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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김장수] "세월호 첫 보고는 서면으로 이후 6~7회 통화했다"

잠용(潛蓉) 2016. 11. 29. 09:34

김장수 "세월호 첫 보고, 서면으로…

이후 대통령과 6∼7회 통화"(종합)
연합뉴스 | 2016/11/28 21:37

 

 ↑ 김장수 주중대사[연합뉴스 자료사진]

 

"심한 질책과 '유리창 깨서라도 구하라' 지시도 받았다"
"청와대 상황실 복잡…중대본 가시는게 맞지 않았나 생각"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 주중대사가 첫 보고를 서면으로 했다고 확인했다. 김 대사는 28일 베이징(北京) 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께 첫 보고를 서면으로 한 것으로 돼 있더라"며 "관저에도 하고 집무실에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첫 보고가 서면이었던 이유에 대해 "유선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것은 청와대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피했다.

 

청와대 측이 첫 보고가 유선이었다고 했다가 나중에 서면이었다고 바꿔 말한 것에 대해서도 "내가 답하기 부적합하다. 청와대 발표 이상으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첫 보고 이후 자신이 "오전·오후 6∼7번 정도 유선(전화) 보고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6∼7번 중에는 대통령이 (전화를) 하신 것도 있고 내가 드린 것도 있고 그 정도 통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시 몇분까지만 보고를 한 후 그다음부터는 일절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비서실 정무수석실에 사회안전비서관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전화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느냐는 질문에 "확실히 직접 전화를 받으셨고 그분이 직접 전화도 하셨다. 나는 대통령과 정상적으로 통화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느냐는 질문에는 "NO(아니다)"라며 청와대에서 관저 집무실에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사는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의 7시간에 관한 의혹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혹시 대통령께서 뭐 좀 이상한 게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을 나한테 캐치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보이는데, 그런 것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자신이 세월호 선체가 기울어져 뒤집어졌고, 승객들이 그 안에 있다는 사실도 보고했다고 전했다. 또 "오후 2시 이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고를 했을 때 심한 질책을 받았다"며 질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왜 구했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식의 통계의 불확실성, 거기에 대한 질책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사는 또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 "선실을 다 뒤져서 깨서라도 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지시사항을 구조 당국에 전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박 대통령이 좀 더 일찍 재난재해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을 에둘러 전했다. 김 대사는 "그때 당시 청와대 상황실이 너무 복잡해서 (박 대통령이) 오시더라도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직접 중대본으로 가신 게 맞지 않았느냐. 내 생각은 그런데 중대본으로 가는 시기에 대해서는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오후 5시15분 중대본을 방문해 했던 첫 질문이 "일몰 전에 생사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 등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듯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순수한 '이노슨트 와이'(innocent why) 차원에서 물어보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간담회가 끝난 뒤 특파원단에 보낸 추가 답변에서 "유선과 상황보고(서면보고)의 차이는 10분 이내이고 유선보다는 서면보고가 낫다고 생각했다"고 첫 보고가 서면이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투입된 구조인력, 현재 구조상황, 승선인원, 학생숫자, 사고경위, 위치파악 등을 위해 보다 세부적인 상황을 포함해 서면보고를 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의 이날 발언은 청와대가 지난 19일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코너에 올린 세월호 7시간의 박 대통령 행적 내용과 거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김 대사는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직하다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물러났고, 2015년 3월 주중대사로 부임했다.

[jsa@yna.co.kr]

 

김장수 “세월호 당일 10시 넘어 대통령에 첫 서면보고

이후 6~7차례 통화했다”
아시아경제ㅣ최종수정 2016.11.29 09:05 기사입력 2016.11.29 07:43

 

김장수 주중 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시아경제 정인철 인턴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 주중 대사가 베이징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사건 당일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김 대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접 유선보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10시 넘어 처음 서면보고를 했다"며 "그 뒤 내가 걸기도 하고 대통령이 걸어오기도 해서 합치면 모두 6~7차례 통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사는 "대통령이 보고를 어디서 받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며 "(최근) 청와대는 관저 집무실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선체가 기울어져 있고 그 안에 학생들이 있다는 상황이 정확하게 보고됐느냐는 질문에 김 대사는 "상식적으로 일어난 상황을 다 보고했다. 대통령 집무실과는 화면도 공유된다"며 "점심도 안 먹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전원 구조라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사는 "오후 2시 넘어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보고를 드리니 불확실성에 대한 질책까지 받았다"며 "마지막으로 오후 2시 몇 분에 보고하고 그 뒤로는 사회안전비서관이 직접 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중대본(중앙대책본부)에서 대통령이 왜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듯이 구명조끼 발언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순수하게 '왜냐고 물은 것이지…'. 통화 중에 '선창을 깨서라도 선실을 다 뒤져 구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사는 왜 최초 보고를 유선이 아닌 서면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유선이냐 서면, 대면보고는 상황마다 다르다"며 "그건 청와대에 물어보라. 내가 설명하기 부적합하다. 청와대 발표 이상으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후 김 대사는 대사관 홍보관을 통해 "유선과 상황 보고의 차이는 10분 이내이고 유선보다는 서면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구조 인력과 상황, 학생 숫자, 사고 경위와 위치 등 세부 사항을 포함해 서면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정인철 인턴기자 junginche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