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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성평등

[성소수자] 韓美中日 부모들 한자리 모여 'Yes, We Together'

잠용(潛蓉) 2016. 5. 11. 10:12

한·미·중·일 성소수자 부모들 한자리 모여

"그래, 우리 함께"
경향신문 | 이혜리 기자 | 입력 2016.05.10. 23:39

 

[경향신문] “우리 아이들이 성소수자(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등)라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성소수자인 딸의 결혼식을 해주고 싶다는 중국인 어머니의 고민 하나도 제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남들에게 못하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같은 성소수자 부모를 만났을 때 좋은 점인 것 같아요. 힘이 되거든요.” 트랜스젠더 아들의 어머니인 한국계 미국인 클라라 윤(49)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마다 옆에 앉은 한국·중국·일본의 부모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에는 어디를 가든 걸고 간다는 무지개색 실타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1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 회의실에서 한국·미국·중국·일본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성소수자 자녀의 부모들이 만났다. 올해 만들어진 지 2년째인 한국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미국·중국·일본의 성소수자 부모들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시작된 지 미국은 40년, 일본은 10년, 중국은 8년이지만 한국은 아직 시작 단계다. 각기 활동하는 나라와 활동한 기간은 다르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함께 맞서자는 것 만큼은 모두 같았다. 이들이 처음부터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에 쉽게 나섰던 것은 아니었다. 자녀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커밍아웃’이라는 게 필요했다. 

 

 

[사진] 한국, 미국,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성소수자 부모들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아들이 28세때 커밍아웃을 했는데 중국에서 성소수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는 중국인 파파 로즈(별명·43)는 “처음엔 슬펐지만 자식을 이해하고 중국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부모로서도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파 로즈는 2012년 중국의 성소수자 가족모임인 PFLAG in China를 찾아갔다. 그곳에선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다양한 성소수자 가족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매년 성소수자 부모를 대상으로 성소수자를 잘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첫번째 프로그램에 참여한 파파 로즈를 따라 그의 부인도 세번째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을 받았다. 이제 그는 하루에 4~5시간을 들여 성소수자 이야기를 알리러 전국을 다닌다.

 

파파 로즈와 마찬가지로 PFLAG in China에서 성소수자 부모 교육을 받은 탕 마마(별명·43)는 “기껏해야 영화에서 성소수자를 본 정도였고 가족이 성소수자일 거라는 생각을 안해봤다”며 “14살 아들이 커밍아웃을 한 다음에야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성소수자 부모 교육을 받았고, 왜 성소수자가 차별 받고 살아야 하나 의문이 들어 활동도 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이라고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없지는 않다. 클라라 윤은 “미국에서 자랐고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내가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했는데 자식이 트랜스젠더라고 하니까 혼란스러웠다”며 “처음엔 망설였지만 1년 정도 공부를 했고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엔 성소수자와 관련된 기회가 많기 때문에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레즈비언 딸을 둔 일본계 미국인 아야 아베(58)는 “커밍아웃한 딸이 약혼했다니까 사람들이 ‘정말 괜찮아?’라고 하더라”라며 “당시만해도 직접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다들 부정적으로 반응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성소수자에 대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도 평범한 사람들이고 행복한 권리가 있다”는 게 아야 아베의 말이다.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으로부터 시작된 부모들의 성소수자 인권 신장 활동은 스스로를 바꾸는 계기도 됐다. 파파 로즈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자식들이 성소수자로서 고생하고 차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든 발언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17살 때 딸이 ‘나는 여자가 아니다’라고 커밍아웃한 일본인 어머니 미츠코 나카지마(60)는 “나는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운 게 옳다고 생각했었는데 딸의 커밍아웃 이후 제대로 공부를 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며 “지금은 누구나 자기답게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 곳곳에 있는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그는 “성소수자 외에도 형편이 어려워 교육을 못 받는 아이들이나 장애인, 노인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이 있었던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성소수자 부모들의 활동은 드문 실정이다. 유교 문화 등의 영향으로 성소수자이더라도 그 자체를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소수자 부모들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클라라 윤은 “뉴욕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갔는데 1년간 활동하면서 동양인 부모를 만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2012년에야 나처럼 트랜스젠더 아들을 가진 일본인 어머니를 만났는데 반가워서 울었다”고 했다.

 

이날 아시아계 성소수자 부모들의 만남은 그래서 더 뜻깊다. 한국인 부모인 라라(별명·45)는 “이 행사가 있다고 할 때부터 가슴이 벅찼다”며 “우리가 자꾸 드러내지 않으면 변화하는 시기도 늦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외국 부모님들을 만나게 돼 감격스럽다”고 했다. 게이 아들을 둔 한국인 어머니 하늘(별명·60)은 “성소수자 자녀를 보며 부모가 겪는 감정 변화의 단계는 어느 나라 부모나 다 같은 것 같다”며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듯이 한국도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게이 아들의 어머니 지인(별명·47)은 “외국 부모님들을 보기만 해도 힘이 되고 든든하다”며 “함께 잘 이끌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탕 마마는 “다른 성소수자 부모들을 만나면 우린 다 가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며 “자식들을 위해서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