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 여전히 인정 못해"…'이재용 구하기' 총력전
연합뉴스 | 2017/02/19 07:10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삼성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남은 수사 기간과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을 구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 전망이다. 삼성은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긴 했지만, 여전히 뇌물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식 기소가 되면 재판에서 반드시 무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19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특검팀이 이 부회장에게 두고 있는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5가지이다. 이중 핵심은 뇌물공여 혐의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청와대로부터 도움을 받은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공범인 최순실 씨 측에 '승마 지원' 형식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혐의의 뼈대다.
1차 영장 기각 후 특검은 약 4주간의 보강 수사를 통해 '승마 지원'의 대가로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관련 특혜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의 특혜를 누렸다는 혐의를 2차 영장에 추가했지만, 승마 지원을 뇌물로 보는 기본 틀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게 삼성 측 시각이다. 삼성은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이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것일 뿐 합병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재판 과정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최 씨와 대통령이 한통속이니 최 씨 측에 '승마 지원'을 한 게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것이랑 다름이 없다는 구성도 억지에 가깝고, 그걸 합병 등과 연결지어 대가관계로 보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이야 됐지만,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도 공소 유지를 담당하게 될 특검과 정면승부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성열우 사장이 이끄는 미래전략실 법무팀을 보강하거나 이번 특검 수사와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부회장을 도왔던 법무법인 태평양 외에 최고 실력을 갖춘 변호사들을 추가로 선임해 대응 전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은 그러나 당분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 보석을 신청하는 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재판 전략과 관련해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지만, 분명한 것은 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 주장을 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freemong@yna.co.kr]
이틀째 소환 이재용 '뇌물혐의' 부인… 특검 "진술변화 없다" (종합)
연합뉴스 | 2017/02/19 13:39
↑ 박근혜 대통령+이재용 삼성 부회장(CG) [연합뉴스TV 제공]
최순실 지원-정부 특혜 대가성 추궁… 朴대통령 관련 진술 관건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강애란 기자 = 433억원대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재소환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이날 오전 10시께 다시 불러 조사하고 있다. 17일 새벽 구속된 뒤 18∼19일 연이틀 이어지는 강도 높은 조사다. 오전 9시 40분께 전날처럼 사복 차림으로 출석한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대가로 최순실을 지원했나'는 등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곧바로 조사실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전날 오후 2시께 특검에 나와 8시간 가까이 조사받고 복귀했다. 특검은 이날도 2014년 9월부터 2016년 2월 사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세 차례 단독 면담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에 정부 차원의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 전달이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진술을 통해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순실(61·구속기소)씨에 대한 삼성 측 지원과 정부의 삼성 특혜 사이에 연결고리를 확인하겠다는 게 특검의 의도다.
↑ 구속된 이재용 특검 소환(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호송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2017.2.19
Saba@yna.co.kr
특검은 경영권 승계 완성의 필요조건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주식 처분,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을 추진할 때 박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가 이를 측면 지원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조사에서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은 바 없다고 의혹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 관계자는 "아직 이 부회장 진술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최씨 측에 제공된 자금도 박 대통령의 강요·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건넨 것으로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조사는 다음 주 예상되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앞두고 뇌물혐의의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마지막 수순으로 읽힌다. 이 부회장의 진술 내용에 따라 대면조사 진행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 조사는 실효성 있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 측과 대면조사 일정과 장소 등을 둘러싸고 막바지 조율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lucho@yna.co.kr]
이재용 "대통령 강요로 최순실 지원했다"... 특검 "형량요소 불과"
연합뉴스ㅣ2017.01.13. 13:47
▲ 22시간 밤샘 조사 마치고 서둘러 차량에 오르는 이재용 뇌물공여 등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에서 22시간 넘게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 유성호
특검 '피해자 프레임'에 부정적... 삼성 수뇌부 구속영장 여부 곧 결정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전명훈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에 가까운 강한 요구에 밀려 삼성그룹이 최씨 일가에 수백억원대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그러나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압박이 있었다고 해도 이는 향후 재판에서 형량을 결정할 때 선처 고려 요소일 뿐, 삼성그룹 핵심 수뇌부를 뇌물공여 혐의로 처벌하는 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3일 특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부회장은 전날부터 이날 새벽까지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면서 박 대통령의 강한 압력 탓에 원치 않게 최씨 일가에 거액의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승마 유망주 육성 명분으로 2015년 8월 최씨의 독일 현지법인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송금했다. 또 비타나V 등 삼성전자 명의로 산 명마 대금도 4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자금은 다른 승마선수들에게 한 푼도 돌아가지 않고 모두 최씨 가족의 독일 부동산 매입 등 생활비 등에 쓰였다. 삼성은 최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씨가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이권을 챙기려 세운 것으로 드러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천800만원을 후원했다. 또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주요 대기업 중 최대인 204억원을 출연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 안가 독대 때 박 대통령이 코레스포츠 계약 등 승마 관련 지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역정을 내 긴급히 내부 회의를 열어 경위를 파악하고 최씨 일가 지원을 지시했다고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회장은 이 무렵에야 최씨의 구체적인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특검팀은 지난해 2월 독대 때에도 박 대통령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0억원 규모의 추가 기부를 하라고 이 부회장 측에 요구한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했다.
