물었다.
◆ 금리 인하 효과는 제한적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구조조정 필요성과 가계 빚 급증에 뾰족한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 공감하면서 '양적완화'라는 단어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정식 교수는 "한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내외 금리 차가 확대되면서 자본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양적완화가 내수 살리기에 단기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를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최 교수는 "가계 빚이 가계 빚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뒷받침해서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장기불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오 특임교수는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수출을 회복세로 돌려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경쟁국인 일본과 비교한 원·엔 환율이 매우 중요하며 15개월째 마이너스인 수출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발권력을 동원해 원화값을 절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기부양 인플레 유발 목적으로 해야
다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특정 부문 채권인 산은채나 주택담보대출증권 등을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들 채권을 사회적 논의 없이 매입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중앙은행이 불필요한 신용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6명 중 3명이 국고채 등을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명은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것을 전제로 특정 대상을 한정해 유동성을 주입하는 것에 찬성했다.
우선 경제예측 전문가인 손 석좌교수는 "양적완화를 하려면 목적부터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미국의 경우 대공황과 디플레이션을 막고 고용을 창출하자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석좌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이 중요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채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한은이 이를 매입한 다음 정부가 그 돈으로 산은과 주택금융공사를 지원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FRB 자문관인 김진일 교수는 "특정 회사채를 인수하자고 말하고 싶다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가계 빚 해결 한계가구에 포커스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을 두고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특히 최 교수는 "작년 안심전환대출을 시행할 당시를 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는 30년 만기 상환까지 가능하게 제도를 정비했지만 원리금 부담이 높아 상당수가 갈아타지 못했고 결국 판매목표량을 못 채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미 정부 지원에 힘입어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사람은 다 구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3~4월 정부가 선보인 안심전환대출은 일부 은행권 변동금리 또는 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2%대 고정금리 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으로 2차 판매 당시 20조원 한도를 채우지 못한 바 있다. 이어 최 교수는 "단순히 한은이 MBS를 사주는 것만으로는 직접 가계 빚 부담을 덜어줄 수 없다"면서 "차라리 공공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사에 한은이 출자해 주금공이 은행으로부터 가계대출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신 원장은 "만기 전환은 상환능력이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고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 위험군인 저소득층에는 혜택이 못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조준한다면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한계가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금리 인하 실탄 아껴야
기준금리를 낮출 때까지 낮춘 뒤 유동성을 주입하는 미국식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다소 많았다. 최 교수는 "금리는 경제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줘 부작용이 생긴다"면서 "필요한 곳에만 유동성을 공급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사실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은의 직접 유동성 공급으로 이해하면 된다. 금리 인하와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진일 교수는 "기준금리 인하가 효과를 보려면 낮췄을 때 경제심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라는 실탄을 절약하는 한편 특정 대상에 한정해 유동성을 주입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는 자본 유출입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기준금리 인하에 찬성했다.
반면 손 석좌교수와 오 특임교수는 적극적 양적완화를 강조했다. 손 석좌교수는 "제로 금리를 하지 않고 양적완화를 하는 것은 총알만 낭비하는 것"이라면서 "먼저 제로금리를 단행해 '시장에서 한은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양적완화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 특임교수는 "금리를 낮추고 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부동산 버블, 재정건전성 유의해야
만약 한국판 양적완화가 실시될 경우 부작용으로는 궁극적으로 돈이 부동산으로만 흐를 염려가 제일 많이 꼽혔다. 김정식 교수는 "양적완화로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부동산값이 튀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손 석좌교수는 "양적완화는 단기처방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더욱이 양적완화는 펀더멘털을 해결할 수 없어 구조조정과 재정건전성을 함께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손 석좌교수는 또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가 올라가고 수 년 뒤에는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은퇴한 이자소득자나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미국이 양적완화로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고용의 질 등에서 가계의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면서 "한국판 양적완화는 빚더미에 짓눌린 한계가구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덕 기자 / 정의현 기자]
한국형 양적완화’ 물건너 가나?
야당 반대 이어 한국은행도 반대 입장 밝혀
월요신문ㅣ허창수 기자 | 승인 2016.04.29 16:49|(0호)
[사진]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26일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사진출처=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양적완화를 놓고 정치권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지난 26일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데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박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후 ‘양적완화’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양적완화란 정책 금리가 0에 가까운 초저금리 상태에서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해 신용경색을 해소하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이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절하여 간접적으로 유동성을 조절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국채나 여타의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시장에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이다. 궁극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수출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다.
양적완화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시행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로금리시대로 들어선 일본이 더 이상의 경기부양수단이 없자 2001년 3월 일본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것이 양적완화의 시작이었다. 양적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부활했다. 벤 버냉키 당시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른바 ‘버냉키식 양적완화’를 도입하는데 연준이 사용한 공식 명칭은 ‘대규모 자산매입(large-scale asset purchase)’이었다. 일본의 양적완화가 통화 공급을 증가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였던 반면 미국의 양적완화는 장기금리 축소를 위한 수단으로 장기국채와 주택담보부 증권매입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한국판 양적완화는 일본이나 미국의 양적완화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내건 한국판 양적완화는 경기부양을 목표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은행의 채권과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방안은 중앙은행이 공개적인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는 주요 선진국들의 완화정책과 달리 한은이 특정 채권을 직접 사들이도록 하는 측면 등에서 논란이 제기돼 왔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경우 ‘양적완화’보다는 ‘한은특별금융’이나 ‘금융중개지원대출’으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돈을 푸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 역시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일반적인 양적완화는 제로금리까지 내려가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이다. 반면 최근 논의된 한국형 양적완화는 기업구조조정 지원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사용한다는 의미로 일반적인 양적완화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양적완화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국가가 양적완화를 시행했지만 기대와 달리 실물경제 회복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금융시장 불안이나 신흥국의 자본 유출입 변동성 확대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공급과잉이나 수요부족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정책이 부유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 불평등만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6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양적완화는 낙수 이론(trickle-down)에 따른 경제 정책의 일종이다”며 “이로 인한 자산 가격의 상승은 오직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지난 4.13총선 당시 새누리당에서 처음 필요성이 제기된 후 주요 국정 현안으로 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양적 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이고 정부 여당은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양적완화는 ‘외과 수술식 양적완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기업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이어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펼친 ‘무차별적인 돈 풀기’ 식의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 방식을 사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가계부채 악화나 자본유출 등의 부작용은 피하면서도 전통적 방식의 양적완화와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한 반대 여론도 거세다. 야당은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야 할 정도의 위기상황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5%로 금리를 더 낮출 여지가 있고 추경 카드도 있는 만큼 양적완화정책을 펼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마련 목적이라면 굳이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고 재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은행 윤면식 부총재보는 29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설명회에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에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다.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서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형 양적완화에 반대했다. 이 전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가 어려우면 중앙은행이 ‘무슨 짓이든 못하겠느냐’에서 출발한 것이 한국판 양적완화다. 그래서 한국형 양적완화는 개발시대의 정책금융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이어 “정부가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하면 재정건전성 악화 등의 문제가 제기되니 한국은행더러 대신 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실이 명확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양적완화의 원조 격인 일본도, 미국 연방준비제도나 유럽 중앙은행도 특정 산업에 국한해 돈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중앙은행의 최후의 양심이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전 총재는 양적완화로 야기될 소득과 재산의 불균형 문제도 경고했다. 이 전 총재는 “양적완화로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는 있다. 문제는 양적완화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심각한 소득 불균형이나 유동성 회수에 따른 사회적 고통에 대해서는 성찰이 없다”고 비판했다. [허창수 기자 changsu73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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