특검은 앞서 조사한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역시 이 부회장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는 등 삼성그룹이 강요에 따른 '피해자'였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법리 검토 결과 뇌물공여 혐의로 처벌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특검 관계자는 "우리 판례로는 압박을 느껴 돈을 건넸다고 해도 공여자 역시 처벌을 받는 것으로 본다"며 "삼성의 논리는 양형(형량을 정하는 것)에서만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삼성 측 주장을 반박했다.
법학계에서는 공무원이 압박이 아닌 협박에 이르는 수단을 동원, 직무 범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때 이를 '상상적 경합'(하나의 행위가 동시에 여러 개의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으로 봐 공갈죄와 뇌물수수죄가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다수설이다. 판례도 공무원이 직무집행의 의사를 갖고 직무와 관련해 갈취했으면 수뢰죄와 공갈죄가 동시 성립(상상적 경합)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돈을 건넨 사람은 피해자의 성격이 있어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상존한다.
특검팀은 이번 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삼성 측에 지원이 원활치 않다고 압박한 구체적인 정황은 있으나 뚜렷한 정책적 '보복' 수단까지 동원해 매우 강력한 공포를 느끼게 하거나 협박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보고 삼성을 '피해자'로만 간주해 처벌을 면하게 해주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날 삼성그룹 수뇌부와 국민연금의 삼성합병 찬성 의혹에 연루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에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포커스1] 이재용,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간경향ㅣ2017.01.25 10:24 댓글 2개
향후 박 대통령 진술, 최지성 부회장 사법처리 여부가 신변에 영향 가능성
거침없이 달리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시계가 삼성 앞에서 멈춰섰다. 특검은 1월 16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의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횡령,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18일 “현재로선 구속 사유가 불분명하다”며 기각했다. 이 부회장 구속은 박근혜 대통령을 사법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최종 관문’이었다. 영장 기각으로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삼성은 이번 게이트에 ‘주연급 조연’으로 의심받을 만큼 깊숙이 사건에 개입돼 있다. 이미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을 매개로 한 삼성과 최순실 간 금전거래 사실이 확인됐다. 직접적으로 최순실 측에 돈을 건넨 기업도 삼성이 유일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물주’가 삼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부회장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여론도 거셌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은 다시 한 번 재계의 ‘법꾸라지(법+미꾸라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일단 구속은 면했지만 이 부회장이 혐의를 벗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내달 초 예정된 특검 수사에서 박 대통령이 뭐라고 진술할지가 관건이다. 이 부회장과 같은 뇌물공여 혐의로 삼성의 또 다른 ‘피의자’ 신분인 최지성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도 이 부회장의 신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9일 새벽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 서울구치소 밖으로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의 ‘불구속 신화’는 계속된다
고 이병철 회장부터 이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3대에 걸쳐 거대 기업을 세습하는 동안 숱한 물의를 일으키고 처벌도 받았다. 이건희 회장만 해도 비자금 사건 등으로 실형만 두 번 선고받았다. 흥미로운 건 그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삼성의 총수 중 누구도 ‘투옥’ 경험은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투옥’이란 구치소나 감옥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범죄에 유독 관대한 사법체계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현대·기아차, SK, 한화 등 총수가 구속되거나 투옥생활을 한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볼 때 이례적이다. ‘반도체 신화’, ‘휴대폰 신화’ 등 삼성이 쌓아올린 여러 신화 속에 ‘불구속 신화’도 존재하는 셈이다. 삼성의 총수가 사법처리 위기에 몰렸던 첫 번째 사건은 1966년 발생한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사카린은 설탕의 300~500배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다. 삼성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 2259포대를 건설자재인 것처럼 꾸며 밀수입해 국내에서 4배가량 높은 가격을 받고 유통시키려다 부산세관에 적발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재벌의 밀수 범행’으로 공식화했지만, 당사자들의 말은 달랐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정치 비자금 마련 등의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이 결탁해 조직적으로 벌인 밀수”라고 주장했다. 고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지분을 넘기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밀수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던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고 이병철 회장 차남)가 구속돼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룹 총수였던 고 이병철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과 함께 한국비료를 국가에 반납하고 처벌을 면했다.
그룹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은 1995년 터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다른 재벌 총수 7명과 함께 기소됐다. 이 회장은 100억원의 정치 자금을 제공해 뇌물공여 혐의를 받았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됐고, 최종 판결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면했다. 이 회장은 2002년에도 불법 대선자금 제공 의혹을 받았지만 당시 그룹의 ‘2인자’였던 이학수 부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법처리되면서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2009년에는 삼성 특검 결과 불법 경영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재차 기소됐다. 수사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경영승계, 비자금 은닉 등 국내 최대기업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때도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수사를 받았고, 고법에서 조세포탈 혐의만 인정돼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두 차례의 집행유예 판결도 매우 이례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건희 회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건 정권의 사면 처분이었다. 1997년에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개천절을 맞아 이 회장 등 경제인 23명을 특별사면 및 복권했다. 2009년에는 확정판결을 받은 지 불과 넉 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만 ‘단독’으로 특별사면 및 복권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회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역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특혜”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삼성그룹의 선대 총수들은 옥살이는커녕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례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지만 결론은 역시나 불구속이었다. 이 부회장이 선대 총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지는 약 12시간의 시간 동안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수의를 입고 대기하며 잠시나마 옥살이를 체험했다는 점 정도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에 있으면 삼성의 조직적 힘이 작동하면서 실체적 진실이 은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특검은 수사를 보강해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다른 사장단급 인사에 대한 영장 청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용과 ‘죄수의 딜레마’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공한 뇌물의 ‘대가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에서 이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된 주된 이유가 바로 이 대가성에 대한 입증이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뇌물죄 입증은 대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자료가 없는 한 뇌물을 제공한 사람과 받은 사람 간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되는 사안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공범관계인 A와 B 두 사람이 ‘협조’해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둘 다 가벼운 형벌을 받는다. 반면 둘 중 한 명이라도 ‘배반’을 택해 A와 B 중 한 명은 자백을 하고, 한 명은 범행을 부인할 경우 부인한 사람만 중형을 받는다. 둘 다 배반(자백)할 경우 A와 B 모두 협조(부인)했을 때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된다.
게이트 연루의혹 자체를 부인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뇌물죄를 인정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전략도 처음에는 박 대통령과 ‘협조’해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실제 삼성 측이 처음부터 “최순실에게 금전을 제공했다”고 인정한 건 아니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선수를 지원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에 불리한 여러 진술과 증거가 잇달아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핵심인물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메모가 발견됐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최순실 지원금 문제로 삼성과 상의한 여러 정황과 증거를 폭로했고,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와 최순실의 조카인 장시호가 제출한 태블릿PC에서는 이를 입증하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등이 다수 확인됐다. 이에 다급해진 이 부회장은 ‘배반’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에게 돈이 건네진 점은 인정하되, 박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제공된 대가성 없는 돈이었다고 주장해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 최지성 삼성 부회장(미래전략실장)이 1월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제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자신만이라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느냐, 박 대통령 자신도 이 부회장을 ‘배반’하느냐다. 박 대통령이 향후 특검 수사에서 죄를 토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 박 대통령 본인만 ‘강요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이미 검찰도 최순실을 기소하면서 강요죄의 공범으로 박 대통령을 지목한 바 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이 끝까지 입을 다무는 게 처벌을 면하기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다.
반대로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배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회장이 독대 자리에서 먼저 ‘경영권 승계과정의 배려’ 등을 부탁해 왔고, 이 부회장이 ‘자가발전’으로 최순실을 지원한 것이지 박 대통령 본인은 지원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최순실에게 건넨 돈의 대가성이 입증되는 셈이어서 이 부회장에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엑설로드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바로 ‘맞불작전’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배반했다면 자신도 배반하는 게 혼자만 협조했을 때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최지성은 특검의 ‘플랜B’인가?
이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되던 날 특검은 “최지성 부회장도 피의자”라고 밝혔다. 혐의는 이 부회장과 같은 뇌물공여다. 이 부회장 외 특검의 수사를 받는 삼성 고위 임원은 사내 2인자로 통하는 최지성 부회장(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사장(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대외협력담당 사장 등 3명이다. 특검은 영장이 기각되기 전까지는 언론 등의 요구에도 이 3명의 정확한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영장을 청구할 당시에는 “최 부회장 등 3명은 불구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재계 등은 최 부회장 등이 참고인 신분인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이 때문에 특검이 영장 기각과 동시에 최 부회장을 피의자로 언급한 것은 다분히 계산적이고 계획적인 순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될 것에 대비해 최 부회장을 피의자로 올려놓고 ‘플랜B’를 그려왔다는 추정이다. 이 부회장을 통한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입증이 어렵다면 최 부회장을 통해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삼성이 최순실 측에 제공한 금전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이유도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최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제기 중이다.
관건은 특검이 최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에 나설 경우 최 부회장이 과거 이학수 부회장처럼 책임을 떠안고 갈 것인지 여부다. 최 부회장은 특검 소환조사 당시 상당히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학수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방패막이’가 돼 책임을 지거나 이 회장과 책임을 나눠 가졌다. 최 부회장도 이 회장이 발탁하고 중용한 인사다. 이 회장이 병석에 누운 뒤에는 이 부회장을 보필하며 그룹 구조개편이나 경영권 승계작업을 주도했다. 이 부회장 역시 최 부회장을 많이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게 된 이후에도 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미래전략실의 큰 틀에는 이 부회장도 손을 대지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 부회장과 이 부회장의 관계가 돈독하다 해도 최 부회장은 어디까지나 이건희 회장의 사람”이라며 “최근 이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거론하는 등 향후 최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가 흔들릴 여지도 있어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최 부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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